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얻었는가?
[길을 몰라서 길을 걷습니다]는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글 읽기 전 산티아고 용어>
bar(바) = 우리나라 카페와 비슷한 개념. 커피, 토스트, 음료 등을 파는 가게
albregue(알베르게) = 순례자를 위한 숙소
pilgrim(순례자) =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
donkey(동키 서비스) = 순례자의 배낭을 다음 알베르게까지 배송해 주는 서비스
산티아고 순례길은 짐을 싸는 것부터 순례길이라고 표현한다. 왜냐하면 그것부터 만만치 않은 여정이기 때문이다. 평균 35일 동안 온전히 자신의 두 어깨로 본인의 짐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울인다. 그래서 인터넷을 켜고 이전에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정보를 검색한다. 블로그를 보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순례길 짐 싸기 Tip영상'이라던가 '순례길 운동화 추천'영상 등등. 이런저런 정보를 찾다 보니 순례길을 두 발로 걷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제일 중요한 신발부터도 난관이었다. 누구는 트래킹화는 찢어질 수 있으니 등산화를 신어라, 누구는 등산화는 너무 무거우니 트래킹화를 신어라. 이 정도로 상반되는 의견이면 같은 순레길을 걸은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 두 대립에 대한 의견을 더 듣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튼튼한 트래킹화를 사는 걸로 대충 마무리 지었다. 그 튼튼한 트래킹화는 33일간 순례길을 걸은 결과 찢어졌다. 다행히 걷는 데는 무리가 없는 곳이 찢어졌기 때문에 나름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다음은 정말로 두 어깨로 짊어질 배낭에 들어갈 물건들이다. 특히 여자들은 샴푸, 트리트먼트, 스킨, 로션, 선크림 등등 평소에 액체류를 많이 사용한다. 하루에 사용하는 양은 아주 적지만 한 달 정도의 양을 챙겨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액체가 가장 무겁다. 따라서 포기할 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트리트먼트 아웃. 스킨 아웃. 인터넷에서 샴푸도 무거우니 비누 형태로 나오는 샴푸를 가져가라는 정보를 봤다. 그 의견에 동의하여 비누 샴푸를 챙겼다.
그런데 이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비누는 사용하고 나면 물이 뚝뚝뚝 떨어졌다. 샤워실에서부터 빨래 말리는 곳까지 그 비눗물을 손으로 받기도 했고 때로는 빨랫감에 감싸기도 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비누가 바싹 마르지 않아 비누가 물러졌다. 그러면 비누는 손으로 쥐는 대로 뭉개져버렸다. 또 어떤 알베르게의 샤워실은 이런 비누를 잠시 올려둘 곳조차 없다.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 찜찜함도 감수해야 했다.
짐 싸는 부분에서만 순레자들의 의견이 나뉘는 게 아니다. 알베르게를 예약하는 것과 동키 서비스에 대한 조언도 순례자들마다 말이 달랐다. 알베르게를 예약하게 되면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그 알베르게까지 걸어가야 한다. 물론 알베르게만 예약한 경우 취소할 수 있지만 동키 서비스도 이용했다면 어쩔 수 없다. 죽이 되는 밥이 되는 가야 한다. 아파서 쉬고 싶어도 예외 없다. (짐을 포기하면 되긴 하지만) 따라서 걷는 동안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냥 하루하루 걸을 수 있는 만큼 걷고 그때그때 알베르게를 찾는 방법이 안전해 보였다.
하지만 산티아고 5일 차 때 알베르게를 예약하지 않고 걷다가 그 마을에 딱 하나 있는 알베르게가 휴업하게 되면서 강제로 한 마을을 더 걷게 되었다. 이때 벌써 27km를 걸은 상태였다. 다음 마을로 걸어가며 길 중간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다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했을까?'부터 '다시 돌아갈까?' '아니야 돌아가는 길이 더 멀어...' 이 사건을 겪은 후로는 알베르게를 예약하고 다녔다. 오히려 알베르게를 예약하니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누워서 잘 곳이 있다는 안도감에 편히,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물론 31km를 걷겠다고 알베르게를 예약했는데 그 31km가 산인줄 몰라서 또 죽을 뻔했던 날도 있다.
돌아가는 비행기표 티켓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본인이 걷는 기간을 대략 유추해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예매한다. 아무래도 미리 예매해야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운동을 즐겨하지 않는 여자 중에 본인은 35일 정도면 완주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만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루 평균 25km씩 걸어야 하는 순례길의 사악함을 잘 몰랐던 것이다.(25km라면 그 거리가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대략 3만 보~4만 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외에도 걷는 중간에 부상을 당해 부득이하게 귀국을 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면 눈물을 머금고 위약금을 내고 날짜 변경 혹은 위약금을 내고 취소 후 다시 구매해야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종착지에 도착할 때쯤에 비행기표를 구매하게 되면 위의 불안함은 줄어든다. 그러나 비행기표는 훨씬 비싸진다. 최악의 경우에는 좌석이 없을 수도 있다. 이 두 선택지에 꽤나 고민을 했지만 나는 결국 리턴 티켓을 예매하지 않은 채로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고 종착지에 도착하기 약 10일 전쯤에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정해진 날짜에 무조건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니 걷는 동안에 자유로웠다. 적게 걷고 싶은 날은 마음 편히 적게 걸었고 완주 후 묵시아와 피스테라도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다.
걷는 방법들도 사람마다 다양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장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걷는다. 하지만 전부 그렇지는 않다. 참 다양한 사람들은 만났다. 바티칸에서부터 걸었다는 사람. 본인 집 앞에서부터 걸었다는 사람. 생장에서 팜플로나까지만 걷는 사람. 부르고스까지 혹은 레온까지만 걷는 사람. 레온에서부터 시작해서 포르투갈까지 걷는 사람 등등. 사실상 이 순례길은 시작부터 도착지까지 자신이 정하기 나름이다. 정해진 것은 따로 없다.
사람마다 걷는 방법도 다르다. 나는 해가 뜨기 전 별을 보는 순간이 좋아서 해가 뜨기 전에 길을 나섰다. 별도 보고 일출도 보는 게 하루의 루틴이었다. 하루는 길을 걷다가 이 이야기를 외국인과 하게 되었다. 그 외국인이 '나도 오늘 별을 봤는데 예쁘더라'라고 말했다. 당연히 나처럼 해뜨기 전에 별을 봤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 외국인은 새벽 3시부터 걸었다고 했다. 밤새 걸은 것이다. 반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새벽시간에 걷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알베르게에서 일찍 기상해도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 길을 나섰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한 이유. 이 글의 첫 화에 적어두었었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고 하던데, 정말 답이 없다면 답이 없다는 답을 얻고 싶었다. 산티아고를 완주한 지금 답을 얻었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상황들을 접하며 결국에는 본인이 내리는 결정만이 본인 인생의 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결정이 타인 인생의 답이 될 수 없다. 애초에 문제가 다른데 답이 같을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등산화가 더 잘 맞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트래킹화가 편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알베르게를 예약할 때 마음이 편하고 누군가는 예약하지 않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장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완주하지만 사실상 이는 누가 정한 것이 아니다. 또한 자신이 정한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지도 본인의 몫이다. 오로지 사진이 선택한 길이 본인의 순례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남들과 조금 다른 방법으로 산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Tip_어플 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어플을 소개하려고 해요.
1. Camino ninja
이 어플은 주로 지도를 확인할 때 사용해요. 구글 지도를 이용해도 되지만 구글 지도는 가끔 순례자 길이 아닌 길을 알려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 어플은 순례자 길을 알려준답니다. 또 gps로 현재 위치도 알 수 있어요. 투박한 지도이지만 순례자에게는 유용하답니다.
2. Buen camino
이 어플은 알베르게를 예약할 때 사용해요. 머무르게 될 도시를 정하면 그 도시에 있는 알베르게에 대한 정보를 알려줘요. 또한 그 알베르게 주인 what's app 전화번호도 연결되어 있어서 편하게 예약할 수 있습니다.
3. Camino pilgrim
이 어플은 기간 안에 순례길을 완주해야만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35일, 33일, 30일 일정에 맞춰서 순례길 일정을 안내해 줍니다. (그래도 저는 순례자 본인이 걷고 싶은 대로 걷는 것을 더 추천해요.)
어플들을 이용하면 순례길 걷는 동안에 유용하게 사용하실 거예요.
모두들 buen camin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