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당신이 고대하던 3월이 돌아왔다. 만물이 소생하던 날 그녀가 태어났다. 엄마는 생일이 다가오면 아이처럼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들을 열심히도 풀어놓았다. 딸들이 냉담하게 챙겨주는 듯 마는 듯 굴어도 해맑게 웃었다. 가족들이 이 날을 기억하고 함께 하는 것만으로 함박 웃어 보였다. 미련해 보이던 웃음이 싫어 고개를 돌려 버리곤 했다.
엄마가 그토록 기다리던 생일이지만 엄마가 없다.
차려놓은 생일상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쏟아낼 만큼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었나.
여태껏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 한 번 받아 본 적 없다. 생일날 아침, 어김없이 걸려오던 엄마 전화가 생일상이자 선물이었다.
미역국 한 번 안 끓여주냐며 원망했었다. 미움도 증오도 부질없음을 그때는 몰랐다. 엄마는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을 이미 주었으므로.
엄마는 나를 낳고서 미역국이나 제대로 챙겨 드셨을까. 외할머니도 형제자매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했는데, 자식 낳고도 따뜻한 몸조리 한번 못 받았겠지. 바로 현실을 살아야 했던 엄마가 안쓰러웠다. 왜 미리 헤아리지 못했을까. 엄마의 빈 가슴을 보려 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이었다. 서로의 외로움을 토로하던 날이었나.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너는 그래도 할머니가 있었잖아."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니. 엄마가 없는데 그 빈자리를 할머니가 어떻게 채우냐며 소리를 질렀다. 돌아보니 엄마 곁에는 할머니도 엄마도 남편도 형제자매도 아무도 없었다. 차마 하지 못하고 삼켰을 말이 생각났다. 엄마가 하지 못했던 말은 이렇지 않았을까.
"너는 그래도 할머니가 있었잖아. 엄마 곁에는 아무도 없었어."
세상에 홀로 바람을 맞고 휘청거렸을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 따위 필요 없다던 못된 딸이 가슴 치며 후회한다. 엄마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해서. 모질게 대해서 미안하다고. 엄마 생일상을 차리며 또 한 번 이별을 한다.
'엄마, 맛있게 먹어. 이젠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울리지 않는 전화를 쳐다본다. 엄마 생일에도 나의 생일에도 전화는 울리지 않는다. 울릴 수 없는 전화를 기다린다.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남았다. 지워야 하는데 아직은 용기가 없다.
모든 불행의 시작은 아빠라고 생각했다. 엄마에 대한 미움 한편엔 아빠에 대한 원망도 자라 있었다. 그는 평생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가정을 등지고 섬처럼 둥둥 떠돌았다. 무관심, 방관으로 파멸을 이끈 당사자. 엄마 생이 끝나기 전까지 아빠를 원망했다. 왜 책임감 있고 따뜻한 남편이 되어 주지 못했냐고. 가정이 파탄 날 때까지 왜 방치만 했냐고. 딸들이 눈물로 성장통을 앓았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냐고. 날을 세워 물음표를 겨누었다. 왜, 왜, 왜? 혼자서 하늘을 저주하며 독설을 퍼부었다.
안다. 당시 아빠 삶도 녹록지 않았으리라. 연이은 사업실패로 인한 좌절,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자책과 무기력. 뻗어나가려 할수록 가지를 내치는 세상. 그는 좌절을 견디기에 너무 젊었고 가정을 지키기에 뿌리가 약한 사람이었다. 그의 방황은 필연적이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 장례식장에 아빠가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방문에 놀랍기도 했지만 감사하기도 했다. 이미 정리된 인연이지만 풀지 못한 매듭을 풀려고 용기를 낸 것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서야 두 사람이 마주했다. 가정을 버린 사람과 삶을 영영 등진 한 사람. 영정사진을 마주한 아빠가 오열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떠돌기만 하다가 고통 속에 가게 해서 미안하다. 흑흑흑.."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아빠가 소리 내어 울었다. 창창하던 바위는 노쇠하여 꺼이꺼이 울었다.
그날 처음으로 아빠 눈물을 보았다. 가슴속 단단한 무언가 '툭' 끊어져 내렸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