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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샤 May 15. 2024

보고 싶은 이금순 할머니.

이런저런 얘기 함께 나누던 단짝 친구.

몸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할머니 몸은 삐걱댔다. 그런 탓에 눈, 심장, 관절 등 관련된 약만 해도 한주먹씩 먹어야 했다. 손가락 끝에 침을 발라 방바닥 먼지를 꼭꼭 찍어 가며 "눈만 잘 보이면 살겠다."라고 욕심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꽃게를 좋아해 집게 다리를 맨입으로 깨부수어 먹던 할머니는 채 할까 겁난다며 미리부터 숟가락을 내려놓곤 했다. "어서 가야지, 어서 죽어야지"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과 다르게 한 끼라도 약을 거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할머니.


엄마는 일을 하기 위해 잠깐 타지로 나가야 했다. 우리 자매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할머니는 13살에 시집와 주변머리 없는 할아버지 때문에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았다고 했다. 형편이 할머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다소 거친 매력의 소유자였다.


우리 자매를 타박할 때면 ‘개뼉다귀 같은 년, 호랭이가 물어갈 년, 넉 빠진 년, 행맹이진 년’ 등 모든 단어 뒤에 정성스레 '년'을 갖다 붙였다. 그렇다고 막무가내식의 쌍욕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악을 쓰며 드세게 굴었던 할머니도 이웃 사람들에겐 경우 바르고 좋은 아낙네였다. 술을 못해 담배 태우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이야기했던 작은 체구에 슈퍼우먼이었다.


옛날 못살던 시절, 할머니는 자식들 배곯지 않게 하려고 부잣집 잔치음식을 해주러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은 유난히 맛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반찬인데도 할머니가 해주면 달랐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종종 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산후조리 할 때도, 젖을 말릴 때도 엄마보다는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는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였다. 하다 못해 간밤에 꾼 꿈에 대한 해몽이 궁금할 땐 할머니한테 "할머니, 내가 꿈을 꿨는데 이건 어떤 꿈이야?"라고 묻곤 했다. 할머니라고 어찌 다 알겠는가. 손녀가 궁금해하니 살아온 연륜으로 잘 버무려진 설명을 그럴싸하게 해 주었다. 할머니는 눈이 어두웠지만 귀는 밝았다. 그래서일까? 이야기는 또 왜 그렇게 잘 통하는지. 단짝친구처럼 어떤 얘기든 잘 들어주었다.


아이들이 자라 손이 덜 갈 때쯤 할머니를 찾을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늬이 집에 좀 가 있으련다. 바람 쐬고 마실 간다 생각하고 며칠 가서 있으마.”


그러고 보니 시골집으로 이사 오곤 할머니가 집에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날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온 할머니는 더 작고 더 많이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좋다. 이히. 어허이.”


풀숲 그대로 자리한 집에 와서는 반복해서 '좋다. 좋다'를 외쳤다. 뭐가 저리 좋아서 연신 추임새를 넣는지 알지 못했다. 담배를 태우는 할머니는 하루에도 열두 번 현관문 밖을 들락날락했다. 마당을 휘휘 돌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 양말과 바지자락에 검불이 붙어왔다. 흙강아지가 되어 온 어린아이를 닦아주듯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닦고 치워야 했다.


“할머니 이게 뭐야. 옷에 전부 지푸라기 묻히고 들어와서는 바닥에 떨어지고!”

“으흐이. 훠이. 좋다. 네가 암만 뭐래도 조오타.”


암만 큰소리로 잔소리를 해도 언짢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진심 기분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렇게 좋은가. 눈이 좋지 않았던 할머니는 옷에 뭐가 묻어도 알지 못했고 끊임없이 검불을 달고 들어왔다.


언제나 그렇듯 작별의 순간은 왔다. 오래도록 집을 비웠기에 돌아가야 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이내 손수건을 꺼내 흔들고 눈물을 흘렸다. 어느새 할머니는 아이처럼 약해져 있었다. 소리치며 타박하던 슈퍼우먼은 온대 간대 없었다. 믿고 의지하던 든든했던 할머니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손수건을 흔들며 울고 있던 할머니 모습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영상으로 남았다.

할머니 거기서는 안 외롭지? 안 아프지? 울 일도 없지? 거기도 우리 집 마당처럼 좋지?






사진출처 : pexels-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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