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의 매력
[길을 몰라서 길을 걷습니다]는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글 읽기 전 산티아고 용어>
bar(바) = 우리나라 카페와 비슷한 개념. 커피, 토스트, 음료 등을 파는 가게
albregue(알베르게) =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
pilgrim(순례자) = 산티아고를 걷는 모든 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는 크고 작은 도네이티브 bar가 있다. 즉 기부제로 운영되는 bar이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고 그에 맞는 기부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땡볕을 걷다가 언제쯤 마을이 나올까 생각이 들 때쯤, 저기 멀리서 아른하게 테이블이나 냉장고가 보일 때가 있다. 도네이티브 bar라는 게 있는지 몰랐던 처음에는 신기루인가 착각이 들었다. 음료나 과일이 있는 걸 발견하면 마치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세상 감사하다. 뜬금없이 길 위에 이렇게 시원한 음료가 있다니! 아직 마을까지 갈 길이 한참인데 배를 채울 먹거리가 있다니!
이런 도네이티브 bar는 마을 주민이 순례자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 마음씨가 '대단하다' 이전에 '신기하다'가 먼저 떠올랐다. 왜냐하면 사실상 순례자들은 본인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위해 돈과 마음을 써서 음료와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선한 마음씨이다.
도네이티브 bar 말고도 도네이티브 알베르게도 있다. 기부제로 운영되는 알베르게라 시설이 열악하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설의 깨끗함 정도도 알베르게마다 다르다. 음식을 제공하는 것도 다른데, 어떤 알베르게는 아침, 저녁, 숙박 모두 기부형인 경우도 있고 어떤 곳은 식사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도 한다. 이처럼 운영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지금까지 다녀본 도네이티브 알베르게의 공통점은 모두 친절하고 온기가 있다는 점이다.
알베르게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이지만 이 또한 숙박업이다. 대부분 친절한 사장님들이지만 사장님과 숙박객의 사이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네이티브 알베르게는 조금 달랐다. 먼저 개인이 운영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도네이티브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순례길을 걸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 자원해서 일정기간 일을 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도네이티브 알베르게 사장님들도 순례자였던 분들이시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들은 순례자들을 너무나 잘 알았다. 몸이 지쳐있는 순례자들을 위해 배낭을 대신 옮겨주기도 하고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물론 도네이티브가 아닌 알베르게도 친절하고 기억에 남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기부형 알베르게의 따뜻함을 맛본 후로부터는 일부러 기부제 알베르게를 찾아다녔다. 이 날도 마을에 기부제 알베르게가 있어서 예약을 했다. 유쾌하면서도 젠틀한 데이비드 사장님과 사장님의 취향대로 아늑하면서도 독특하게 꾸며진 알베르게 내부가 인상적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사장님은 날 반겨주셨다. 또, 알베르게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셨다. 이 알베르게가 유독 기억에 남았던 건 빨래도 사장님께서 해주셨다는 것과 탁자 위에는 포도와 배 등의 과일, 냉장고에는 각종 와인, 맥주, 음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사장님은 냉장고를 여시면서 "여기에 있는 건 전부 너의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다.
길을 걷고 알베르게에 도착한 후에는 순례자 "일"을 해야 한다. 씻고 빨래하기. 그런데 빨래를 사장님이 해주시니 씻고 할 일이 없어졌다.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고 감자칩을 하나 들고 탁자에 앉아서 배를 채웠다. 사장님과 잠깐 방문한 사장님 친구와 스몰토크를 하고 고양이를 보며 아주 여유로운 오후를 보냈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는 냉장고에서 음료수 하나를 더 꺼내 침대로 갔다. 침대 위에서 팔자 좋게 음료수를 마시며 일기를 쓰다가 잠깐 졸았다.
잠에서 깨니 빨래도 널어져 있고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다. 뒷마당에 있는 포도나무 밑 테이블에 사장님의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베지테리안 음식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음식을 다 먹고도 앉아서 계속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다 한 도네이티브 bar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도시 아스트로가에 들어가기 전 도네이티브 bar가 있었다. 그곳이 유독 감사하고 기억에 남았던 건 아스트로가에 들어가기 전 마을과 마을 사이가 꽤나 멀어서 힘들어 지칠 때쯤 나왔던 bar이고 그 음식의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가지고 있던 동전을 모두 기부 박스에 넣고 수박, 납작 복숭아, 뻥튀기, 음료수, 자두, 바나나를 먹었었다. 너무 감사했던 도네이티브 bar여서 신나게 그 기억을 말했었다.
그런데, 데이비드 사장님이 "오 마이 갓" 하더니 자신이 도네이티브 알베르게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그 bar 때문이라고 말했다. 약 20년 전 데이비드 사장님도 순례자로서 산티아고를 걸었고 그 도네이티브 bar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곳에서 한 2시간 정도 머물렀을 때, 한 다른 순례자가 와서 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순례자는 본인의 인생이 망해서 마지막으로 걷고 싶었던 이 길을 걷고 그만 살려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도네이티브 bar 사장님이 듣고는 자신의 기부 박스에 있는 모든 돈을 그 순례자 손에 쥐어 주며 이 길을 다 걷고도 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순간을 보고 있던 데이비드는 자신이 가진 돈 전부를 다른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주는 그 도네이티브 사장님의 모습이 감동적이면서도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도 그런 삶을 살리라 다짐하며 도네이티브 알베르게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부형 bar, 기부제 알베르게에 더 마음이 가는 이유는 현실에는 이런 곳이 잘 없기 때문이다. 나누는 삶은 묘한 회의감을 줄 때가 있다. (그렇다고 큰 베풂을 한 적은 없지만..) 예를 들면, 스터디 그룹에서 나는 최대한 자료를 공유했는데 친구는 공유하지 않고 본인만 갖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나 후원요청을 할 때만 연락이 오는 종교 단체 지인들, 본인이 받은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본인이 준 것만 기억하며 역정을 내는 친구 등등. 이런 아주 작은 사건들이 마음을 헛헛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메말라진 마음 상태를 마음 밭이 큰 이곳, 산티아고에서 채우고 있었다. 이게 순례길의 매력인 것 같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많은 도네이티브 bar와 알베르게를 경험하며 나도 그러한 삶을 동경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멋있는 삶이라고 느껴졌다. 이 말을 데이비드 사장님한테 말했더니 "너도 할 수 있어! 혹시 모르지 너도 나처럼 도네이티브 알베르게를 한국에서 열지도!"라고 말해주셨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열정보다는 계산이 먼저 돌아간 것 보면 베푸는 삶을 살기는 글렀다. 그래도 작은 액션 포인트라도 실천하는 삶이 되기를, 작더라도 나누는 삶을 살기를 노력해 봐야지.
산티아고 순례길 Tip_순례길 배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이용하는 그 길에서 암묵적으로 지키는 배려들이 있어요.
첫째, 마을에 들어서면 등산 스틱을 사용하지 않아요. 등산 스틱으로 땅을 짚을 때 나는 탁. 탁. 탁. 소리는 마을 주민들에게는 소음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둘째, 아침에 알베르게에서 나올 때, 침대 커버와 배게 커버는 스스로 정리하고 나와요. 공립 알베르게의 경우 알베르게 관리자가 몇 백명의 침구류를 정리해야 해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일을 덜어주고자 보통 순례자들은 본인이 사용한 침구류를 정리하는 편이에요. 또, 침대 커버를 정리하면서 빠트린 물건이 없나 확인하기도 하고요.
셋째, 샤워 빨리하기입니다. 순례자 인원에 비해 샤워실은 적어요..ㅜ 뒤에 샤워를 기다리는 순례자들이 많으니 샤워는 빨리하고 나오는 게 좋아요. 또, 어떤 알베르게는 앞사람이 샤워를 너무 길게 하면 뒷사람은 찬물로 씻게 될 수도 있어요. 빨리 씻어서 뒷사람에게도 따뜻한 물을 나눠주세요.
순례길을 걸으며 개인적으로 실천한 액션 포인트가 있어요. 바로 2층 침대의 2층 사용하기입니다. 숙소에 도착한 순서대로 원하는 침대를 고를 수 있게 하는 알베르게가 있어요. 혹시 침대가 많이 남았더라도 2층을 사용했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연세가 있으시거나 발을 조금 다친 순례자가 있으면 편히 1층을 사용했으면 해서요. (어떤 2층 침대는 2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없거든요...)
모두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