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노인 관련 업무를 한 지 2년 남짓 되어가던 때였다. 퇴근 후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살림과는 담을 쌓고 저녁은 외식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피로를 풀기 위한 방법은 일찍 잠을 청하는 것뿐이었다. 잠자리에 들면 반려묘 우쭈는 언제나 그랬듯 내 배 위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우쭈는 며칠째 잠을 자지 않고 보챘다. 베개 머리 위를 뱅뱅 돌고 칭얼댔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듯 내 머리카락을 휘저어대기까지 했다. 피곤했던 나는 이유 없이 보챈다고 생각하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며칠을 그랬을까.
오랜만에 싱크대 앞에 섰다. 그분도 기대감에 옆에서 기웃거렸다. 양념을 꺼내느라 싱크대 개수대 밑 오른쪽 문을 열다가 이내 손을 떼었다. 실낱같이 열린 틈사이로 보이는 낯선 정체. 그냥 본능(동물적 감각)이었다.
‘뭐지?’ 찰나의 멈춤. 순간의 감각이 느끼고 있는 것은 뱀이었다. ‘뱀? 말이 돼? 웬 뱀?’ 말도 안 된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분명 뱀이었다.
그분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다. 그분은 차분하게 말했다.
“방에 가있어.”
“아악!!!!!!!!! 난 몰라. 몰라. 미쳤나 봐. 몰라. 꺅!! 아악!!!!!!!!!!!!!!!!!!!!”
온몸에 닭살이 돋아 솜털 한 올 한 올 화살촉처럼 뻗쳐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싱크대에서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한 아들 방으로 냅다 줄행랑을 쳤다. 창문으로 현관 밖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분이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막대기가 뱀과 결투를 벌이는 유일한 장비였다.
그분이 군대에서 뱀 잡은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새빨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거실 바닥에 뱀을 떨어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툭.’ 여러 차례 반복되는 툭, 툭, 툭, 소름 끼치는 소리에 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화살촉처럼 솟아있는 솜털을 쏘고 싶었다.
우쭈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창틀 위에 앉아 바깥 상황을 지켜보며 ‘꾸르릉’ 댔다.
순식간에 우리 집은 진돗개 하나(최대 비상경계 태세)가 발령되는 경보단계가 되었다. 예비군(그분)이 최우선으로 지정된 지역(싱크대)에 출동해 있었다.
어떻게 뱀이 싱크대 안에 들어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잔뜩 호들갑을 떨며 격앙된 말투로 그분에게 이게 무슨 일인지 묻고 또 물었다. 취조하듯 쪼아대는 내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분인들 알리가 있나, 그분이 뱀을 푼 것도 아니지 않나, 화살이 그분한테 갈 이유가 없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요란하게 감정을 쏟아내며 거칠게 푸푸 대는 것이 나의 마음을 가라앉힐 최상의 방법이었다.
심호흡과 함께 정신 줄을 부여잡고 싱크대 앞에 섰다. 기필코 집밥을 해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조심스레 왼쪽 문을 빼꼼히 여는 순간 내 눈, 아니 나의 동물적 감각을 부정하고 싶었다. ‘또, 뱀? 이런 미친 상황이 실제 상황이라고?’ 이런 생각도 잠시 저 세상 고음으로 온 집안을 흔들었다.
“꺅!!! 악!!!!!!! 말이 되냐고!!!!??? 신혼부부도 아니고 왜 내 집 싱크대에 뱀 두 마리가 나란히 칩거 중인 거냐고!!!??”
기절할 것 같았다. 뱀을 두 번이나 목격한 내 눈을 찌르고 싶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날 나에게 순간이동 능력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두발을 동동 거리며 온몸이 물결치듯 부르르 떨려왔다. 10만 개의 머리카락이 쭈뼛거리며 사자 갈퀴처럼 한껏 부풀려졌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어떻게 싱크대 안에? 언제부터?’ 혼자 묻는 물음이 백가지는 되는 듯했다.
더 이상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저녁 준비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싱크대 앞은 공포의 공간이었다. 그분에게 말했다. "다시는 싱크대 앞에 서지 않을 거야!!!"
이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우쭈가 눈에 들어왔다. 그랬다. 우쭈는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다. 며칠 동안 내 머리카락을 휘저으며 얘기를 했었다. 내가 못 알아들었을 뿐.
그간 우쭈가 했던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맙소사! 이런 천재 고양이가 있을까? 우쭈를 끌어안고 연신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칭찬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아챈 우쭈가 나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있잖아. 뱀이 어떻게 들어왔냐면.”
이런 내 모습을 한심한 듯 바라보던 그분이 내뱉은 한마디.
“참내, 뱀은 내가 잡아줬는데 왜 우쭈를 칭찬을 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분의 활약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 줘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