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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13. 2024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인의 목소리

박연준시인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뚝뚝 흐르다 못해 넘쳐흐른다. 책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고 싶을 만큼 명문장이 많았다. 시와 일상 속 이야기가 사이좋게 동고동락하는 느낌이랄까. 에세이 품 속에 시가 포옥 안겨 있는 듯, 이 계절에 어울리는 언어모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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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인가' 근원적 질문이나 곱씹으며 머리를 긁적이기만 했는데 이제 알겠어요. 행복은 소풍 나가서 풍경을 구경하며 졸다가, 나를 잊어버리는 상태예요. 45p

아버지는 벽을 보고 오래(하루 스무 시간 정도) 잤기 때문에, 나는 그의 등을 외웠다. 시를 외우듯 외웠다. 102p

지독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축약하는 버릇'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아버지는 아픈 사람이 아니라 죽고 싶었던 사람. 몸이 스스로 회복하려 노력하지 않았다면 죽음까지는 3년, 혹은 1년도 안 걸렸을지 모른다. 120p

그는 약했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 그러하듯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아플 때 맘껏 아플 수 있는 사람은 어리거나 이기적인 사람들뿐이다. 착한 사람들은 아프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착한 사람들은 아프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121p

모든 좋은 시는 첫 줄에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이때의 떨어짐은 밀리거나 고꾸라져 떨어지는 상태가 아니다. 두 발이 땅 위에 붙은 채로 어떤 웅덩이나 절벽 없이, 한자리에서 아래로 사라지듯, 떨어지는 일이다. 어느 날 심장이 무릎 아래로 툭, 떨어져 버리듯이. 168p

눈물 닦고 눈곱 떼고 머리 빗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생을 이야기한 작가는 근사할 순 있지만 사랑하고 싶어지진 않는다. 이상한 일이지.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흠결에 매혹된다. 흠결이야말로 그 사람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188p






긴 슬픔은 영혼마저 젖어들게 만든다. 고통스러워도 멈출 수 없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마냥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울컥하는 마음에 놀랐다. 글쓰기 세계에 그만큼 몰입하고 있었단 말인가.  
젖은 심신을 추스르러 떠날 채비를 했다. 마음의 짐을 꾸리고 침잠할 준비를 했다. 잠시 멈추려 했는데 동굴 입구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정함에 이끌려 다시 주섬주섬 짐을 풀었다. 나약하고 말랑한 감성이 아직은 좋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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