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며 모유수유를 고집하던 나는 말이 산후조리였지 몸조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출산 이후 신체의 모든 감각 기관과 세포들이 24시간 깨어 있었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특히 청각과 시각이 초초초 능력적으로 변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생명체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자신의 요구사항을 울음소리로 표현했으며 나는 그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느라 곤두서 있었다.
모유수유의 길은 생각 보다 고단 했다. 자의든 타의든 하루 중 최대로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눈을 붙였다 땠다를 반복하며 나의 성질은 더욱 날카로워져 갔다. 확실히 그랬다.
그 분은 그렇지 않았다. 머리만 대면 코를 골았고 눈만 감으면 잠이 들었다. 잠이 잘 드는 것까지 어찌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한 번 자면 아무리 깨워도 듣질 못한다는 거였다.
막 젖을 먹이고 아기를 뉘인 후 잠깐 눈을 붙이려던 찰나에 알람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아기도 나도 깼다. 젠장. 소리의 범인은 휴대폰에 3~4개 이상 알람을 맞추고 자는 그 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런 알 수 없는 시간대(새벽 2시,4시 뭐 이런 식이었다)에 알람을 맞춰 놓고 매일 울리게 하는 거지!?’
역시나 여느 때와 같이 듣지 못한다. 미칠 노릇이었다. 벌써 두어 달째 반복되는 현상이었다. 처음 하는 육아로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난 잠에 대한 간절함이 컸다. 그 날은 그 간절함 만큼 목청이 컸던 것 같다. 어차피 듣지도 못할 것 아닌가.
“넌 누구를 위한 알람을 매일 맞추고 자는 거야!!!!!?”
순간 아기가 놀라지는 않았을까 싶어 옆을 보다가 소리를 쳐도 아무 것도 모른 체 건넛방에서 평안한 모습으로 자고 있을 모습이 떠올라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헛웃음은 곧 박장대소로 바뀌며 한참을 웃어댔고 통쾌하고 속이 후련했다.
어느 날 물었다. “오빠는 이른 새벽에 듣지도 못하는 알람을 몇 개씩 왜 맞춰 놓는 거야?”(참고로 그 분은 아주버님과 함께 일을 하고 있어 배려를 받아 출근 시간이 오전 11시 이후로 자유로웠다.)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일어나려고.” 이 후로도 그 분의 알람 맞추는 행위는 멈추지 않았고 예측 불가능한 시간에 울리는 소리에 아기와 나의 수면은 늘 방해 받았다.
수유 간격도 길어지며 자연스레 아기의 수면패턴도 자리를 잡아가던 밤이었다. 잠결에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물론 출산 후 청각이 예민해져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을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는 나였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아니었다. ‘무슨 소리지? 도둑이 들었나? 뭐지? 누가 들어와서 난동을 부리는 건가?’ 소리에 대한 어떠한 추측도 되지 않아 심장이 먼저 반응하며 두근두근 거렸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못 들었나 보다. 놀라지 않고 잘 자고 있는 딸의 모습은 천사 같았다. 천사 옆에 다른 세계에 사시는 분도 고요했다. 깨워도 못 일어날 걸 알지만 이번엔 귓구녕을 뚫어 보고 싶었다.
“오빠, 거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 일어나봐.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구! 좀 일어나봐!!”
여러 차례 깨우길 시도했으나 미동도 없었다. 당장 방 밖에 상황을 확인해봐야 한다.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늘 긴장되는 숨소리와 함께 위험한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야 만다.
조심조심 걸어가 방문을 소리 나지 않게 살짝 열고 숨죽이며 거실 쪽을 빼꼼히 내다보았다. ‘헉, 이게 웬 날벼락!’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광경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거실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 판넬, 몰딩, 전등갓등 무수히 많은 파편들로 난자해 있었다. 폭격을 맞은 것처럼 보였다. 상황은 공포물에서 전쟁영화로 바뀌어 있었다. ‘빠지직, 빠직 빠지지직’ 그나마 전선에 매달려 있는 전등은 금방이라도 내동댕이쳐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일어나봐. 큰일 났어! 거실 천장이 무너졌어. 빨리 밖으로 나가서 좀 봐. 얼른 일어나봐!!” 응답을 하는 듯 했다. “으..브아...서.. 므..해..”숨소리와 말소리가 잘 버무려져 나오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새벽 3시, 이 시간에 나가서 본들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관리 사무실도, 인테리어 보수 업체도 부를 수 없는 시간이니 말이다.
‘그럼 난? 난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그래도 그렇지! 남자가 이런 상황에 한 번쯤 나가서 확인은 해야 하는 것 아냐?’ 이쯤 되면 그 분은 미친 사람이거나 도인이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한 번쯤 일어나서 상황을 봐야 되는 거 아냐?’ ‘2차 붕괴라도 일어나면 어쩌라는 거야!’ ‘만약 낮에 내가 아기와 거실에 있을 때 천장이 무너졌으면 어쩔 뻔 했어?’ ‘강도가 들었어도 야구방망이를 내가 휘둘러야 되는 거야?’ ‘오래된 아파트도 아니고 신축아파트에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아니, 어쩜 저렇게 천하태평이지?’
흥분을 가라앉힐 수도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던 당황스런 상황에 거실과 방을 왔다갔다 빙빙 돌기만 했다. 씩씩거리며 한참을 서성대다가 갑자기 분하고 괘씸한 감정이 차오름과 동시에 아이러니 하게 처음으로 그 분의 고막이 부러웠다. ‘왜 언제나 모든 소리는 내가 먼저 듣거나 나만 듣는 거야!!? 왜! 왜!! 왜!!!! 나도 저런 고막 갖고 싶다구!!!!’
“언제 깼어? 어떻게 일어났대?” 요즘 자주 묻는 말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거실로 나와 보면 아침까지 챙겨 먹은 그 분이 대꾸한다. “응, 그냥 눈이 떠졌어.” 익숙한 대답인데도 들을 때마다 신기한 말이라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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