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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uhm Apr 04. 2024

강아지를 위한 장례식

개농장에서 태어난 우리집 강아지 이야기


우달이가 찍힌 첫번째 사진

개농장에서 소위"육견"으로 태어난 우리 우달이는 먼저 키우고 있던 강아지 "우혁"의 이름에서 돌림자를 따와 이름을 지었다. 생후 2달이 안되었을때, 아버지의 공장에서 고철을 가져가던 고물상아저씨(부업으로 개농장으로 하던)의 선물자격으로 당시 강원도에 있던 아버지의 공장 2층 집으로 오게 되었다. 고물상 아저씨는 공장을 지키라며 선물해주었지만 우리는 강아지를 밖에서 키우는 집이 아니었고 우달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공장에 온 첫날부터 댕청댕청한 미친 매력으로 아버지를 포함 우리가족을 홀려놓았기 때문에 가족끼리도 서로 안아보겠다고 난리였다. 사실 개를 별로 좋아하않던 우리 아버지 마저 우달이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어릴때 나랑도 해본적 없는 공놀이를 우달이와 하기도하고, 이갈이 할때 말썽부리느라 안전모를 몇개씩이나 해먹었어도 단 한 번을 혼내지 않았다.


그런 우달이는 세달만에 정말 쑥숙 자라기 시작했다.

이때가 우달이 생후 3달 무렵이다.


그렇게 계속 자라더니 덩치가 너무 커서 거의 송아지 만한 사이즈가 되었다. 때문에 중성화 수술하고 사이즈 가 맞는 넥카라가 없어서 송아지용 넥카라를 했어야만 했다.

송아지 만한 사이즈로 자란 우달이의 사진.


하지만 천성이 너무 착해서 이갈이를 잠깐 하던 시절을 제외하면 말썽을 부린적이 한번도 없었다. 자기보다 작은 개들에게는 멍청할 정도로 상냥해서 자기 머리통보다 작은 우리집 다른 강아지 '우동'이에게도 매번 져주었다.

우동이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는 우달이.


우동이의 잔소리를 피해 동생 콩돌이와 책상밑으로 피신한 우달이의 사진


그렇게 우달이는 11년 동안 우리가족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다가 2년 전인 2022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우리 엄마는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널때 마다 장례를 치러주듯 꼭 정성스럽게 염을 해주었다. 힘없이 흐트러진 다리를 곱게 모으고, 앓느라 꾀재재해진 얼굴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한지로 정성스레 몸을 감싸 덮어주었고, 입에는 한지를 곱게 말아서 혀가 튀어나오지 않게 입에 물려주었다. 그렇게 우리가족은 강아지 4마리를 무지개 다리로 건너 보냈고 우달이는 그 중 하나였다. 늙고 병든 강아지를 버리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내 심장이 늙고 병들었다고 해서 어찌 버릴 수 있을까. 엄마는 이미 본인의 심장처럼 소중했던 강아지 4마리를 보냈다. 엄마도 이제는 지쳤다고 한다. 우달이 얘기만 하면 아직도 화제를 돌린다. 사라진 심장의 빈자리는 여전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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