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해도 조심

산티아고 순례길 안전한가요?

[길을 몰라서 길을 걷습니다]는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글 읽기 전 산티아고 용어>

bar(바) = 우리나라 카페와 같은 개념. 커피, 토스트 등을 파는 가게.

albregue(알베르게) =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

pilgrim(순례자) =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


산티아고를 완주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순례길 후기를 들려주었다. 한국인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산티아고. 그래서 대부분 순례길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안 위험해?"


안전에 대한 질문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다. 그 길 위의 '자연' 혹은 '건강'에 대한 안전을 궁금해한 질문일 수 있다. 영화 The way처럼 순례길 위에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순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자연재해나 혹은 뜻하지 않은 사고가 우려되는 건 당연하다. 한편으로는 그 길, 나라의 치안에 대해 물어본 것일 수 있다. 가볍게는 소매치기부터 심한 범죄까지(상상하기도 싫다), 아무래도 타국에서 안 좋은 일을 겪는다면 그 공포는 배로 느껴질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전반적인 나의 의견은 "안전하다!"이다. 길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은 걸으면서 한 적이 없다. 탈수도 걱정될 수 있으나 중간중간 길 위에 약수터가 있고 마을마다 마실 것을 파는 곳은 많다. 치안도 좋은 편이다. 다만, 사람이 많은 도시는 치안이 안 좋다. 예를 들면, 순례길의 첫 마을인 생장, 큰 도시인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은 조심하는 게 좋다. 또한, 한국인 순례자들은 프랑스 파리로 입국하고 마지막 여행지로 마드리드를 투어 하신다. 그런데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의 마드리드는 소매치기로 위험한 도시 1위, 2위를 앞다툰다. 따라서 두 도시가 순례길 마을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여행을 고려하자면 이 두 도시도 포함하겠다. 이를 제외하고 스페인의 작은 마을들은 안전했고 사람들은 정이 많았다. , 90퍼센트는 치안이 좋다고 느꼈다.


하. 지. 만. 전반적으로 안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위험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늘은 그 위험했던 순간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가까이서 느낄 땐 위험했으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되었으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약 한 달간 걷다 보면 당연히 다양한 날씨를 경험할 수 있다. 매일 날씨가 좋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가 오기도 하고 그 비가 장마처럼 오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도 길을 걷고 일주일 후부터 4일 동안 비가 내린 적이 있다.

이 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맑지 않았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어젯밤에 봤기 때문에 우비를 가방 가장 앞쪽에 넣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우비를 뒤집어쓰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눈앞에 꽤나 높은 흙산이 있었다. 이쯤 걸으면 눈앞에 어떤 지형이 나와도 별 생각이 없다. 그냥 묵묵히 걸을 뿐이다. 다만 비가 내려 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산을 올라 점차 높아질수록 비가 더 많이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비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산을 다 오르면 다시 내려가는 줄 알았으나 고원이 이어졌다. 한동안은 천둥번개가 치는 구름 아래의 고원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무슨 나무도 없어서 고원에 우뚝 솟은 거라곤 순례자들 뿐이었다. 천둥 번개가 바로 머리 위에서 치는 것 같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소리가 들리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순례자들끼리 등산 스틱을 머리 위로 올리지 말라고 서로 이야기했다. 키가 작은 게 아주 조금 안심이 될 정도였다. 이날 다행히 별다른 안전사고 없이 잘 지나갔다.


다음 이 경우는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꽤나 특별한 위험(?)이어서 나누고자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하이라이트인 '철의 십자가'로 가는 산에서의 일이다. 순례길 첫날에 만난 한국분이 그 길목에서 늑대와 마주쳤다고 했다.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살면서 야생 늑대를 볼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산은 포식자의 야생 동물이 나올만한 산이었다. 그분은 몇 분 동안 늑대와 대치했다가 아주 건장한 외국인이 뒤에 오셔서 같이 지나갔다고 했다. 만약 키 154cm인 내가 늑대와 단 둘이 만났다면,,,,(상상하고 싶지 않다.)

늑대야 눈을 왜 그렇게 떠?


이외에도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더 있었다. 어떤 마을은 식수가 잘 못 되었는지 그 마을에 머물렀던 순례자들이 밤새 구토를 해서 다 같이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도 들려왔었다. 또 어느 날은 길을 걷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알고 봤더니 한 프랑스 아주머니가 어찌 잘못 넘어졌는지 이마가 찢어져서 피가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안전한 순례길 이기는 하나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치안


큰 도시가 위험하다고 새벽에 걸을 때였다. 해가 지기도 전에 곯아떨어지기 때문에 밤거리가 무서운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이 날, 어김없이 해가 뜨기 전에 채비를 마치고 다시 순례길에 나섰다. 해가 뜨지 않은 어둠의 도시는 꽤나 무서웠다. 거리에는 술에 취한 사람, 종종 노숙자들, 노상방뇨하는 사람. 괜히 해코지를 당하는 건 아닌지 하는 노파심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큰 도시는 아무래도 지역이 크기 때문에 도시를 완전히 빠져나가는데 까지도 시간이 꽤 걸린다. 그 긴 거리를 축지법 쓰듯이 빠르게 걸었다. 이 날 이후부터는 큰 도시에서는 다른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움직일 때 같이 움직였다.


실제로 이 산티아고 순례길은 작은 시골 마을부터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흙길까지 다양하다. 간혹 아주 못된 바바리맨은 순례자들이 잘 지나지 않는 시간대에 숨어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도 다니지 않는 시간에는 혼자 다니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도시의 새벽 거리


의심


이 날은 부르고스 도시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도시에 들어서니 공원이 이어졌다. 거의 다 온 줄 알고 지도에 숙소를 찍고 숙소까지 걸리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런데 웬걸 숙소는 도시 가운데에 있었는데, 도시 외각부터 중심까지 한 시간 반이나 더 걸어야 했다. 그 숙소까지의 한 시간이 체감상 가장 긴 시간이다. 걸어도 걸어도 공원은 끝나지 않고, 도시 중심은 나타나지 않는 것 만 같다.


몸이 천근만근. 그래도 좋았던 건 도시에 들어오니 스페인 현지분들이 '부엔 까미노'하며 응원해 줬다. 그 말에 힘을 얻어서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공원을 걷고 있는데 한 스페인 할아버지가 나와 발 보폭을 맞추시더니 스몰토크를 시작하셨다. 꽤 긴 시간 동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이분 갈 길을 안 가시고 계속 나와 같이 걷고 있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어디 가시는 중이었냐고 물으니, 나를 알베르게에 데려다주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 내가 어디 알베르게에 묵을 줄 알고??'


이 스페인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그 부르고스 도시는 역사가 깊은 도시이고 아주 예쁜 성당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알베르게는 그 성당 옆, 그 도시 꼭대기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성당이 제일 예쁘게 나오는 비밀 포토 스팟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지도와는 다르게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납치범인가? 조금씩 걱정이 돼서 "지도에는 이쪽으로 가라고 하는데요?"라고 말하니, "그쪽은 사람하고 차가 너무 많아. 이쪽 공원 길이 더 편해."라고 말씀하셨다. 괜히 낯선 사람을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성당 포토 스팟이 나왔다. 이 할아버지 말씀대로 이 비밀 포토스팟은 관광객도 없었고 성당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부르고스 대성당


성당 사진도 찍었겠다 이젠 혼자 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 본인은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에 잘 들어가야 마음이 놓인다고 하면서 끝까지 가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지도와는 다른 본인의 길로 나를 이끄셨다. 걱정이 들다가도 구글맵을 보며 점점 알베르게에 다다르는 것이 보였다. 납치범에 대한 선택지는 삭제되었다.


부르고스 시내에 도착했고 역사적인 흔적과 동상이 나왔다. 이 스페인 할아버지는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설명은 재미있었으나 여전히 머릿속은 걱정이 들었다. '납치는 아닌 거 같은데,,, 아! 사기인가? 가이드를 해줬으니 돈을 달라고 하려나? 그러면 어쩌지?' 혼자 심각해져서 사색이 되어 알베르게까지 걸었다. 그런데,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이 할아버지는 "너랑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 고마워(한국말)!" 그 말에 순간 안심이 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괜한 사람을 의심하다니.


그렇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람 때문에 참 힘든 순간이 많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은 사람도 많다.

부르고스



감사하게도, 운이 좋게도 위험한 순간들은 있었으나 다행이 아무일도 없었다. 무탈하게 순례길을 완주했다. 오늘 이 글을 읽은 예비 순례자들은 어쩌면 더 많은 걱정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순례길은 위험한 순간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이 더 많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위험한 순간도 있다는 걸 아시고 순례길을 준비한다면 더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철의 십자가



산티아고 순례길 Tip_상비약 편

상비약을 준비해서 가는 게 좋아요. 물론 스페인에도 약국이 있지만 도시에만 있기 때문이에요. 다양한 약을 조금씩 가져가는 걸 추천합니다.
먼저, 타이레놀, 소화제, 지사제를 챙겨서 가벼운 감기와 복통에 대비하면 좋아요.
소염제를 가져가는 것도 추천해요. 하루에 많은 거리를 걷게 되면 무릎, 발목뿐만 아니라 정강이같이 아파본 적이 없는 곳이 아파요. 그리고 시큰거리는 게 딱 염증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답니다. 이때 소염제를 드시면 한결 나아요.
마지막으로 혹시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은 알레르기약 꼭 챙겨가세요.

무슨 아픈걸 약 먹어 가면서 그 길을 걸어야 해?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곳이랍니다..(하하)
아프지 마시고 buen cami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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