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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29. 2024

누가 숫자를 굴렸을까

아침 단상

하루하루 숫자가 늘어간다. 눈을 굴려 눈덩이가 불어나듯 매일 누군가 숫자를 굴리는 게 틀림없다. 자고 일어나면 불어난 달력 숫자. 1 4개였던 날이 선명한데 벌써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밤새 누가 숫자를 굴려놓은 걸까. 시린 손 호호 불어가며 숫자를 만지작거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다. 밤새 내린 눈을 굴리며 함께 숫자도 굴렸을 사람을. '벌써 11월 끝자락이라고?'눈송이보다 더 동그래진 눈으로 날짜를 바라보면 짓궂은 표정으로 흐뭇하게 바라볼 누군가의 얼굴을 그려본다.  


특별한 일상이 아니더라도 글 위를 걷는다는 것, 어제 걸었던 글 위를 변함없이 걷는다는 것, 그 행위에 의미를 둬본다. 어제보다 0.1mm 자연스러워질 문장을 떠올리며 행복한 걸음을 재촉한다. 이 순간이라야 느낄 수 있는 온도에, 현재 느낄 수 모든 감각에 집중해 본다. 풀잎소리에 귀 기울이는 새처럼, 아침을 기다리는 고양이 뒷모습처럼 고요히 시간이 밝아오는 모습을 바라본다. 공기가 춤추듯 너울거리는 모습도 어둠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뒷모습도.


가을이 겨울로 옷을 갈아입고 어둠은 아이스크림 녹듯 흘러내리면 새벽이 굴곡진  몸매를 드러낸다. 고단한 새벽이 졸린 눈 비비며 방으로 들어가면 불현듯 아침이 찾아온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해가 뜨고 하루가 굴러간다. 글을 쓰는 이 순간, 누군가 잠든 순간, 백지를 뚜벅뚜벅 거니는 순간, 책 페이지를 사락사락 넘기는 순간, 시간 앞에 우리는 성실해진다.


어떻게든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수도꼭지 틀듯 글 샘을 튼다. 어제는 톡톡 떨어지던 물줄기가 오늘은 조금 시원하게 쏟아질까. 수온을 조절하며 적당한 온도를 찾아간다. 글의 온도를 더듬으며 하루를 열어젖힌다. 세장의 산책을 끝내며 다리를 두드린다. 잠이 깨어나는 순간 소리가 찾아다. 겨울아침이 드르륵 지퍼를 연다. 어제와 닮은 듯 다른 아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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