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의 세월도 PTSD를 없애지는 못했다
우리 가족은 단출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저
3명이 다 같은 사건으로 인해 PTSD가 생겨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 전부 다 공통적인 사건을 제외하고 각자의 다른 사건 하나씩이 더해져서 복합적인 증상들이 나타나서 정신과 진료가 아니라 실제로 major과 진료를 받으면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요즘 눈에 보일 정도로 어머니께서 힘들어하시는 게 보입니다.
어머니가 힘들어하시는 이유를 저는 알 것 같았어요.
그냥 지금의 상황 그리고 여건들이 15년 전의 정말 기나긴 법정싸움을 하기 바로 직전의 상황에 이런 괴롭힘을 당했거든요.
괴롭힘의 당사자가 어머니는 아닙니다. 이제는 부모님도 나이가 드셨고, 저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 생겨서, 제가 부딪히고, 심지어 저는 제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저를 가르치셨던 교수까지 끌어들이고, 말 그대로 정말 이판사판인 상황입니다.
저는 항상 누구한테 씹히고 이러는 부분에 신경을 쓰는 편이기는 하지만, 일상에 지장이 올 정도는 아니에요. 가족만 안 건드린다면......
그런데 저나 부모님이 전부 다 공통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과거와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 순간부터는 바로 일상이 바로 정지됩니다.
나쁘게 보면 마주하는 상황을 피해 가려고 하는 것이고, 좋게 보면 우선 상황을 보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많이 답답합니다.
아마 제가 정신과 전문의라고 해도 지금 어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신의 감정 그리고 자신의 아픔이기 때문에, 저는 어머니를 옆에서 봐왔기 때문에 알지만,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섣부른 개입은 오히려 상처만 더 깊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래서 다른 상처를 받은 친구들이나 선배나 저한테 말을 걸어왔을 때, 일단은 들어주는 편입니다. 제가 잘 들어줘서 그런 게 아니라, 우선 상황을 모르는 것도 있고, 그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차라리 저한테 말이라도 해서 좀 풀어지기를 원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말도 잘 안 하시는 분입니다. 약간 이럴 때 생각을 해보면, 어머니가 남자 같기도 하고, 어머니가 발휘했던 리더십의 한 부분이 '침묵'과 '기다림' 그리고 '부하직원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나 생각도 해봅니다.
얼마 전에 저는 어머니가 약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직 어머니는 살아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386
어머니가 까마득한 막내이기 때문에 계속 말을 못 하다가 결국은 폭발을 한 상황인데, 사람이라면 아마 그런 상황을 더 무섭게 생각하리라 봅니다. 평상시에 가만히 있던 사람이 갑자기 폭발을 하면 분명히 무슨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되니까요.
계속 저는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죄책감에 몸부림치게 됩니다.
저는 또 1년을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되어버렸고,
그것 때문에 지금 어머니가 저렇게 된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전부 다 저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만 머리에 계속 돌아다닙니다.
그냥 저는 어머니가 저렇게 힘들어하시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참 미련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절대로 우리 어머니는 사람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지 않으세요.
사람을 다 같은 선상에서 보려고 하는데, 막상 주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서 충돌이 벌어지고, 씹히고, 상처받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가족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 느끼는 소외감이나 그리고 어머니가 워낙 말이 없으셔서 가족 간에 이상한 소문이 도는 건 지극히 평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머니가 조금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실 지금 버틸 힘이 없는데, 그냥 우리 가족이 살아야 하니까, 정신력으로 어찌어찌 붙잡고 있는데, 어머니가 무너지시면, 저도 무너져 버릴 것만 같거든요.
솔직히 그냥 다 저로 인해서 이렇게 되어버린 건 아닌지 심적으로 많이 힘든데, 그냥 어머니만 편안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