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으며 엄마를 보내는 방법

그곳에서 매듭을 풀다

by 진아

엄마와 이별을 체감하지도 못한 채 사십구재를 맞이했다. 그녀가 좋아하던 봄날이다. 꽃들은 지천인데 엄마는 없다.

45년 전 그녀의 결혼식린 곳. 불행의 근원이 시작된 곳. 매듭을 풀기 위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우당탕탕 뛰는 아이들을 법당에 앉히고 식이 거행되기를 기다렸다. 스님은 사십구재를 생중계로 진행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했다. 전국의 많은 법자들이 영상을 통해 기도하고 염원한다고 했다. 홀로 선 그녀의 하늘길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녀의 연은 언제부터 닿아 있었을까? 우리의 지난 이야기를 듣고 스님이 말씀하셨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전생에서부터 이어집니다. 전생에 풀지 못한 인연이 현생에 닿은 거지요. 매듭을 풀고 용서하지 못하면 다음 생에 또 아픈 인연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제는 엄마를 이해하고 놓아주세요. "


엄마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외로움과 고통에 울부짖던 날들도 여기까지다. 우리에게 이어진 질긴 인연은 아픈 인연은 이번 생으로 충분하다. 끊고 나아가길 바란다. 미움도 원망도 이번생으로 충분하다. 인연을 풀고 끊어낸다. 구멍 난 엄마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책을 읽다가 '어떤 최선은 버림일 수도 있다'귀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엄마가 택한 최선이 떠올라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다.

여느 동물들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겨울잠을 잘 수 없으니 가진 것을 다 떨어뜨리고 최대한 고요해지는 일. 어떤 최선은 버림 일 수도 있다.
<박연준 '모월 모일'>

엄마가 택한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버림'이었을까. 자신도 놓고 혈육도 놓고 세상과 삶을 놓음으로써 자유로워졌을까. 모진 운명에 로 맞는, 그럴 수밖에 없는 최선이었을까. 선택이 아직릿하다. 돋아나지 않은 생살껏 아프다.


엄마는 존재했을까. 존재했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홀연히 형체를 드냈다.

그녀는 딸의 렌즈를 빌어 세상을 보고, 피부를 빌어 삶을 느끼고 심장소리 기대어 숨을 쉰다. 엄마는 떠나지 않았다. 형체는 사라졌으나 오롯이 내 안에 우리 안에 살아 있다.

일상 속에서 엄마가 살아난다. 음식을 먹다가 거리를 걷다가 걸음걸이가 비슷한 사람만 보여도 얼굴을 확인한다. 엄마가 아닐까. 그 장례식은 꿈이 아니었을까.

엄마가 즐기던 음식을 먹고 생전 가져본 적 없던 꽃을 바라본다. 꽃만 보면 소녀처럼 좋아했는데. 꽃이 좋아서 지는 꽃 따라 가버렸나. 그녀가 휘청거리며 걸었던 거리에 섰다. 함께 걸었던 길이 텅 비어있다. 여긴 그림 속일까. 그림 속 액자에 나를 가두었나. 나는 멈춰 있고 엄마가 떠났다. 엄마가 없다. 엄마자리를 비워두고 세상은 여전히 굴러간다. 변한 건 엄마 빈자리 하나뿐이라서 혼자서 슬프다.




꿈속에서 만난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충만함으로 밝게 빛났다. 살면서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행복을 그곳에서 찾은 걸까.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떠나던 날, 엄마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떠오른다. 딸에게 표현하지 못한 미안함이었을까. 남겨진 가족을 위한 마지막 온기였을까.

엄마가 남긴 걸음 위에 내 걸음을 포갠다. 한 번도 나란히 걷지 못했던 우리의 발자국들.

모래알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던 엄마. 붙잡고 싶어도 잡으려 해도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갔던 엄마. 자식 손에 남을 힘조차 없었나 보다. 받은 사랑이 없어서 손 안의 온기로는 부족했나 보다. 아직도 엄마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언젠가는 엄마를 생각해도 울지 않는 날이 오지 않을까.

엄마에 대한 이해도 사랑도 늦었지만 더 늦지 않으려 한다. 받았던 사랑과 나눠야 했던 사랑을 이제야 보탠다.

벚꽃이 흩날리고 그녀가 좋아했던 꽃들이 만개했다.

엄마가 좋아했던 진달래가 지천이다. 흩날리는 꽃잎 따라 그녀가 걸어간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의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먼 후일' 김소월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