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가족은 카톡 단체창을 나간다고 연이 끊어지지 않는다.
내가 시가 가족 단체창에서 조용히 나가기를 누른 것은 남편이 이번에 새로 입사한 12년 후배들과 회식을 한 날이었다. 소위 대면식이리고 불리는 행사인데 솔직히 10년 차 넘어가면 대면식은 하지 않는다. 남편은 후배들이 자기를 너무 좋아한다며 (ㅋㅋ.....)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 어린애들이랑 술 먹으면 재밌겠지. 예비군 훈련이 있던 날이었는데 집에 들러 옷까지 바꿔 입고 다시 나갔다. 언제 들어올 거라는 말은 없었다. 나는 노파심에 나가는 남편에게 말했다.
지금 연차면 끝까지 있는 게 민폐다. 적당히 마시다가 카드만 쥐어주고 빠져주는 게 예의라고.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다 옆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전화기 울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 한 시였다. 받았더니 남편이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보니 버스도 택시도 잘 안 잡혀 걸어오는 중인데 힘들다..... 는 내용이었다. 속에서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전화를 끊고, 처음으로 남편에게 미친 x이라고 카톡을 보냈다. 네가 더 힘들겠니 암에 걸리고도 이딴 전화를 받는 내가 더 힘들겠니. 넌 아마 길거리에서 객사해 나보다 먼저 죽을 거다, 악담을 퍼부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나는 잠이 한번 깨면 잘 들지를 못한다. 그날도 새벽 한 시에 그 전화를 받고 네 시까지 다시 잠들지 못했다. 남편은 전화를 끊고 나서 약 한 시간 뒤 쿵쾅대며 들어왔다. 나는 안방에서 문을 잠그고 누워, 숨을 고르며 잠이 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시댁창에 남편의 만행을 알리고픈 충동이 들었다. 워낙 시시콜콜한 얘기가 많이 올라와서일까. 나도 시시콜콜 남편의 만행을 알리고 싶었다. 더 미친 짓을 하기 전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시댁창에 들어가 조용히 나가기를 눌렀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내 카톡을 보고 기분이 상해 사과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항상 저런 식이었다. 나를 깊이 빡치게 만든 다음에 내 입에서 험한 말이 나가면 그것을 빌미로 자기는 더 이상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날 아침은 매우 너그러운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 시가창에 대꾸할 의무가 없어졌다는 해방감. 나는 토마토주스를 갈아 남편에게 주고 배웅을 했다. 그리고 톡을 보내 어제 내가 말이 심했던 것 같다고 사과했다. 너무 빡쳐서 시가창에서 나갔으니 양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
아, 이 시가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결혼생활과 함께 시작했으니 그 유래가 매우 깊다. (십 년이 넘었다는 얘기) 시부모님, 우리 부부, 시누네 부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 시누네 아들 어린이집 간 이야기, 시누네가 주말에 뭐 했는지 얘기,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구성원들의 축일 및 생일, 결혼기념일 등등 축하, 어머님과 아버님 놀러 가셨을 때 사진 등이 매우 자주 올라왔다. 아이들 어릴 때는 나도 우리 아이들 사진과 동영상 등 근황을 많이 공유했었다. 초창기에는 의무감에 시부모님 및 시누의 톡에 일일이 대꾸를 하였으나 이제는 딱히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위도 조용하므로.
그러니까, 나에게는 또 다른 업무창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다. 내가 말이 없어진 이후로 남편의 리액션이 조금 늘고, 내가 올리던 아이들 사진을 남편이 올리게 되었다는 점만 좀 달라졌다. 그러니 굳이 내가 있어야 할 필요도, 있을 의무도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그러니 매우 섭섭해하시는 어머님을 좀 더 섭섭해하게 두고 나는 숨 좀 쉬자. 제발. 남편아.
1시 반 반여,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중문 숙소로 들어왔다.
피곤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체크인을 하고, 내일 언제 볼까 물어보는 언니에게 내일 일어나서 고민하자고 이야기하고 혼자 방으로 들어왔다. (내 몸에서 나오는 방사선 때문에 우리는 같은 방을 쓰고 있지 않고 숙소를 각자 잡고 있다.)
남편의 카톡에 뭐라고 대답을 할까 고민을 하다 너무 심각해지지 않으면서 내 상황을 표현하는, 그리고 본인 직장을 그 누구보다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가 잘 알아먹을 수 있도록 답을 보낸다.
”이제 중문 숙소 왔네. 버스 갈아타고 왔더니 피곤..... 뭐라고 했길래 너무 섭섭해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장님 실국장님 전달사항 있으면 알려주시고요. 업무카톡방 초대는 당분간 자제 부탁드립니다. ㅠㅠ“
그에게 답이 온다.
”가족창에서 갑자기 나갔는데 섭섭해하지 않으시겠어? 말투 진짜 너무하네... 업무카톡방? 그래 나도 모르겠다 이젠 “
와우, 누가 너무한 건지 잘 모르겠다.
결국 나도 정색을 하게 된다.
”아직 상황이 잘 파악이 안 됐구나... 그래서 날 다시 초대하겠다고? ㅎㅎ 어머님 섭섭해하시니까? 내가 스트레스받는다는데? 그렇구나.... 하긴.... 길고 긴 편지를 왜 썼는지 나도 모르겠다ㅎ
좀 섭섭해하시게 두었음 싶네 나 숨 좀 쉬자 제발........... “
잠시 후 그에게 아래와 같은 톡이 왔다.
”나도 너 가족창에 들어가 있고, 가족창에서 너한테 얘기하는 거도 없고 그냥 들어와 있는 건데, 일언반구 없이 나가면 아예 시댁이랑 연 끊는 걸로 느껴지지 않음? 그래 너 맘대로 해 나중에 회복이 가능할 정도로 적당히 해야지 이건 그냥 막 나가는구나... 단체창 들어오는 게 숨 못 쉬게 하는 정도였던 거야? 여행 잘 다녀오고 한동안 우리도 시간을 가지자. 나도 도저히 못 참겠다 이제. 답장 안 해도 되고, 나중에 집에 돌아올 일정 정해질 때 연락 줘."
하....... 역시 하나도 못 알아먹었다. 위의 카톡에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 일 년에 몇 번 울릴까 말까 하며 우리 언니와 오빠도 없는(하하하.....^^;; 우리 새언니와 조카는 있다...) 우리 친정 단톡방을 시댁 단톡방과 동일 선상에서 보고 있으며, (우리는 여기서 나가면 연을 끊는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너도 나가라...) 내가 애초에 왜 일언반구 없이 시가창에 조용히 나가기를 눌렀는지는 기억에서 잊었고 (아니면 내가 나쁜 말을 했기 때문에 전혀 미안할 일이 아니고), 단톡방에서 나간다는 것은 시댁과 연을 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ㅋㅋㅋㅋㅋ), 지금 내가 숨 좀 쉬자고 하는 상황을 단순히 단톡방으로 축소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고 있다. 내 편지를 제대로 읽기는 한 거냐.
무엇보다...... 남편 생각에 지금 내가 ‘놀러’ 여행을 와있다는 거다.
동위원소 치료받고 요양병원도 집에도 갈 수가 없어 여기와 있는데, 내가 놀러 와 있는 줄 아는 것이다. 암에 걸려 수술과 방사선 치료 후 요양 중인 와이프의 안위보다 (하다못해 오늘 컨디션 괜찮냐는 말도 없았다) 엄마가 며느리 단톡방에 없어 섭섭해하는 것이 마음에 더 걸리는 남편이다.
쓰면서 웃음이 난다. 그렇다. 나는 그런 남편과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창에서 나한테 얘기를 안 한다고? 애초에 내가 나간 것도 어머님이 나한테 뭘 물어봤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어서 그때서야 깨닫고 나한테 나간 거냐고 물어봤으면서. 내가 그다음 날 아침 나갔으니 양해해 달라고 이야기했을 때가 아니라.
일단 대꾸를 할 가치도 못 느꼈지만, 굳이 대꾸하기에는 내가 너무 피곤했다.
그래. 시간을 갖자.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 머릿속에서 얼른 글로 쓰라고 아우성을 쳐서 잠에서 깨 이 이야기를 쓴다.
글로 쏟아내니 참 좋구나. 그리고 눈물도 이제 나지 않는다.
머릿속이 맑아지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가족단체창을 나가는 누군가에게 연을 끊는 것 같고 섭섭한 마음이 든다면, 그리고 그 대상이 아파서 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단체는 가족이 아니다.
진짜 가족이라면 카톡 단체창을 나간다고 해서 연이 끊어지지 않는다. 특히 몸이 아픈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부터 되어야 한다. 아니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생각이 들 것이다. 지금은 너만 생각하고 잘 회복해라 마음이 들것이다. 그걸 아들한테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입 밖에 내뱉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와이프를 진정 위하는 남편이라면 설령 엄마가 그렇게 말했더라도 와이프에게 전달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가족이 아니다. 내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는 또 다른 업무창에 불과하다. 그냥 내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내 '원'가족창은 아니다. 지금 내 가족은 남편과 우리 아이들이며, 나를 진정 걱정하는 내 '원'가족은 우리 친정식구들이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전화하는, 수술할 때 일인실 있으라며 바로 병원비 쏴주신 엄마 아빠, 자기 몸도 안 좋은데 같이 제주도 와서 옆에 있어주는 우리 언니, 평소에는 무심한 듯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 바로 달려와 챙겨주는 우리 오빠. 모두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그냥 사랑한다. 내가 너무 큰 사랑을 받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프고 나니, 진정한 가족이 보인다. 극명하고, 선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