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

못다 한 이야기

[길을 몰라서 길을 걷습니다]는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안녕하세요. 글쓴이 황제펭귄입니다. 요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어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도 나중에 연재할 듯싶어요. 혹시나 저의 글을 기다려주신 독자 분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ㅜ 이 글이 이 브런치북의 마지막 이야기이고 다음 주는 '글을 마치며..'목차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읽기 전 산티아고 용어>

bar(바) = 우리나라 카페와 비슷한 개념. 커피, 토스트, 음료 등을 파는 가게

albregue(알베르게) = 순례자를 위한 숙소

pilgrim(순례자) =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


보너스


33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앞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미사도 드리고 버스를 타고 묵시아로 이동했다. 몇 걸음 걷지도 않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아주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일정은 피스테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나의 여정은 피스테라에서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묵시아에서 피스테라까지 약 30km. 피스테라로 이동하는 날 아침 문득 그냥 걸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심 이 여정에 아쉬움이 있어나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또 걷기도 했다. 보너스 걷기이다.


어김없이 해가 뜨기 전에 나왔다. 여느 순례길과 다름없는 일정인데 한걸음 한걸음이 아쉬웠다. 안개가 낀 이 숲길이, 스페인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 너무 그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이날 유독 사진을 더 많이 찍었다. 또 걷다가 사람들과 마주치면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다.

안개 낀 숲
아쉬운 마음에 찍었던 사진들


사진을 찍으며, 혼자 노래를 듣고 부르며, 또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거의 피스테라에 가까워질 때쯤 어떤 스페인 할아버지가 날 불렀다. 불러서 가까이 가보니 donative bar였다. 싸리아 이후에는 이런 bar가 많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여기서 마주치니 더 반가웠다. 당연히 그 bar에 앉아서 음료수를 먹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도네이티브 바에서


앉아서 음료수만 마신 게 아니다. 그 bar는 자유롭게 사는 할아버지와 청년이 만든 공간이었다. (부자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아저씨가 나보고 집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집 마당에는 큰 개와 양이 있었다. 그리고 기르는 고양이를 내 품에 안기게 해 줬다.


이때만 해도 벌써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보통은 2시쯤이면 알베르게에 도착해야 할 시점인데 마지막 길이라 늦장을 부렸다. 게다가 '마지막'이라는 힘은 엄청났다. 이 donative bar에서 음악 틀고 다른 순례자들이 춤을 췄다. 나는 당연히 앉아서 음악을 즐기기만 했다. 그런데 그 청년가 춤을 권유하는 게 아니겠는가..! 평소라면 당연히 거절했을 텐데 '이 길이 정말 마지막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승낙을 해버렸다. 막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거의 3시가 다 되어서 그곳을 떠났다. 그러고 4시가 넘어서 피스테라 0km 비석에 도착했다. 마지막까지 걸어서 0km 비석에 도착하지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 "잘 걸었다. 이젠 집에 가자."


못다 한 이야기


보너스 글인 만큼 이 글에는 못다 한 이야기를 적으려고 한다. 한 목차로 풀어내기에는 짧았던 이야기 들이다.


길을 잃다

약 800km를 걷는데 길은 한 번도 안 잃을 수 있을까? 나의 경우 총 3번 길을 잃었다. 한 번은 메세타 길이었다. 이 날도 별을 보겠다고 해가 뜨기 전부터 걸었다. 주변이 잘 보이지 않지만 괜찮았다. 메세타 길은 길이 거의 하나로 쭉 뻗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별을 보며 길을 걸었다.


그런데 왠 큰 도로변이 나왔다. 도로에는 덤프트럭이 지나가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 길은 아닌 듯싶었다. 그제야 지도를 확인하고 길을 잘 못 온 걸 알아차렸다. 약 20분 정도 잘 못 걸어왔다. 다시 길을 되돌아가고 순례길 표지판을 확인했다. '이 큰 표지판을 왜 못 봤지?'

못 본 표지판


다음번도 아침에 길을 걸을 때 일이었다. 이 날은 동행하는 순례자가 있었다. 아침에 함께 준비해서 같이 길을 걸었다. 조금 길을 걷다 보니 다른 순례자가 앞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동행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걸었다. 그런데 길이 점차 풀숲으로 가더니 길이 사라졌다. 앞서가던 순례자가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선 순례자를 따라가다 덩달아 길을 잘 못 든 것이다. 그래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거리였다.


마지막은 나로 인해 다른 순례자도 함께 길을 잃은 일이다. 이 날도 해가 뜨기 전 길에 나서서 해드랜턴을 비추고 길을 걸었다. 길이 복잡한 편이어서 랜턴을 이리저리 비춰가며 길을 걸었다. 그런데 앞서 걷고 있던 순례자 한 명이 모자로 자기 얼굴을 다 가리고 옆으로 비켜서 우두커니 섰다. 그러곤 나에게 "너 불빛이 너무 밝아. 나는 빛이 필요 없으니까 너 먼저 가."라고 말했다. "오케이... 암 쏘리"하고 앞서 나갔다. 보통이라면 빛이 밝더라도 눈만 살짝 가리고 말할 텐데 모자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꼴이 기분이 나빴다. '뭔 저런 사람이 있어. 짜증 나게.' 하면서 계속 길을 걸었다.


그런데 길을 걸으면서 조금씩 이상했다. 아무리 길게 쭉 뻗은 길도 이쯤 되면 표지판 하나쯤은 나와야 하는데 아무 표지판도 안 나오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도를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해가 점점 뜨길래 해드랜턴을 정리할 겸 랜턴을 끄고 길 위에 섰다. 그 순간 그 순례자가 바로 내 앞을 쌩하고 지나갔다. 2차로 기분이 나빴다. 눈을 흘기고 지도를 켰다.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잘 못 들어섰다.


이번에는 꽤 긴 거리를 잘 못 들어섰다. 그래서 잠깐 이 길로 계속 가다가 우회전하면 순례길로 다시 합류하는데 그렇게 걸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무모한 도전 같았다. 길이 아니라 차가 다니는 도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나를 따라오던 그 기분 나쁜 외국인 순례자가 방금 날 지나치지 않았는가. 다시 불러? 말아? 고민하다가 그래도 인간적 도리로 불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순례자는 벌써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발걸음이 얼마나 빠른 거야...) 그래서 그냥 나 혼자 돌아갔다.

해 뜨기 전에 보는 표지석


세 번째로 길을 잃으니 길이 참 인생이랑 비슷하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가도 길은 잃을 수 있고 남 따라가도 길을 잃을 수 있다. 인생의 길을 잃으면 참 큰 일처럼 느껴지는데 그냥 길이라고 생각하면 가벼워진다. 그냥 되돌아가면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오더라

철의 십자가를 지나고 나는 더 이상 산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산이 있었다. 작은 산일 거라 생각해서 이것만 넘으면 평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산을 올랐다. 그런데도 오르막길이 끝나지 않았다. 쉬고 갈까 말까를 계속 고민했다. 하지만 맨바닥에서 쉬고 싶지 않았고 bar에 가서 시원한 콜라 한잔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올랐다. 이 한 언덕을 오르니 거짓말처럼 bar하나가 있었다. 산 꼭대기 bar였다. 시원한 콜라를 주문하고 얼음컵도 달라고 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배낭을 내려놓고 콜라를 땄다. 거기에 어제 사서 온 견과류까지 먹었다. 정말 천국 같았다.

산꼭대기 바


순례길을 걷는 일주일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길 온다고 했을까? 왜 이 힘든 걸 하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길을 걸으며 생각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이건 뭐 힘들어서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신이 힘들어서 왔는데 정신과 신체가 모두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피스테라까지 모두 걷고 다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도 넘어와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그동안 썼던 일기장을 처음부터 읽어 봤다. 초반에는 힘든 이야기, 고민거리가 적혀 있었는데 날짜가 지날수록 일기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음이 점차 회복되었다는 게 일기에서도 느껴졌다. '고생하길 잘했다.' 마음의 회복이 순례길에게 가장 원하던 것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일기장 읽기


이렇게 순례길이 끝났다.

안녕,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 Tip_산티아고 공항까지

순례길을 완주하고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혹은 포르투갈로 여행을 계획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비행기로 이동하게 될 텐데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 산티아고 공항은 정말 가까워요!

6A라는 시내버스가 공항까지 갑니다. 가격은 1유로예요.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좋은 여행 하세요.
Buen cami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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