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여자와 32살 남자.
5년을 연애했다. 서로 다른 성향이었지만 용납 되지 않는 단점을 딱히 찾을 수 없었다. 직장인(나)과 프리랜서(그 분)로 생활 패턴이 많이 달랐지만 사랑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전혀 다른 식성도 문제 되지 않았다.
“신림동 순대곱창 먹으러 가자.”
“오빠, 순대곱창 못 먹잖아?”
“안에 들어 있는 야채 먹으면 되지.”
“그래.”
그 분은 내 얘기에 다른 의견을 내지 않는 사람이었고 나 역시 그런 여자였다. 분명 그랬다. 오죽하면 그런 날 보고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던 눈만 껌뻑인다고 ‘소’라고 표현 했을까.
만화책을 좋아하던 그 분은 마무리 데이트 코스로 만화방에 자주 들렀다. 만화에 관심이 없었던 난 그 곳에서 하는 군것질이 좋았고 과자 한 봉지를 조심히 뜯어 소리 나지 않게 먹으려 애썼다. 낡은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스윽, 스윽’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듣다 어깨에 기대어 잠들기 일쑤였다. 그 때 우린 달랐지만 다른 줄 몰랐고 불편하지 않았다.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난 그 분을 ‘오빠’라고 불렀다. “아이도 낳았으니 호칭을 바꿔야 하지 않니?” 시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나이 서열을 알 수 있는 ‘오빠’에서 ‘여보, 당신’으로 부르게 된 나는 나이 서열 따윈 잊은 냥 점점 성질머리를 치켜들기 시작 했다.
살림하며 아이 키우고 네일샵까지 하며 바쁘게 살던 때였다. 아무리 바빠도 느긋느긋하며 여유로워 보이는 그 분의 모습에 심술이 뻗쳐 말했다. “당신 개미와 베짱이 동화 알아? 난 거기 나오는 개미 같고, 당신은 베짱이 같아.”라며 꽈배기를 꼬아대자 그 분은 자신이 원조 꽈배기 장인이었다는 듯 한마디 던졌다. “당신은 쌈닭이지.” 회심의 한방을 날리고 자신이 한 적절한 비유에 스스로 만족하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이런! 미친.’
“그런 소리 하지도 마! 당신이 연애 할 때 나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소 같다고 했어. 이젠 무슨 말만 하면 쌈닭이라고?! 소가 왜, 어떻게 쌈닭이 됐겠어?!!”
“..........................................”
눈치코치 없는 말 한마디에 대가는 크고도 혹독했다. 독기어린 감정에서 쏟아지는 침방울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으며 그 분은 꾸역꾸역 말을 주워 삼켜야만 했다.
결혼 13년차. 그 분은 아주버님 밑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독자적으로 여행업을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진 탓이었을까. 모든 말과 행동이 눈엣 가시처럼 계속 걸리는 게 아닌가. 넘치는 배려는 우유부단함으로 보였고 말없이 들어주던 모습은 대화가 안 통하는 답답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뭐든 신중하고 느린 태도는 게으른 사람이라 생각됐다. 알아서 사다주던 선물은 내 취향을 무시한 채 하는 행동이라 생각되어 고맙지 않았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던 그런 시기였다.
재활용쓰레기 좀 버려 달라고 부탁하면 바로 해주는 법이 없었다. 언제 움직여 줄지 기다리는 시간이 한 달처럼 길게 느껴졌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내가 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그 분은 “내가 버리려고 했는데 그냥 두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달랐고 나는 재촉하는 날이 많아졌다.
순대, 내장탕, 닭발, 소머리국밥 등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부위가 없을 정도로 잡식성이었던 나. 얼큰하고 뜨끈한 매운탕을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호로록 대며 “진짜 맛있다. 맛있지?”를 연발하며 함께 먹고 싶었다. 닭발의 발가락을 ‘오도독, 오독.’ 발라 종이컵에 ‘퉤퉤’ 뱉고 방울뱀 소리(‘스읍, 아. 매워. 스읍.’)를 내며 “매운데 맛있다. 그치?” 맛있음을 서로에게 강요하고 확인하는 시간들이 있었음 했다.
고춧가루만 봐도 딸꾹질을 하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마른 반찬과 간단한 식사를 즐겼던 그. 젓가락 이외에 다른 도구를 사용해서 먹을 필요가 없는 건조하고 수분기 없는 음식들을 선호했다. 숟가락과 손가락을 번갈아가며 쪽쪽 빨아 먹는 즐거움을 함께 하지 못해 나의 입안은 메말라 갔다. 먹는 즐거움으로 사는 나와 살기 위해 먹는 그 분은 다른 공간에 있는 듯 했다.
“어디야?”라는 물음에 “인천.”이라는 대답과 함께 스무고개가 시작됐다. 나는 한 번에 모든 내용이 파악될 수 있게 구체적으로 얘기해주는 것을 바랐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켜켜이 불만이 쌓인 나는, 이혼 얘기를 시도 때도 없이 뱉어대는 못된 주둥이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굿모닝, 이혼해!’ ‘굿나잇, 이혼할래?’
눈망울이 클로즈업 된 것 같은 순한 ‘소’라는 표현이 좋았다. 억시게 일만하는 일소였던가 싶은 생각에 기분이 나빴고 쌈닭으로 보이는 현실은 더더욱 싫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해? 당신하고는 맞는 게 하나도 없어. 달라도 너무 달라. 자면 자느라 못 듣고 깨어 있어도 내 얘기가 안 들리는 사람이야. 이혼해! 내일 아침 11시에 법원 앞에서 만나.” 뭐든지 급하고 빨랐던 난 말없이 눈만 깜빡이는 그 분의 대답을 기다려 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전날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게 비장함을 유지한 채 샵 오픈 준비를 했다. 사실 법원에서 만나면 이혼이 되는 건지 어떤 절차가 필요한 건지 알지 못했고 머리가 복잡했다. 예약손님 스케줄 조정이 필요하겠다 싶어 스케줄표 확인도 잊지 않았다. 아침부터 좋을 것 없는 날이었다.
급할 것 없는 성격인 그 분에게 재촉 전화를 걸었다.
“11시에 법원 앞에서 보기로 한 거 알지? 늦지 말고 나와요.”
“응. 근데 나 못 나가는데?
1~2초의 정적과 함께 흘러나온 말은 가관이었다.
“빨래하고 청소기 돌려야 돼.”
“어? 그걸 꼭 오늘 해야 돼?”
“그럼 언제 해. 지금 해야지.”
이런 식의 대처능력은 신이 주신 게 분명했다. “말이야, 방구야.”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상시 내 지론은 ‘당장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자.’였으니 청소기와 빨래 돌리기를 지금 실천하겠다는 말에 반박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예약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000님, 오늘 예정대로 11시에 오시면 돼요.”
사진출처 : pexels_Lisa Fot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