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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고NAGO Jun 17. 2024

나를 찾아서-[7]

우리 집

잠깐 옛 일을 이야기하고 싶다. 집, 정확히는 '우리 집'에 관해서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사당동에 있었다. 1층이었나, 반지하였나... 거실 하나, 방 두 개였던가, 아니면 거실 하나, 방 하나였던가... 사실 나는 그 집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 당시 나는 5~6살 정도였고, 사진으로 본 기억밖에 없다. 그나마 어렴풋이 그 집에서 기억나는 건 노란색 자동차 캐릭터 인형뿐이다.


그 다음 집은 4층짜리 빌라의 4층이었다. 1층(반지하일 수도 있는) 집보다 3개 층이나 올라갔고, 평수도 훨씬 넓은 24평짜리의 집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그 빌라에서 보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초등학생 시절의 대부분은 가물가물하지만, 인상 깊었던 몇몇 기억은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 중 집에 관련된 기억들은 썩 좋지 않다.


친형과 컴퓨터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하면서 싸웠던 일이 떠오른다. 싸우는 소리는 집으로 오던 부모님의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전기세를 못내서 전기가 끊겼던 날, 거실에 촛불 하나를 켜고, 그 초에 둘러 앉았던 가족들이 기억난다.(그때, 아버지는 없었다.) 가장 또렷한 기억은 이거다. 


오랜만에 아버지가 집에 와서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형과 나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주눅들어 있었고, 3살 막냇 동생은 아무것도 모른채 아버지 품에 안겨 있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이혼이었다. 어머니였나 아버지였나, 누구와 함께 살 것인지 우리에게 물어왔다. 형이 먼저 대답했고,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어머니를 선택했다.


중간 기억이 끊겨 장면이 전환된다. 어머니는 작은 가족 사진이 들어 있던 고장난 검정색 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걸까.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이거 고칠 수 있어?"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그 시계를 손에 들더니 그대로 거실 바닥에 내리쳤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시계는 박살났고, 어린 동생은 크게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사실 아버지를 제외한 모두가 크게 놀랐다. 그 당시 움찔거리는 감각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 하다.)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유리 파편과 가족사진이 보였다. 분명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아버지가 시계를 바닥에 내리치는 동작과 유리파편, 가족사진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세 번째 집은 옥탑방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보냈던 터라 정확히 기억하는 집이다. 방 2개, 거실 1개, 창고가 딸린 전세 3천만원 짜리 옥탑방이었다. 이전 빌라는 팔았다. 어머니의 결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경제관념이라곤 없었던 터라 빌라에서 옥탑방으로 이사한 것의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형은 알았던 걸까. 그 집으로 이사한 후부터 형이 조금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더 거칠어졌다. 이전부터 거친 면모가 있었지만 여기 온 후부터 어머니가 있어도 거친 행동이 조절되지 않았다. 어머니보다 형의 눈치를 보게 됐다. 집안의 폭군 같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옥탑방으로 이사하게 된 상황과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어머니 홀로 가정을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책임졌지만 부족했다. 전기는 끊기고, 삼형제에게 먹일 건 라면뿐이었으니, 이성적인 판단이 잘 안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집을 팔고, 더 싼 집으로 옮겨 전세금을 내고 남은 돈 수천만 원을 생활비로 모두 써버렸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집을 판다는 어머니의 결정을 뒤집고 싶다. '우리 집'만 있으면 어떤 태풍이 불어도 견디기 훨씬 쉬울테니까. 성인이 되고 형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 형이 이해되었다. 형은 그때부터 어머니의 그 판단으로 우리 가족이 더 어려워질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원망이 거친 행동으로 표현되었던 거다. 그때 형은 아직 중학생이었다.


옥탑방으로 간 후부터 우리 집이 창피했다. 옥탑방은 우리 가족이 다니던 교회 옆에 있는 주택으로, 명의도 교회 명의였다. 그래서 교회 높은 층 창문에서는 옥탑이 내려다 보였고,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은 야외 주차장에서 가까이 보였다. 누가 계단을 오르내리는지 알 수 있었고, 옥탑에 걸린 빨래가 전부 보였다. 일요일만 되면 철제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창피했다. 누가 나를 알아보고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없었고, 내가 이곳에 산다는 걸 아무도 모르길 바랐다.


네 번째 집은 반강제적으로 이사한 곳이다. 옥탑방을 철거하고 교회를 확장한다는 결정으로 어쩔 수 없이 이사해야 했다. 이번에는 반지하였다. 하지만, 이곳도 교회 바로 근처였다.


네 번째 집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내가 교회를 믿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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