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소리 내어 하지 못하는 말.
"딸 사랑해!"
지역적 특성이라 하기엔 그렇고 성격이겠다.
항상 베풀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엄마지만 소리 내어 사랑한다 딸...이라는 한 마디를 듣지 못한 거 같다.
아주 어릴 적엔 했을 테고, 어린 손녀손자에게는 사랑한다 소리 내어 말하지만 머리 큰 아들, 딸에겐 엄마도, 아빠도, 나도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듯하다. 병원에 입원하고, 남편은 보호자로 나를 따라오고, 딸은 친구집으로 가고 혼자 남은 산이를 친정집에 맞기기로 했다.
퇴원을 하는 날 산이도 데리고 가고 꼭 집에 들렀다가 가라는 엄마 전화에 아픈 배를 감싸 쥐고 어기적어기적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 나 왔어. 지옥에서 살아왔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밥 먹고 가. 한 건 없지만 있는 반찬에 밥이라도 먹고 가."
소고기 듬뿍 부들부들 찐한 미역국.
꽈리고추, 통마늘, 메추리알 가득 소고기 장조림.
새콤달콤 양념 황태채무침.
시원한 물김치.
이제 담은 듯한 새 열무김치.
요 며칠 내가 찾아다니던 전어구이까지.
식탁 위 음식들이 말한다.
사랑한다 딸.
눈물이 울컥 까지는 아니고 맛있게 먹으면서 모자란 내 모습을 반성한다.
엄마는 골다공증으로 뼈가 약하다.
올 초에 침대이불에 걸려 미끄러져서 무릎뼈가 부러져 수술을 하셨다. 무릎깁스 풀고 며칠 있다 봄비에 젖은 바닥에 또 미끄러져 이번엔 팔에 금이 가서 다시 팔에 깁스를 했다.
엄마가 수술하고 입원하는 동안 나는 병실만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해 드린 게 없었다.
아빠 밥 걱정에 부러진 무릎으로 밑반찬을 다 해 놓고 수술을 하러 병원으로 향하던 엄마였다.
나란 사람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를 만들 줄 모르고 매번 엄마 김치만 얻어먹고, 엄마가 해주는 밑반찬만 날라다 먹었다.
그리고 살짝 미안하면 마트 가서 잔뜩 과자며 과일이며 장을 봐서 "엄마가 해 먹어. 엄마 내 실력 알잖아." 하고 장본 것들을 내려놓고 오는 정도가 내가 하는 전부....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닌데 나 이제 40대 후반이잖아.
엄마의 미역국을 보면서 반성한다.
나도 말 못 하잖아.
엄마 사랑해하고 말하면서 앵기는 애교 있는 딸 아니잖아. 그럼 다른 걸로라도 보여줘야지...
한 움큼 돈을 쥐어줄 능력도 없고,
맛있는 음식을 한 상 차릴 능력도 없고,
나는 무엇으로 엄마에게 사랑한다 말하나?
엄마가 싸준 밑반찬 가득한 냉장고.
덕분에 에어컨 바람 아래서
어제도 미역국
오늘도 미역국
내일은 미역국 동나려나...
들리지 않겠지만 혼자 말해본다.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