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더라도 단단한 삶을 바라며
[길을 몰라서 길을 걷습니다]는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글 읽기 전 산티아고 용어>
bar(바) = 우리나라 카페와 같은 개념. 커피, 토스트, 음료 등을 파는 가게.
albregue(알베르게) =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
pilgrim(순례자) = 산티아고를 걷는 모든 사람들
평소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지금껏 내가 본 드라마는 각시탈, 킬미힐미, 도깨비, 시그널, 비밀의 숲 1 정도밖에 없다. 그런 내가 최근에 본 드라마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오징어게임'도 아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다. 이 드라마에 나온 한 공시생인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했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 온 것이 그 등장인물이 대사로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23년도에는 서울에 있는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었다. 기간제이기는 했으나 당연히 교사였고 그에 맞는 업무를 수행했었다. 처음 하는 업무였지만 매번 최선을 다했고, 선생님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냈으며 학생들과도 재미있게 지냈다. 감사하게도 학생들도 날 잘 따라주었다. 그럼에도 그 당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교사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기간제였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임용고시에 실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임용고시도 통과 못했는데 어떻게 교사라고 말할 수 있겠어? 이런 마인드였다.)
종종 친구들에게는 내 시간이 2023년 2월(임용고시 합격자 발표 날)에 멈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나는 내 노력에 배신을 당했고 그냥 노력 덜 한 얘가 되어버렸다. 다시 임용고시를 준비할 용기도 없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임용고시를 안 하자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살아갈 용기마저 없어지다니. 실패자 낙인이 새겨진 것만 같았다.
하루에 적어도 6시간은 걸은 것 같다. 걷고 또 걷고. 걸으면서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막지 않았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생각을 했다. 이 날은 2023년과 2024년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23년도에 학교에서 근무를 하면서 했던 일들, 근무했던 학생들과의 추억, 24년도 여행과 아일랜드 어학연수 간 일들, 그리고 산티아고를 걷기로 결심하고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나.
마치 파노라마처럼 추억들이 쭉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엔 문뜩 생각했다. '살아갈 용기가 없었는데, 용기가 없어도 살아지긴 하는구나.' 인생에는 매 순간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실패자는 어쨌든 1년간 학교에서 일하면서 밥벌이를 했다. 살아갈 용기가 없다고 했는데 잠시 한국을 떠나 아일랜드라는 타국에서 6개월을 굶지 않고 살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은 산티아고를 아픈 구석 없이 잘 걷고 있다. 이 생각을 하니 잠시 피식 웃음이 났다. 'ㅎ. 잘 살고 있네.'
그리고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생겼다. 그냥 1인분의 삶을 살고 싶다. 누구에게 크게 의지 하지 않고 스스로 살 수 있을 만큼의 삶. 홀로 서더라도 단단한 삶 말이다.
철의 십자가에 도착한 날. 그곳은 순례자들 저마다의 마음들이 한 곳에 모인 곳이다. 그들의 소망이 혹은 마음의 짐이 돌멩이가 되어, 솔방울이 되어, 혹은 쪽지가 되어 올려져 있다. 나도 그곳에서 내가 바라는 삶을 기도하고 쪽지를 올려두었다.
걸으면서 한 생각들이 크게 개연성은 없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공부는 다시 하기로 했다. 많이 말고, 3시간 정도만. 걷다가 갑자기 유명한 가수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명시절은 겪은 유명인들은 무명시절에 계속 자신을 가꾼다고 한다. 언제 기회에 어떻게 올지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유명한 사람도 저런 시절을 보냈는데 내가 뭐라고. 나에게도 언제 기회가 어떻게 올지 모르니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길 위에서 다짐을 한 후 한국에 돌아온 지금의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역시 내적동기만 가지고 매일 3시간씩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틈틈이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루하루를 게으르지 않게 무엇이라도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공부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요리를 하기도 하고. 조금씩 이런 하루들이 쌓여 언젠가 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산티아고를 완주했다고 해서 삶이 180도 바뀐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시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 전의 나는 내가 정한 목표에, 내가 정한 길에 목숨을 걸었다. 또한 오로지 나의 노력만이 그곳에 도달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 내가 무너졌다. 이제는 그냥 하루하루 나를 쌓으며 물흐르 듯 살기로 했다. 그 속에서 1인분의 삶을 이룰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Tip_음식 편
아무리 순례길이라고 하더라고 잘 먹어야죠! 아무래도 타국이기 때문에 무엇을 드셔야 할지 모를 수도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 Tip 음식 편을 준비했어요.
아침으로 토르티야와 토스트를 주로 팔아요. 토르티야는 스페인식 감자오믈렛이에요. 한 끼로 나름 든든하답니다. 그리고 소금간이 셀 수도 있어요. 그건 순례자들이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일부러 간을 세게 한다고 합니다. 날씨가 더울수록 더 짜요. 토스트는 바게트를 구운 거예요. 잼이나 오일과 함께 나옵니다. 그런데 샌드위치도 바게트 빵으로 만들어요. 저는 바게트가 질기다고 느끼는 사람으로서 조금 힘들었답니다.
한식당은 큰 도시에만 있어요. 하지만 스페인도 쌀 요리 빠에야가 있답니다. 이 쌀요리는 죽보다는 되직하고 볶음밥보다는 질척해요. 빵에 지치신 분들은 한 번씩 드시는 것도 좋습니다. 스페인 서부에 가까워질수록 해물요리가 정말 맛있어요. 특히 멜리데라는 도시는 문어요리로 유명해요.
또, 식당에서 순례자를 위해 스타터부터 디저트까지 나오는 '순례자 메뉴'도 있답니다. 매번 식당을 찾는 게 힘들어지면 커뮤니티 디너를 제공하는 알베르게를 이용하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혹은 스페인에 대형 마트 Dia가 있어요. 간혹 취사가 가능한 알베르게가 있답니다.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알베르게에서 먹으면 특별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얼린 홍합과 밀가루만 사서 수제비를 해 먹었답니다. 그리고 꼭 제철과일 사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