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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샤 May 07. 2024

세상에! 엄지 혼자가 아니었다고?

대를 이을 아들을 임신한 며느리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처럼.

그날도 우린 엄지가 사료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먹는 모습만 봐도 예쁘고 신기했다.


순간 엄지 배가 꿈틀 대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이상했다. 배에 가스가 차 꿀렁대는 것도 아닐 테고 말이다. 말도 안 되겠지만 무의식 중에 기대감이란 게 있었을까? 문득 새끼를 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스치는 생각과 다르게 내 앞에 보이는 엄지 모습은 아직 피지도 않은 목련 꽃 봉오리 같았다.


길에서 지낸 아이였으니 어차피 건강상태에 대한 검진도 받아 볼 겸 병원에 데려가 보기로 했다. 친정 엄마와 난 엄지를 안고 동네 가축병원으로 갔다. 가축병원인 게 조금 맘에 걸렸지만 시내로 나가기엔 그날 사정이 좀 좋지 않았다. 만난 이후로 쭉 그랬듯 그날도 엄지는 내 품에 안겨 별다른 돌발행동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수의사가 호통을 쳤다.


“고양이를 이런 식으로 데려 오면 어쩝니까? 얘는 길고양인데 그렇게 안고 다니다가 확 튀어나가면 어쩌려고!”


수의사가 반응에 놀라기도 하고 당황도 했지만 우선 엄지 상태가 궁금했다.


“우리 아이가 임신을 한 것 같아요. 배가 꿈틀대고 조금 불룩한 것 같아서요.”

“길고양이가 새끼 배었을 수도 있지! 당연한 걸 뭘 어쩌자고 이렇게 데려 옵니까?”


그날 수의사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 게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 엄지에게 못된 사람이 분명했다. 길고양이라고 무시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했으니 말이다. 더 이상 말을 섞다가는 내 입에서 험한 말이 나갈 것 같아서 뒤돌아 나왔다. 수의사 호통에 엄지도 놀란 모습이었다.


2018년 5월 19일. 읍내에 위치한 다른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선 엄지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수의사는 엄지 배를 살짝 만져 보고는 “새끼 가졌네.”라고 말했다. 세상에! 혼자가 아니었다니. 그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초음파로 정확히 확인하기로 했다.


젤을 바르고 복부 초음파를 하는 동안 꼼짝 않고 배를 내어 주는 엄지가 대견했다.  뱃속에 새끼 3마리가 보이는 게 아닌가. 초보집사였던 난 지금 상황이 경이로웠다. 새끼 고양이라니 그야말로 복덩이였다.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엄지를 만나고 근 일주일 만에 일이었다.  


대 이을 아들을 임신한 며느리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처럼 덩실댔다.


엄지가 출산이 임박해 내일이라도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이뿐 내 새끼.


마당에서 새끼를 낳게 할 수 없었다. 난 그분에게 엄지를 집안으로 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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