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의 칭찬은 오래오래 간다

작고 소중한 나의 장점

by 황하루



아이는 칭찬을 먹고 자란다,


어릴 적의 나는 빈말은 하지 않는다는 엄마의 가르침 아래,

무언가를 칭찬받았던 기억이 적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을 짓는데도 능숙했던 모습에

책을 빨리 읽는다는 감탄을 들었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꾸준히 책을 곁에 두려고 했고,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읽다보니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런 책 읽는 모습으로 칭찬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른이 되어서야 으레 짐작해볼 뿐이다.


그러다 더이상 그마저의 칭찬도 그저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을 때,

나는 뭘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뭘 해야 칭찬을 듣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맞게 된 사춘기 때는

칭찬 없이도 스스로 강해지는 사람이 되자고 그런 중2같은 사고로

언제나 강해지자, 약한 사람이 되지 말자, 하는 말을 혼자 되뇌었다.


그런 내가 기억이 남고 오래오래 기분이 좋았던 칭찬으로는

바로 '목소리'에 대한 칭찬이었다.



칭찬이 목마른 아이는 사랑을 찾아다니고,


아이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나는 존재라고 한다.

흔히들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할 줄도 안다고 말하는 것을,

늘 사랑이 고팠던 나는 애써 부인하려고 해왔지만 답은 알고있었다.

아이에겐 무한정으로 사랑해 줄 존재가 필요하다.

마치 식물이 해를 보지 못하면, 어디로 자라나야 하는지 방황하고

더디게 자라다 시들어버리는 것처럼. 아이에겐 그 햇빛 만큼이나 사랑이 절대적 필요요소이다.


그 사랑이 모자란 아이는 자꾸 엇나가고, 다른 곳에서 사랑을 찾는다.

다행히도 다른 곳에서라도 따듯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잘 자라겠지만

부모가 아닌 존재가 아이에게 무한정으로 사랑을 줄 수 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

나도 사랑을 찾아 방황했다.

그리고 나의 방향은 사랑이라는 목적지를 찾아 애인을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


당시의 어렸던 스스로는 사랑이 모자라서

그렇게 이성인 친구를 사귀는 데 집중했다고 자각하진 못했지만,

연애를 100번 정도 해보고 결혼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그 때의 나는 많이 사랑이 고팠던 것 같다.

하지만 또래의 이성 친구들에게서 받는 사랑이 부모의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도 막연한 희망으로 떠돌던 나는 한 친구를 만났다.



네 목소리가 좋아,


온라인을 통해 만났던 그 친구는,

오랫동안 서로 얼굴을 모른 채 온라인으로만 연락을 했다.

그러다 전화번호를 교환하여 문자로 연락을 하다가, 가끔은 전화도 주고 받게 되었다.

전화로 주고 받던 이야기는 별거 아닌, 학교 이야기 가족과 친구 이야기였던 것 같다.

당시의 전화 요금제에 따라 긴 통화를 할 수는 없었고, 그냥 가끔 통화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첫 통화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전화만 하면 그 친구의 들뜬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너무 좋다며

종종 팔불출처럼 친구들에게도 내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자랑했던 기억이 있다.

'내 목소리가 좋다고?'

이전에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로

처음 그 칭찬을 들었을 때의 나는 그냥 으레 하는 상투적인 칭찬인가 의심했다.

그런데 통화를 할 때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칭찬해 주는 모습에

어느덧 의심하지 않고 그 말을 진짜로 받아들였다.

'내 목소리가 사랑스럽구나. 내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이렇게 확신으로 바뀐 후에는,

스스로 내 목소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 성우를 해볼까, 하는 진로 희망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내내 내게 남았던 칭찬이었다.



누구나 사랑받을만한 부분은 있다, 특히 아이에게는 더,

나는 아이에게 사랑스러운 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어릴 적의 아이는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움 덩어리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고 자라면서 말썽을 피우기도 하고,

고집이 늘기도 하고, 또 나와 의견이 달라 충돌을 겪기도 하면서 그 사랑스러움이 반감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틈틈이 숨어있는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찾는다.


특히 아이들은,

무언가를 잘해서 칭찬을 받는 것보다 그 존재 자체로 칭찬을 받을 때

본인의 존재를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여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수학 문제를 많이 맞았을 때, 그림을 멋지게 그려왔을 때도 물론 칭찬해주지만

그보다 더 아이로서 통통한 볼을 지니고 있는게 귀엽다고 하고

그냥 밥을 먹는 모습이 복스러워서 사랑스럽다고 하고,

그냥 내 아이로 태어나줘서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한다.


물론 칭찬에 인색한 환경에서 자라온 내가,

수시로 타인을 칭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한 부분으로 남편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 많아서 칭찬에 인색하게 되서

늘 마음으로만 담아두었다가 조심스레 감사를 표현하곤 한다.


아이를 칭찬하는 것은 그보다 더 강하게 학습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반사적으로 하루에 한번은 무조건 아이를 칭찬할 부분을 찾고,

사랑스러움을 발견한다.


이런 나의 노력에 보상이라도 하듯,

나의 아이는 종종 예상치 못한 때에 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집에서의 그냥 후줄근한 모습이어도

때로는 훈육한다고 호통치는 모습에도 어김없이 내게 다가와 엄마 사랑해,라고 말해준다.


사랑 듬뿍 받고자란 아이가,

자라서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는 것.

그리고 사랑이 넘쳐서 또 다른 멋진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나의 육아의 목표 중 하나이자,

어릴 적 사랑이 고팠던 나에 대한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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