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고양이가 왜?
가을 노래를 혼자 부르다가 생각했다, 노래를 부르는 일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내 주위에 사람들은 특히, 학창 시절에는 내 꿈을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가 가수가 될 줄 알았다고 했는데 그런데, 나는 지금 가수가 아니다. 가수란? 직업으로나 노래로 돈을 버는 일을 말한다. 나는 주로 싱어를 하거나, 합창단 단원생활을 하거나 성악모임에 나가 는 정도의 음악인으로 취미생활처럼 대충 음악인으로 살고 있는데, 가수는 그냥 묻어둔 직업인데 , 요즘 집에 오는 손님들 중에 가까운 내 형편을 대충 아는 분들이 하는 말이 비수가 되어 자존심이 상해 가고 있었는데, 그분이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아니 하나 씨는 가수가 되든 무슨 탤런트가 돼서 연기를 하든지 할 줄 알았더니, 트로트 가수라도 되던지 아무것도 아닌가 봐. 그냥 조그만 애들이나 가르친다며? 아이고 그 잘하던 게 많았던 거 다 뭐 해, 키가 좀 작아서 연예인 학원 다녔다는 게 그때 조연을 하다가 말았지? 하기야 "하나"선생이 주연하기는 좀 그랬었지? 워낙 키 크고 잘난 여자들 많아서, 그리고 너무 엄마처럼 그렇게 깨끗하게만 있으려면 못 뜨지, 무시하는 말도 참고 잘살던 것도 다 어릴 때고 이젠 없는데, 굽신도 하고 웃음도 많고 제일 문젠게 조선 사람은 술이 사람을 엮는데, 술자리도 그리 안 간다고 못 어울리면 어째 누가 알아주나?
역시! 집고양이 노릇이 영 아니네..
에고! 재주 많으면 굶는 단말이 맞나? 신통치 않는 살림이 영 아니네. 어째!
영 아니네, 아, 이분말 너무 뒤통수를 때린다!
오래아는 분이라 그런지 오늘은 보물 캐는 일도 아닌데 열심히도 나에 대해 파고 또 파셨는지 아시는 게 넘치신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아찔하다, 오늘은! 사모님의 패션은 딸이 해줬다는 자랑스러운
얼굴에 목에 차고 오셨다. 블라우스 한 장에 백화점에서 30만 원 싸게 줬어?라고 일부러
돈이 하찮아 쓸데없다는 듯 사치스러운 몸짓
동네 똑같은 할머니 펌을 하신 이분을 내가 그렇게 몇 년을 피해 다녔는데 오늘 일부러 어머니께 싫다는 밥을 산다고 아침부터 와서 이러신다, 한술 더 떠서 이 집 옆에 셋방에 살던 분은 장애를 가지셔도 딸들이 목숨 걸고 돈을 잘 모아서 홀어머니한테 단단히 살림 밑천을 대주시고 장녀역할을 잘해주더라, 최근에 사윗감도 벌써 데려와서 장모를 모시고 여행을 가더라, 아주 옆집뉴스를 다른 구에 분께 왜 듣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소식이 전해 질 땐 비밀이 아마 있겠지? 이런 얘기는 이제 내게 가십거리도 아니다 그런데 하필, 어제는 소식 없던 친척언니가 하던 사업이 너무 잘돼서 집안에 "황금금고"를 들였다는 말까지 어머니한테 듣고, "황금금고"도 있고 연예인들이 사는 비싼 빌라에 살고 있으니, 우리 모녀 집들이 겸 사촌집에서 오라고 했다는데, 아침부터 속이 허하고 빈혈이 못해 뭐랄까, 비교하기 시작하면 살기 힘들어지는 건데 오늘은 찬밥도 물에 멋 말아먹고 집을 뛰쳐나가야겠다는 생각! 올시간이 왔다고 어머니 환갑을 넘기신 지 오래인데 홀어머니 너무 고생이 많다고 내게 굳이 알려주시는 민망한 상황은 여러 가지로 나를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미련이 밀려오는데 이유가 있다!
그 100억 부자 언니가 황금금고를 들이기 몇 년 전 내게 예술이니 그런 거 말고, 친척집에 어렵더라도 토요일 일요일 없지만, 총무나 비서를 좀 해주면 사업체를 맡게 힘써주고 돈에 구애받고 살지 않을 정도는 될 텐데 하고 제안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천직으로 찾고 있는 예술교사 일을 안 할 리가 없을 것 같고, 이제는 치료학 공부를 한다니, 홀어머니 고생이 언제 마무리되는 건가 하고, 내게 어렵게 말을 꺼낸 적이 있는데, 내게 나이도 있는데, 공부도 이젠 그만하고, 회사원으로 평범하게 월급 받으며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제의를 탐탁지 않게 고민을 오래 하지 않고, 그런 말을 들은 척을 하지 않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돈, 그 돈이 문제였다 네겐 신념이고, 꿈과 연결되지만 배고픈 예술인 짓은 사실 생활에 금방 도움이 되지가 않으니 특히, 이것저것 가리는 집고양이 체질인 내가 움직일 원동력이 없는 것이 문제다! 트로트라니? 내가 몸을 흔들면서 콧소리 내면서 그 노래들을 부른 거 난 상상이 안 가는데 아버지 살아계셨으면 법대, 교대 가서 의사 하라던 일을 아무리 내가 못해도 성인가요를 부르라는 말인가? 탄식에 헛헛한 맘을 달래 보려고 생각해도 쉽지가 않다.
음주가무는 저 세상얘기이다! 나는 그일 말고도 심심찮은 가정사에 한국여자들의 국제병인 한국여자들의 병인 울화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친할머니 살아생전에 어머니께서 극심한 시집살이를 당하신 이유로 유년시절부터 "남존여비"사상에 피해를 몸소 당한 피해자로 화병, 피해의식이 발동하는 고통을 앓고 있어서 내 맘이 시끄러울 때는 오히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실어증, 불면증, 왜소증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거의 동굴로 숨어 사는 쪽을 택하기에 어머니와 나는 사람들의 수다에 동참하고 싶어 하지 않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 않은지 오래되었고, 할 줄 아는 건 사이클 타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 말고는 단조로운 사회생활을 한다.
몇몇 친척들의 돈벼락 이야기에 비구름이 한번 지나간 어두운 집공기가 흐를 때 뒤끝이 별로 없는 어머니는 아침부터 지글지글 손을 바쁘게 음식을 많이 하신다! 가장을 잃은 모녀는 위장병을 달고 사는 편이라.. 서로 밥맛이 없어 반찬이 이것저것 있어도 우리는 아침부터 물에 밥을 말아먹을까 늘 식탁을 무심히 보다가 여지없이 물에 밥 마는 습관을 똑같이 가지고 있어서 소화제 두통약, 청심환 이런 것들을 챙겨 다니고 살고 있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자신보다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나있을 딸 때문에 더 많이 손이 가는 음식을 하려고 애쓰시는 것이다, 나는 일부러 맛있어 죽겠는 척 먹고 '나 아직 살아있어' 무언의 행동을 하면서, 방문을 꼭 닫고 갑자기 뜨는 가수의 노래 한곡을 크게 틀고는 소프라노 발성을 연습하기도 하고, 몇 번이고 주로 여성 솔리스트들이 부르는 불후의 명곡에나 나올 3옥타브 이상 높여야 하는 명곡을 숨차서 힘들어질 때까지 완곡을 불러본다!
엄마의 돈 걱정이 내 행동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내 딸이 밥 먹고 힘내는구나! 생각하실지도 모르는 내 무능을 잠시나마 덮어보려는 어머니께 보낸 어색한 애교 아닌, 애교짓이다!
속으로 다 안다, 오버라는 것! 고3 합창단에서 독창대표를 하던 때와 모든 게 달라진 입시 이후로 나는 전공을 못했단 이유로 어디에서도 노래 얘기를 하기 싫다. 그래서 노래방도 안 가고 산지 10년이 훨씬 넘었었다. 모 예술인 단체 합창단 7년여 단원 생활에서 소리가 남다르다? 감정선 표현이 아름답다는 지휘자의 칭찬을 받을 때뿐이지! 난 전문가 취급을 받지 못했고, 속절없이 시간이 지났고, 변변한 음악인도 못되었다!
이제는 지친다고 맘을 접고 음악생각도 그만하고 글도 다 그만두어야 하는 거 아닌지 생각하며 하고 싶은 것 말고? 뭘 할 수 있지? 진지하게 내 안에 질문이 많은 날이 있다, 음악만 하고 살면 행복할 줄 알았던 시간은 모두 사치라고 생각한다 불행하단 생각을 하는 것도 너무 사치로 행동을 늘 조심한다!
나는 아무런 욕구가 없는 것으로 선택한다! 특히, 가족들한테 민폐가 되기 때문에. 암송을 이렇게 나대지말자, 내 마음아! 밥값을 못한 딸이다! 마음 단속이 필요할 뿐인 우울한 날이 계속 반복되고,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20살 아니 그전부터 15살 봄! 이후로 자존심이 상처로 멍이 든 상태라 하루에 말을 몇 마디 안 하는 생활이 죽 계속되었다, 내가 타고난 성량은 절대 약한 사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어른들이 대대로 악기며, 술은 못해도 ㅇ다 음악가라고, 하모니카연주를 잘하시던 인물이 아나운서 같은 아버지, 소리를 무척 잘하시던 할머니와 친고모들이 그 옛날 노래자랑이나 서커스 공연에 무대에서 노래를 한곡 하면 살림살이를 상으로 다 쓸어오고, 다 가수다! 그런 가수가 없다! 고 곱고 높은 목소리에 타고난 무대매너에 모두 넋을 뺐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랐다, 나보고 어릴 때 너는 친탁이네! 노래 계속해서 너 고모들처럼 말고 꼭 가수 해서 TV 나가라 하나야! 그런 당부를 동네 어른들한테 듣곤 했는데.. 무슨 일인지 아버지와 고모들이 모두 서로를 경계하며 흩어지고, 집을 몇 채씩 사서 잘살아도 화병이 남아서 특히, 장래얘기 딴따라 얘기 하지도 마라고 집안 대소사에 나타나면 내게 욕을 하고 나는 괜히 무서운 여성차별을 당하면서 자라다 보니 모든 게 너무나 이유도 모르고 힘이 들었다.
무조건 여자라 외동며느리라 당한 어머니의 시집살이와 여자란 이유로 학교에서 상을 받아온들, 칭찬은커녕 계집아이가 오빠를 이겨 먹고, 공부를 하면 뭐 하냐고 그렇게 욕설을 듣곤 했었다. 말을 안 하는 게 상책인 집안에서 자라고 보니, 나이가 든 요즘도 창피한 일이 생기곤 하는 게 사실 부끄러워서 어머니한테 초대를 한단 말도 못 하고 모르게 노래 듣고 준비한 조용한 작은 무대였지만 여러 번 공연을 했는데, 연습무대에서 고생이 시작되는 지점이 지휘자께서 지적할 때 무시 아닌 꺼지는 자존심과 부끄러움이 몰려온 그때다!
내가 발성을 제대로 마음껏 발산한 경험이 너무 적어 보인다는 말! 그리고 소리에 있어서 타고난 성량이 개발되지 않아서 보컬 수업을 제대로 받아야겠단 지적을 받기도 하고, 왜 소리를 묶여서 성장을 못했냐고! 오히려 안타깝다는 지적을 당할 때는 말이 그렇지! 성악가로 잘 나가는 원장이고 교수이긴 하지만 한참 후배 벌인데 순간 서러운 눈물이 핑돌기까지 하고, 예전에 "연말 송년 음악회"에서 soloist 테스트에서 나보다 소리가 곱지 않아 내가 솔로파트를 선창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때 내게 부러워하며, 연극영화를 했던 적이 있는 탓인지 뮤지컬적인 소스를 가진 것이 부럽다고 무대 뒤에서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는데, 이젠 본인이 음대 대학원을 마무리한 것을 자랑하듯이 고개를 들고 나를 지적하는 모습에 나는 과거가 스쳐도 아무런 영향이 없을 현실에 말을 돌려 "오늘 노래가 괜히 가사가 너무 감동이 되네, 나이가 들어가니 그런 건가, 미안해라 곡해석을 더해서 연습을 좀 더 하는 건데 잘못했네 내가 " 하고 거짓말을 하면서 숨을 놓치고, 불협화음이 튀어나오면 역시 너무 늦었나 보다! 괜히 용기를 내서 문제가 된다는 만 가지 생각에 후회를 하고 돌아오는 동안에....
"나는 운이 없다, 복이 없는 거다 주변 사람 기회를 만나는 복이 하나 없어서 인정을 받을 만하면 누군가 나를 막아서는 게 인생이 쓸데없이 꼬인다 " 하는 자책을 하곤 한다, 비록 작은 무대지만 그토록 바라던 음악회에서 리허설을 하면서 희망적이다고 발고 나이에 비해서도 맑고 깨끗한 동안 보이스가 매력이다는 평을 받고는 내 노래를 준비하라던 음악원 대표의 초청을 가볍게 받아들인 게 착각인가! 잠시 행복한 음악인이었던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조촐한 하우스 콘서트 영상을 지워버리고 어머니께는 "엄마, 저 소리가 좋아서 아직 쓸만하다 하고 참 다행이었어요, 곧 다시 공연을 하게 될 것 같대요! 초대는 나중에 할게요 " 어머니의 실망을 보는 게 더 슬픈 나는 어릴 때도 안 해본 하얀 거짓말을 해보았다. 아~ 난 참 모자란 데가 많아 보인다, 교사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솔직하고 용감하게 꿈을 키우라고 가르쳐 준 적이 많으면서 형편이 핑계가 되어서 다 어른이 늙은 어머니께 거짓말이 심하다! 옳은 선생님도 못되다니 참 씁쓸하다. 동네 음악인으로 사는 것도 합주실에도 갈 여유가 있어야지 하지, 동네 노래방은 당연히 안 간다, 그래서인지 최근 새로 가입한 합창단에서 이전에는 soprano 파트였는데, 요즘은 메조소리가 나온다니! 현타가 마구 밀려왔다.
아 ~ 소위 "유학파선배" 신의딸은 한때는 나보다 기량이 월등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노래레슨을 받고 나서 개과천선되는 걸 본 적도 있는데, 나는 타고난 맑은 소리를 가진 가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는 말을 들었던 과거는 다 옛이야기로 묻히는 거다! 소리를 안내면 미덕이고, 묵언수행을 하듯이 죽이고 살수 밖에 없던 과거의 트라우마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인생에서 말을 잊을 만한 큰 사고를 겪다 보면, 억지 수행이 이뤄지는 경험을 한 상태라 눈물샘이 고장 난 사람이라서 사실, 가장 소리가 예쁠 청춘에 7년 정도 말을 잊은 적이 있었다.
내사연은 차마 아버지 잃고 당한 수모에 가세가 기운 집 안을 생각해서 고3 시절 대학을 결정할 때도 20대를 다 지나가면서도 늘 전공하지 못한 미련과 가수로 앨범을 준비하다가 포기한 상황들이 맘 한구석에 늘 쓰레기통으로 남아, 다시는 음악에 미련 없다고 예전의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과거에 아픔에 눈물을 닦으며, 감정의 쓰레기통에 버렸던 감정을 들쑤시게 된다! 누구의 탓을 할 수도 없는 내 가족사는 슬픈 노래들로 가득 채웠다.
세상에 노래 그까짓 거 안 부르고 살면 되지! 혼자되지도 않는 헛생각이 많았다, 지금의 내 주제를 파악할 때, 과거를 그리워할 일도 미래를 그릴 일도 없어지고, 나름대로 맘속에 욕심을 방지해 본다 " 조용히 살자! " 내 마음 안에 붙여둔 퍼스터를 자주 펼쳐보는 것으로 삶의 고민을 좁히는 방법을 택하며 살았다.
요즘 나의 유일한 취미는 집 앞에 한강에 이어지는 개천에서 물멍을 때리는 시간이 노래하는 시간보다 많아지고, 하염없이 하늘에는 좀 더 나은 다른 세계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하늘멍을 하는 취미가 생겼다.
나를 보면 사람이 밝아 보이는 것 같은데, 그 명랑한 음성은 연출된 건가? 한숨을 너무 자주 쉬어 보기가 싫어지네, 기운이 빠진다고 하는 동료선생님 말씀과 땅아래만 본다고 거북목이 된 내가 노래할 때 입은 정장 핏이 예전보다 보기 싫어졌단 어머니의 말이 생각이 나서 신경이 쓰였을까. "엄마 저 이제 노래는 별로 안 하고 싶어요, 노래 안 해도 난 글 쓰던지, 기타나 치면서 작곡을 해도 잘 살 수도 있고 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이제는 음악하고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사실 노래는 내 삶의 거의 일부로 하루 이틀 살아온 나의 옷처럼 나를 담은 내 일부인데 , 노래를 위해 노래를 통해서 느끼고 살고자 애쓴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데 이제 그럴 수가 없다. 노래를 잘하려면 숨을 잘 쉬고 잘 뱉어내는 숨소리도 노래가 되는 건데, 나는 가끔 반대로 쓸데없이 너무 숨을 자주 쉰다.
땅이 꺼질듯한 한숨소리가 많아서 내 한숨소리를 들으면 가끔 괴롭다고 하는 동료선생님도 있고, 단원중에도 나를 우울하게 보거나 "뭔가 비밀이 있어 보인다"는 반전의 뭔가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냐? 는 의문의 말을 때도 있었지만, 난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사람에게 관심 없는 "삶의 루즈한 루틴을 고칠 수도 없다!"
사람이 한 가지는 타고난 복이 있다던데, 나는 복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봤다!
이런저런 상념들이 가득한 해결되지 못한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나는 이해와 타협이 힘든 세상이지민 작은 희망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학교에 교사로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그림을 그리며, 동요와 무용, 체육 등을 가르치고 동심을 잃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가르치는 곳에서 살아보고자 애를 썼다. 무엇보다 어릴 때 꿈이었던 것들 중에서 차선책으로 가장 무난한 삶을 위해! 학교로 출근하는 일을 자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은 늘 하던 루틴이니까, 선생님으로 사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믿으면서 초롱초롱한 눈을 한 아이들을 만나면 그나마 악한 세상에 내가 바르고 곧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돈벌이가 아니겠는가? 물건을 잘 팔거나 만드는 일도 못해, 계산이 빠르지도 못해, 아무나 약삭빠르게 혹은 사교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노래 말고 글 말고 좋아하는 게 별로 없는 내 메마른 삶에서 과장된 무관심을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는 말은 나를 위한 최고의 문구였다고 위로를 하곤 하며, 무심함을 익숙함으로 생각하고 살다가도, 한계가 있었다!
세상사람들이 교양서적이나, 유튜브 채널에서 사회 인문학 강사들조차 어린아이들한테까지도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자기를 찾고 자존감을 찬양하고, 꿈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자기의 길을 찾으라는 내 자존감은 내가 표현하고 지켜라고 난리인 것 같았고, 자존감을 챙겨서 나아가 꿈을 이룬 영웅담 같은 뉴스들이 실화로 가득했다.
때마침 "극한의 장애를 뛰어넘는 사람들의 이야기 패럴럼픽"도 열리고 있었다, 잠시 내 성한 몸을 보며 강제적 반성이 생겨난다, 슬픔이 조용히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는 내 안의 어른아이를 살펴야 한다는 얘기가 맘에 꽂힌다. 얼마 전에 본 유명한 심리학 강사님의 영상에서도 여러 번 들었고, 늦은 대학수업에서도 수없이 내 안에 어린아이 상처받은 자존감을 일으켜 세워라! 는 메시지가 어디에서도 퍼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상처가 심한 나의 심리에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책, 음악에 빠져보고, 여러 가지 취미를 찾아보려 했었지만, 시도는 해보아도 결과를 얻는 게 쉽지 않기에, 결코 풀리지 않는 분야로 선택하고, 예술치료학을 공부하며 여러 가지 치료프로그램들을 다루고 깊이를 알아가다가 예술로만은 사회에서 평범하게 비범한 삶을 살아낼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그게 아마 요즘 핫한 키워드들로 소통의 어려움을 평생교육으로 알아보고픈 열망을 가지다가 인생 전반을 다루는 평생교육학을 공부를 하고는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하고 굳은 다짐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