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있는데 엄마가 없다.

제발 악다물고 살라고 했잖아

by 진아

글 쓰다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 까만 글자들이 날아갔다. 얀 공백에 쏟아부은 내 시간과 여정이 사라졌다.

온갖 감정을 다 쏟아부었건만 허망했다. 새로운 기기(신랑이 생일선물로 준 태블릿 pc와 키보드)에 들떠서, 있는 감성 없는 감성 탈탈 털었건만 남은 건 다시 여백이라니.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헛웃음도 안 나왔다.


엄마라는 낯선 이름.

어렵게 내뱉은 단어, 엄마를 몇 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으로 새겨놓았건만. 신기루보다 더 허탈할지어다. 대제국을 건설하고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것처럼 주저앉고 싶어졌다.


뭐라고 썼더라 되짚어본다.

평생을 행복 찾아 방황하던 나의 엄마에 대해 주절거렸던가.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님을 여의었으며 사랑다운 사랑받은 적 없고 나눌 수 있는 사랑도 없는 가엾은 인물이라 읊었던가.



애초에 사랑 자체를 모르고 태어난 사람에게 사랑을 달라고 매달렸다. 받아본 적 없는 것을 달라고 생떼를 부렸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엄마가 가진 최대치를 이미 다 주었는데. 엄마의 소임은 10개월 동안 뱃속에 생명을 잉태하고 세상에 빛을 보게 해 준 것.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식을 최대한 안전하게 기를 수 있는 친인척에게 맡기는 것으로.



손바닥보다 작은 참새도 자식을 키운다는데.

'새끼를 키우는 어미새(참새)는 둥지에서 200m 이상 멀리 날아가지 않으며, 하루에 600회 이상 먹이를 나르고 새끼가 자랄수록 그 횟수는 줄어..'.

사람의 손바닥보다 작은 참새도 제 새끼를 키우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 여물지도 않은 자식을 버리고 떠났다.



핏덩이를 두고 간 엄마라는 낯선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나 하나.

이해하기 싫었고 용서할 수도 없었다. 너도 자식 낳아보면 이해할 거라는 친척들의 말은 더욱 납득할 수 없었다.


결혼 이후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아이를 키워갔다. 누군가 친정엄마에게 쪼르륵 달려가 육아의 고충을 토로할 때, 어린아이마냥 투덜대며 엄마어깨에 일상의 짐을 내려놓을 때, 나의 처절한 독박육아는 절정에 이르렀다.

뜬 눈으로 지새운 불안과 반성의 밤들이 쌓일수록 아이는 더 단단해져 갔고 도 단단해져 가고 있다고 믿었다. ( 종잇장 같은 자만인지도 모르고.)



엄마는 비겁한 죄인이야

자식을 버린 엄마의 선택은 허용할 수 없는 죄악일 뿐이었다. 내 아픔보다 자식의 눈물이 더 큰 고통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매일 저주를 퍼부었다.


나의 엄마는 여물지 않은 두 자매를 두고 떠났다. 파랑새를 찾아서. 만져본 적 없는 느껴본 적 없는 환상의 행복을 찾아서.


평생 원망했다. 왜 그렇게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냐고. 어린 두 자식을 버리고 떠날 만큼 자신이 소중했냐고.

피붙이를 두고 갔으면 죽을힘을 다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왜 자신을 망가뜨리고 함부로 살아가냐고. 제발 자식을 두고 떠난 그 모진 마음으로 멋지게 살아가라고. 남은 생은 뒤돌아 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그렇게 피눈물 머금고 보내주었건만 몇십 년 만에 돌아온 엄마는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 서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