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비극 영화 속 희극배우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요양병원 투병일지 2

by 진아

엄마는 비극 영화 속 등장하는 희극배우다.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노인이 되기 전에 떠나간 건 현실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중심은 어긋나 있었다. 균형 잃은 의자처럼 자주 비틀거렸다. 언제 사라질지 모를 어미라서, 그녀 뒷모습은 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람 같았다.


"만두 먹고 싶어. 군만두 반 찐만두 반으로 가져와. "


"입맛도 없고 누룽지 먹고 싶어. 후루룩 마시게 팔팔 끓여 와 "


"떡국 좀 끓여 올래? 식지 않게 보온병에 담아와. 해산물 쫑쫑 썰어서 미역국도. "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던 엄마는 세상 음식을 다 먹겠다고 다짐했는지 매번 다양한 음식을 주문했다.

몇 달 동안 엄마가 원하는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만들 수 없으면 여기저기 발품 팔아 가져다주기도 했다. 평일은 엄마가 먹고 싶은 음식 주문을 받고, 주말에는 요리를 해서 부지런히 음식을 날랐다.


"소화기능이 떨어지니 부드러운 음식을 드세요."


의사 말은 들은 체 만 체다. 마 장기는 하나씩 스러져가는데 식탐만은 교묘히 살아서 혀를 날름거렸다. 살고 싶다는 의지보다 허기를 채우고 싶다는 욕구가 앞섰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라면 마음에 든 허기가 분명했다. 채울 수 없음에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게 된 그날까지 식탐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드시고 싶은 음식을 열거했다. 마지막으로 부탁한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납골당에 가서야 드시게 되었다.


엄마는 평소에 인스턴트, 밀가루음식, 단음식을 즐겨 찾으셨다. 유독 밥만은 잡곡밥이나 현미밥을 고수했다. 입맛도 식단도 엉터리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 엄마가 살아가는 세상은 매번 1도씩 비켜나 있었다. 우리 사전(辭典)에 '이해'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엄마의 걷잡을 수 없는 언행에 자주 분노했다.

그럴 때마다 언니 중화제 되었다. 삐뚤어진 동생을 바로 세우고 어긋난 균형을 맞었다.


"엄마가 음식에 집착하는 건 구강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해서야.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엄마를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든 거야. 어 수 없잖아. 우리가 이해해야지."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자매를 낳은 일이다. 거친 세상에 혼자가 아닌 둘은 천군만마보다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 엄마가 몸소 깨닫게 해 주었다. 정글 한복판에 핏덩이 자매를 던지고 사라졌으니.

어린 시절 친척집을 전하다 언니가 생계전선에 뛰어들고서야 독립했다. 녀는 한창 세상을 향유할 나이에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생 손에 용돈을 쥐어주려 망설임 없이 고개 숙였다.

보드라워야 할 젊음은 습진처럼 가렵고 거칠었다.

겁 많고 소심했던 나는 그녀의 피눈물을 먹으며 어른이 되어갔다. 그저 언니가 덜 아프고 덜 상처받기를 바라면서. 서로의 온기 하나로 버텨갔다. 하나가 아닌 둘인 것에 뼛속까지 감사해 가며.






"초밥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건 다 먹어야겠다. 당장 좀 사 와"


"엄마, 날 것 먹으면 안 되잖아. 또 배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지난 주말도 숨도 못 쉴 만큼 아팠다면서 왜 그러냐고!"


엄마는 초밥이 먹고 싶다며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듣게 될 목소리인지도 모르고.


암은 엄마 몸을 삼키고 뇌졸중은 엄마의 언어를 삼켰다. 이제 통화는 물론 어떤 대화도 할 수 없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데 보이지 않는 바닥은 우리를 어둠 속으로 내치기만 다. 거듭된 악재에 숨통이 조여왔다. 엄마 불행은 어디가 끝일까. 우리는 언제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을까.


엄마, 우리는 어디까지 내려갈까. 우리 인연은 언제 끝이 날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