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운이 언제 꺾일지, 여전히 한낮 기온은 계란후라이 몇 개쯤 금방 구울 태세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 아침, 저녁으로 제법 찬 기운의 바람이 느껴진다.
맛동산을 좋아하고, 누가바를 사랑하는 그들에게 반가움과 친근감이 느껴진다는 친구의 추천으로 시니어들의 마지막 사랑찾기를 보여주는 연예프로그램 <끝사랑>을 한편 보았다.
나보다 언니, 오빠들 맞나요?
50대, 60대의 그들은 군살하나 없는 몸매와 깔끔하고 세련된 옷차림으로 서로의 끝사랑을 찾아 나섰다.
50킬로 초반의 나름 날씬한 친구는 그들의 관리된 모습에 충격받아서 요 며칠 자기도 관리 좀 하고 살아야겠다며,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않는데 혼자 지지리 궁상으로 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능력 있고 자상한 그녀의 남편은 오히려 자꾸 관리받으라. 꾸미고 다녀라 하는데 이 돈이면 애들 학원을 하나 더 보낼 수 있는데.... 따위의 고민을 하며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희생했다고 하소연을 한다. 끝사랑의 관리된 시니어 참여자들을 보니 그래도 그들보단 몇 살이라도 어린데 더 나이 들어 보여서 충격 받았다고 결국 피부과 패키지를 끊었다, 보톡스를 맞고 왔다, 고가의 가을신상 세트를 샀다고 이야깃거리들을 풀어놓았다.
사실 억대연봉을 받는 그녀의 남편이지만 전업주부라 자기한테 투자하긴 미안하다고 주저하며 살았던 친구였어서 우리는 잘했다고, 이번 기회에 더 사라고, 자식들이 알아주냐 우리한테도 투자하고 살자고 친구를 응원했다. 남편이 허락해 줬다는데 뭐가 문제야...
결국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대부분 시니어 모델이나 배우, 뷰티유튜버 등 평범한 일반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조금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한 친구의 반란은 물결이 되어 다른 친구도 가을에 피부과 패키지를 끊는다고 했다. 사실 서귀포 시골에 살다 보면 그런 비교들에서 조금 무뎌지게 마련인데 친구들이 덩달아 그러자 나만 너무 관리 안 하고 다 내려놓고 사나? 보톡스는 맞으면 정말 효과가 좋을까? 눈썹펌을 하면 조금 더 예뻐 보이려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하지만 언제나 처음 하는 일에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라 아직 해보지 않은 보톡스, 눈썹펌은 패쓰하고 젤 평범하고 익숙한 머리를 해야겠다 결심했다.
병가로 쉬는 중이니 이 기회에 해버리자.
요즘 펌 가격은 너무 비싸다. 몇 시간을 서서 일하는 그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한번 가면 몇십이 우습게 사라지니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3월에 펌을 14만 원에 했다. 나름 가성비로 유명한 체인 미용실이었다. 그런데 착한 가격을 내세운 미용실은 가운을 입고 자리에 붙들려 상담을 받으면 항상 기본은 안 되고 머리카락이 너무 상해서 단계를 높여야 하고, 영양을 추가해야 하고 이렇고 저렇고 해서 14만 원이었다. 나름 혼자 계산으로 한 달에 만원씩이라 생각하고 14개월 후에 다시 펌을 해야겠다 결심했지만 결국 6개월 만에 다시 머리를 지지고 볶고 있다. 이런쪽은 똥손이라 머리 관리도 잘 못하는데 비싼 곳이나 싼 곳이나 결국 큰 차이 없을 거야 생각하고 40대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는 후기가 좋은 작은 동네미용실을 찾아 갔다.
꼼꼼하고 친절하게 상담도 해주시고, 몇년동안 유지하던 긴 머리를 댕강 턱선에 맞춰 짧게 자르고 볼륨감있게 말아올린 결과물도 맘에 들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여기 단골 해야지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혼자 동네미장원이니까 가격이 저렴할 거라고 내 맘대로 생각했다. 물론 인터넷에 제시된 가격도 다른 곳보다 조금 저렴했었다. 그런데 뭐를 뭐를 뭐를 하다 보면 결국 최종 가격은 내 예상을 훌쩍 넘어 버려서 문제다. 여기는 펌가격 따로 컷비용 따로 턱선인데 기장추가까지 비용으로 더해졌다. 기본가격은 저렴했지만 그렇게 계산되니 인테리어 좋고, 스텝들과 함께 운영하는 인기 많은 옆 미장원과 고작 2만 원 차이. 계산을 끝내고 나자 갑자기 만족도가 뚝 떨어졌다. 2만 원 차이였음 그냥 핫한 미장원을 갔을 텐데 2만 원 때문에 원장님 디자인헤어를 포기하고, 아줌마 디자인헤어를 선택한 기분. 20만 원도 아니고 2만 원에 사람이 참 간사하다. 사실 객관적인 실력은 잘 모르면서 다음엔 젊은 애들 많이 가는 저 미용실 갈 테야 하고 마음 먹었다. 어찌 되었든 머리를 하고 나니 기분전환으론 최고이다. 머리 했다고 또 다른 끝사랑이 나타나 멜로드라마를 찍을 것도 아니고 남편에게 멋쩍게 "나 이 머리 얼마 주고 했다." 자랑하니 자고 일어나면 완성되는 머리 아니냐고 놀리는 남편과 심심하고 담백한 일상을 살아갈 테지만...
이젠 몇 개월 버텼다가 펌 대신 보톡스나 필러를 맞아봐야겠다. 그 비용이나 이 비용이나...
체중엔 1킬로의 변화도 없지만 현재 하고 있는 필라테스도 열심히 하고, 피부과까지 댕기면 나도 뭐 관리받는 여자가 되는거다. 관리 받는 여자가 별건가? 그래, 그 정도는 나에게도 선물하면서 살자. 그러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