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하루종일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들썩였다. 엄마의 투병생활 이후 무엇도 마음에 둘 수 없었다. 그런 날들의 하루겠지 하고 애써 불길함을 삼켰다.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머물렀다. 무난하게 하루가 지나가나 싶었는데 밤 열 시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000 씨 보호자죠? 곧 임종하실 것 같으니 병원으로 바로 오세요."
종종 죽음을 마중하는 날을 그려보곤 했다. 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마주한 현실에선 턱없이 무기력하고 나약했다. 잘도 흘러가던 세상이 멈추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잖아.'
애써 담담한 척 굴었다. 채비를 서두르다 연신 헛손질을 해댔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현실을 체감하기도 전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 어디까지 오셨어요? 000 씨가 방금 임종하셨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맥이 풀렸다. 그토록 질척거리고 미워했던 엄마가 드디어 떠났다. 제발 이 지옥 같은 날을 끝내 달라고 빌었었다. 막상 인연이 끊어지자 사지가 찢기는 고통이 밀려왔다. 차라리 어둠 속에 영원히 갇혀 있을걸. 병원으로 가는 이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죽음이 내려앉은 병실에 엄마가 잠들어 있다. 평생 옮아매던 탯줄이 '툭' 끊겼다. 엄마 앞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고요한 병실에 자매의 흐느낌과 통곡소리만 가득했다. 울고 또 울어도 엄마는 말이 없었다.
'예전에도 떠났다가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잖아.
다시 돌아올 거지?'
멍하게 울기만 하는 나를 대신해 남편이 바지런히 움직였다. 친적과 지인들에게 연락하고 일사불란하게 장례식을 준비했다.
타인의 장례식장에 숱하게 들락거렸지만 상주로 서 있는 내 모습은 낯설었다. 엄마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정류장. 엄마를 배웅하는 장소라 생각하니 두려움 가득하던 공간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화사한 옷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한 엄마가 누워 있다. 그늘 속에만 살던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밝은 곳에 누워 있다. 엄마를 가운데 두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엄마,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편하게 지내.'
차마 못다 한 말들이 울음에 섞여 사라졌다. 엄마무덤 앞에 피를 토하던 청개구리처럼 울음을 토해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엄마 없이 잘 살아왔다고 당신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큰소리쳤는데. 풍선 같던 오만은 허세였고 허영에 불과했다. 아직 그녀의 부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쓰나미처럼 슬픔이 덮쳐 왔다. 죽음 앞에 넙죽 엎드렸다. 나는 혼자이길 바라지 않는다. 또다시 어미 잃은 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의젓해 보였던 언니는 장례식 내내 몸살을 앓았다. 억눌렀던 감정이 몸까지 파고든 것이리라. 영혼까지 갈기갈기 찢어놓고서야 떠난 엄마, 바보 같은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돌덩이가 얹혀진 것처럼 가슴이 묵직했었다. 엄마를 보내는 3일 동안 돌덩이가 점점 작아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장례식을 치르는구나. 고인에 대한 마음정리를 하기 위해서. 지상에서 인연과 해묵은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서. 장례식을 치르면서 미움은 점차 희석되고 미안함과 애석함이 커졌다.
세상 무엇보다 컸던 엄마가 한 줌 뼛가루로 돌아왔다. 엄마의 고독한 삶이, 아팠던 날들이 고작 한 줌으로 돌아왔다. 인간은 우주의 먼지 한 톨 같은 미미한 존재일 뿐인데.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살고 치열하게 미워했던가. 짧은 인연인 줄 알았다면 좀 더 너그럽게 대할걸. 따뜻하게 품어줄걸.
아직도 아픈 날이 그림자처럼 쫓아다닌다.
엄마 장례식은 시끄러웠으면 했다. 사람냄새가 진동하고 최대한 소란스럽기를 바랐다. 엄마는 외로움이 싫다고 했으니까. 사람 속에 부대끼며 살고 싶어 했으니까. 엄마를 찾아온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했다. 그들을 붙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해댔다.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엄마, 엄마 보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어. 엄마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이제 외롭지 않지?'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 신발처럼
-정호승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