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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샤 Apr 10. 2024

남편의 요란한 방귀소리.

지금까지 이런 방귀는 없었다

내가 어릴 적 외삼촌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할머니 속 꽤나 썩이던 장난기 많은 청년이었다. 명절 때 외할머니 댁에 가면 마술이라도 보여줄 것처럼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눌러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삼촌의 엄지손가락을 힘껏 꾹 눌러 내리면 기다렸다는 듯 ‘뽕’ 소리가 났다.


뒤이어 터져 나오는 삼촌의 웃음소리.


“헤헤헤헤하하하하하하하.”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눈만 깜빡이며 일시정지 상태가 된 나. ‘어?, 손가락? 방귀? 뭐지?’ 어렸던 나는 청각과 시각의 입력 값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이내 삼촌의 방귀 소리만 귓가에 남아 까르륵 까르륵 뒤집어지며 웃어 댔다. 골려 먹는 재미가 쏠쏠했던지 하루에도 몇 번씩 방귀 장난을 쳤다. 나는 그때마다 까르륵하고 뒤집어졌다. 삼촌은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손가락 방귀 장난을 쳤다.


언제부턴가 삼촌만 재미있어 하는 놀이였다. 엄지손가락 꼴도 보기 싫지만 누를 때까지 코 밑에 손가락을 들이미는 통에 한숨과 함께 눌러야만 했다. 명절 때 마다 잊지 않고 하는 장난에 짜증나기 일쑤였다. 짜증내는 나를 보는 것도 재밌어하던 삼촌이었다. 어릴 적 추억은 그만 멈췄으면 했다.


장난기 많은 삼촌과 달리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의 남자와 연애를 했다. 이상형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볍지 않고 진지한 모습이 좋았다.


동화『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나오는 이발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대나무 숲에 가서 큰 소리로 이야기 하곤 했다. 나도 나만의 대나무 숲을 찾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소리치듯 시원하게 뽕 소리를 뿜어냈다. 비밀 유지는 잘 되고 있었다.


집안에 울리기 시작한 우레와 같은 소리.


봑 푸드득프르륵 부르락부앙부앙아앙 부룰부룰불부루르 프르르북 봑봑봑.


삼촌보다 더한 사람과 살게 될 줄이야. 맙소사.


어릴 적 동네 방역을 위해 돌아다니는 소독차에 대한 기억이 있다. 시종일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골목을 누볐다. 저쪽 골목으로 가면 소리가 멀어져갔다가 다시 우리 집 앞 골목을 지날 때면 엄청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땐 소독차가 내는 ‘부아아아앙’ 소리도 재미있고 하얀 연기도 신기했다.


그 분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실에서 방 쪽으로 멀어졌다. 다시 주방 쪽, 그리고 화장실, 온 집안을 누비며 뿜어대는 소리. 부아아아앙 부르락부앙부앙아앙. 흡사 집안 구석구석 방역을 하고 돌아다니는 소독차처럼 보였다.


출장을 가지 않는 날 그분은 재택근무를 했다. 집안에선 10,000마리의 말이 아시아 대륙을 횡단할 때 느껴질 법한 긴 울림과 진동이 함께 느껴지기도 했다. 그분이 들려주는 소리 값과 차분하고 모범생 같은 외모는 일치하지 않는 오류 값이었다.


새침한 듯 담백했던 삼촌의 뽕 방귀가 그리웠다.


바람을 불다만 풍선을 놓치면 ‘푸드득 풀풀’ 대는 소리를 내며 지랄 맞게 날아다닌다. 세상에, 그 분이 날아다니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요란한 방귀 소리에 짜증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짜증보다 억울함이었다. 그분은 왜 나와 함께 사는 집을 대나무 숲으로 선택한 것인지. 이번에는 꽈배기를 꼬지 않고 던졌다.


“빤스 찢어진 것 아냐?! 앉아 있는 의자 멀쩡해?”


그 분이 당당하게 발설했다.


“당신도 잘 때 장난 아니야.”

“거짓말 좀 하지 마. 한번 잠들면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내 방귀 소리를 들어.”

“진짜야, 녹음해서 들려줘?”


제기랄! 보안이 취약한 몸뚱이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아우성치는 가스를 힘들게 봉인시켰던 그 동안의 노력은 무엇이었던고. 이리도 허무할 수가. 더 이상의 보안도, 대나무 숲도 내겐 필요치 않았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자는 사이 서로의 생사 확인을 위한 교신을 했다.


뽕 뿡 빵 피리리릭.(‘쏼아있네!’)

푸르륵 퐈퐈플브루락릉 봑봑 부르락부앙부앙아앙 푸삥뿡.(‘응. 쏼아있쥐.’)







사진출처 : pexels_Don Hainz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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