걸으면서 한 생각 2

인생의 빠르고 느림에 대하여

[길을 몰라서 길을 걷습니다]는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글 읽기 전 산티아고 용어>

bar(바) = 우리나라 카페와 비슷한 개념. 토스트, 커피, 음료 등을 파는 가게

albregue(알베르게) = 순례자를 위한 숙소

pilgrim(순례자) = 산티아고를 걷는 모든 사람들


더블린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 비아레츠 공항까지. 비아레츠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바욘 역까지. 바욘 역에서 생장 드 피에르 포트까지. 딱 생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정말 혼자였다. 생장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같은 순례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우연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은 참 신기한 게 모두 다른 곳에서 왔지만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며 걷는다. 또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른데 비슷한 시기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중간에 잠시 헤어지더라도 며칠 후에 다시 길에서 만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청년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이 걸으신다. 내가 뵈었던 분 중에는 50년생이신 한국분도 계셨다. 반대로 엄마 아빠와 함께 걷는 10살 된 어린아이도 있었다.


두쨋날 힘들게 피레네 산맥을 넘고 알베르게에서 캐나다 노부부를 만났다. 퀘벡 출신의 노부부 셔서 영어보다는 불어가 편하신 분이셨지만 영어로 대화했다. 젠틀하신 할아버지 덕분에 처음 겪어보는 커뮤니티 식사에서 어색함을 덜어주셨다. 편안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마도 이 노부부와의 대화는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걸음이 느리시기 때문이다.


걷는 중간에는 일본인 할머니, 할아버지 그룹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르고, 일본분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셨다. 그래도 바디 랭귀지로 느낌대로 말하고 느낌대로 이해하며 반갑게 인사했었다. 그리고 이분들도 지금이 마지막 인사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침을 먹으러 bar에 들어갔는데 일본분들이 아침 식사를 먼저 하고 계셨다. "어? 언제 이렇게 빨리 걸으셨지?" 분명 이 분들보다는 빠르게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렇게 몇 번을 일본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일본분들만이 아니었다. 순례길의 3분의 2를 지나갈 때쯤 한 알베르게에서 쉬고 있었는데 둘째 날 만났던 퀘벡 출신 노부부를 다시 만났다. 서로 정말 반가웠다. 그리고 또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걸으셨지?" 이때쯤 나는 하루에 약 30km씩 걸은 날이 많았다. 의아하기도 해서 중간에 길을 모두 걸었는지 아니면 버스를 탔는지 여쭤봤다. 그런데 그 길을 모두 걸으셨다고 했다. 매일 숙소를 예약하고 천천히 쉬기도 하며 길을 걷는다고 하셨다. 이 대화를 주고받은 그날도 27km 정도 나와 비슷한 거리를 걸으셨다고 한다.


아무리 쉬엄쉬엄 걷는다고 해도 20대인 나와 같은 빠르기로 걷는 게 말이 되는가? 싶었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어보니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일어날 때쯤 노부부께서는 이미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갈 채비를 마친 상태셨다. 그렇게 일찍 걷기 시작해서 저녁까지 천천히 걸으시는 모양이었다. 남들보다 걸음걸이가 느리면 어떤가. 목적가 있는데.

(좌) 달팽이 (우) 제비


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남자 청년분들은 정말 빨리 걷는다. 본인의 3주 정도 되는 짧은 휴가 내에 완주를 하겠다는 청년은 그날 만나서 인사하면 그게 마지막 인사이다. 내가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와 파워를 가졌다. 그런데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다시 만났다. 특히 세바스찬이라는 남자분은 길 초반에 만나서 마지막 날까지 길 위에서 계속 만났다. 같이 길을 걷다가도 그 걸음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먼저 가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날 알베르게에서 씻고 쉬고 있을 때쯤 세바스찬과 다시 만나곤 했다. 이번에는 내가 참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빨리 숙소에 도착한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세바스찬은 마을에 있는 성당에 들려서 항상 미사를 드리고, bar가 나오면 들려서 커피 한잔씩 꼭 하고 나온다고 했다. 반면 나는 한번 걷기 시작하면 그냥 쭉 걸었다. 물론 쉬고 싶고 bar에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서 오렌지주스도 마시고 했지만 지나친 경우가 더 많았다. 이렇게 사람마다 걷는 스타일이 다르다.


세바스찬은 아니에요..

물론 내가 순례자들과 달리기 경주를 한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마음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내가 빠르겠지, 느리겠지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단순한 생각마저 정답이 아니었다. 내가 빠르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느렸고, 내가 느리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빨랐다. 순례길 위에서 이런 숱한 인연을 통해 인생의 빠르기 비교는 의미가 없다는 걸 배웠다. 굳이 빠르기를 재단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내가 생각한 속도는 틀렸으므로. 그러니 빨랐다고 자만할 필요도, 느리다고 조급할 필요도 없다. 어쩌면 인간의 속도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냥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약간의 시간 차이일 뿐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느리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조금씩 조급해지기 시작했었다. 조금씩 제 갈길 가는 친구들, 어느새 커리어를 쌓은 친구들, 벌써 가정을 이룬 친구들까지. 굳이 나의 상황과 비교하려 하지 않아도 그들과 내가 사는 세상이 달라져 버렸다. 순례길을 다녀온 지금, 남들과 빠르기를 전혀 비교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여전히 나만 머물러 있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으며 먼저 앞서간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하지만 서로의 삶이 달라서 시간의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젠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전보다 빨리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누가 빠른지 누가 느린지 의미 없다.

마을 아이들이 재밌게 논 흔적



산티아고 순례길 Tip_방한용품 편

순례길은 모든 계절에 걸을 수 있지만 보통 4,5월 9,10월이 성수기예요. 봄, 가을 날씨로 따뜻한 편에 속하지만 고지대인 지역에는 생각보다 정말 추워요. 따라서 방한 용품을 꼭 챙겨야 합니다.

첫 번째로 바람막이예요. 한낮에는 태양빛에 정말 덥지만 해가 없는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답니다. 바람막이를 입고 걷는 걸 추천드려요. 또, 우비를 쓰기에는 애매한 비가 올 때도 바람막이로 대체할 수 있어서 좋아요.
두 번째로 침낭입니다. 꼭 10도 이하에서도 온도를 유지하는 침낭을 챙겨가세요. 고지대에서 머무르는 날에는 정말 춥습니다. 그런 추운 지역에는 알베르게에 담요를 비치해 두시만 언제 세탁했는지 알 수 없어요. 감기 걸리지 마시고 침낭 챙기세요.
마지막으로는 경량 패딩입니다. 저는 조끼 패딩으로 가져갔는데요. 팔까지 있는 경량패딩을 추천해요. 침낭으로도 추위를 이기기 힘든 날에는 패딩을 입고 자야 하기도 합니다. 또 고지대에서의 아침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어요. 패딩에 바람막이까지 입었는데도 너무 추워서 아침에 뛰다시피 걷다가 bar에 냅다 들어갔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순례길을 걷다가 감기, 독감에 걸리세요. 아무래도 지친 몸에 면역력까지 떨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럴수록 추위에 노출되면 안 되니 따뜻한 옷 준비해 가시길 바라요. 모두들 부엔 까미노.
아침 안개
너무 추워서 카페에서 핫 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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