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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샤 May 05. 2024

앞니 빠져도 완벽한 43살의 미모.

48살, 43살 부부의 교정치료 스토리

나와 그분의 콤플렉스는 치아가 고르지 않다는 것. 가지런한 치열에 대한 갈망이 컸던 나는 우리 아이들만큼은 예쁜 치아이길 바랐다. 두 아이 교정치료는 그런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분이 이가 보이도록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개그프로그램에서 재밌는 장면이 나와도 그저 썩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두운 사람인가? 딱히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 여겨졌다. ‘웃기면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면 되지. 왜 저렇게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건지. 참내. 굳이 웃음을 참는 이유가 뭐야?’ 그런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고 미웠다. 어느 날 물었다. 


“당신은 재밌어서 크게 웃은 적 있어? 난 못 본 것 같은데, 웃긴 게 없어? 안 웃겨?” 


그분은 크게 웃으면 덧니가 보이는 게 싫다고 대답했다. 엥? 20년 만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더 이상 어정쩡한 웃음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한 그분은 48살에 치아교정을 시작했다. 고작 덧니 하나에 교정치료를 하다니. 


‘그럼 난?’ 어릴 때부터 상악 좌측 측절치 결손으로 앞니가 3개였다. 자연스레 배치된 덕에 치아를 다 드러내고 환하게 웃어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난 잘 웃는 사람이었고 웃을 때마다 이뿐만 아니라 잇몸까지 다 열어젖히는 사람이었다. 


그분을 시샘이라도 하듯 갑자기 앞니가 신경 쓰였다. 곧바로 교정상담을 받았다. 교정을 통해 임플란트가 식립 될 공간을 만들고 생겨난 자리에 임플란트를 심을 수 있다고 했다.


“너만 덧니 있냐? 나는 앞니 없다. 쳇!”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5살 나이 차이를 확인시키듯 영락없는 여동생처럼 철없었다. 


하관이 좁아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위, 아래 작은 어금니 4개를 발치한 후 교정치료에 들어갔다. 생니를 뽑는 것은 꿈에도 상상해 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쉽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에 후회 또한 LTE급으로 밀려왔다. 48살 오빠(그분)를 시샘한 43살 여동생(나)은 괜한 시기심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듯했다. 


브래킷을 붙이고 와이어를 장착하여 치아들을 이동시킬 때마다 임플란트가 식립 될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틈이 조금씩 넓어지며 맹구처럼 앞니에 구멍이 생겨버렸다. 개그맨들이 앞니에 김을 붙여 웃어 보이는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앞니에 김을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웃길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임플란트를 심기 전까지 빈 공간에 감쪽같은 임시 치아를 만들어 붙였다.




그분과 난 비교적 순조롭게 교정치료를 마무리했다. 치아에 붙어 있던 모든 장치들이 제거되던 날엔 철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정하는 동안 식사 할 때마다 음식물이 와이어에 빨래 널리 듯 걸려 무진 불편했다.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매끈하게 훑어지는 것이 신기해 혀로 치아를 연신 훑어댔다. 


앞니여서 심미적인 부분이 중요할 수 있었다. 임플란트는 대학병원에서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임플란트만 하면 정말 모든 과정이 끝난다는 해방감이 들어서였을까. 해맑게 치과 의자에 앉았다. 


애당초 결손치아였기 때문에 치조골이 전무한 상태에 가까워 뼈 이식은 필수 과정이었다. 마취를 잇몸에 놓아 따끔하고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잇몸 절개 과정에서 통증은 없었지만 입천장과 콧구멍까지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기절 시켜줬으면 좋았을 걸. 소름 끼치는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술하는 동안 내가 외친 말은 이랬다.


“코... 구... 머.....ㅇ... 코.... 뚜....ㄹ... 려.. 코. 구. 멍..”


쓸데없이 해맑았던 나 자신이 미웠다. 다음날부터 추석 연휴였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통증이 밀려왔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엉망이었다. 입 주변에 잔뜩 피멍이 올라와 팅팅 부어 있는 게 아닌가. 딸이 말했다. 


“엄마, 괜찮아? 옆모습이 앵그리버드 같아.” 


입이 붓다 못해 새부리처럼 저 멀리까지 튀어나와 있었다. 통증 때문에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눈썹마저 올라가 있었으니 그렇게 보일만도 했다. 


명절 연휴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눈물짓고 있어야 했다. 음식조차 먹지 못하는 새부리가 되어버린 입모양을 가족들은 씁쓸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뼈 조직이 잘 형성되길 기다리는 동안 임시치아로 빈 공간을 채워놓았다. 그전처럼 밝게 웃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임시치아는 완벽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뼈찜을 먹으러 갔다. 콩나물과 돼지등뼈를 매콤한 양념으로 버무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먹을 때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를 온몸으로 보내며 뼈찜에 진심이었다. 순간 뭔가 허전했다. 고개를 들어 마주 앉아 있는 그분의 눈을 보며 말했다. 



“임시치아 빠졌나 봐.” 


앞니 사이로 혀가 들락날락했다. 나는 입을 활짝 개방한 채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떡해! 호호호. 임시치아가 떨어져 버렸네. 어떡하지? 호호호호.”

“뭘 어떡해. 어차피 지금 병원 못가니까 내일 가서 진료 봐야지. 그냥 먹어.”


내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그분은 차분히 정보를 전달하듯 말했다. 나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계속 웃음이 터졌고 그분은 전혀 웃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고도 웃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강적이었다. 


“앞에서 이러고 있는데 안 웃는다고? 하하하하하. 나 이빨 없잖아. 봐봐. 안 웃겨? 하하하 하하 호호 호호호호”


그날 난 일부러 입을 가리지 않고 웃었다. 뼈찜 맛에 행복해서 웃었고, 이 나이에 앞니 빠진 중강새가 된 것이 재미있어 배꼽 빠지게 웃었다. 보란 듯이 더 활짝 웃어 보였다. 앞니 하나쯤 없어도 내 미모는 완벽하니까.


그냥 너도 나랑 같이 크게 웃자! 하하 호호.




사진출처 : pexels_Lara Jame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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