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이 끈적끈적,
살갗이 따갑도록 강열한 태양.
여름의 한가운데 들어서니 에어컨 바람만 찾아서 실내로 들어가게 된다.
어느새 메뉴는 저렴하기도 하고, 더위로 떨어진 기운을 카페인으로 충전해 줄 아이스아메리카노.
옆 테이블에서 먹는 새하얀 팥빙수가 눈에 들어온다. 저 팥빙수를 하루에도 몇 개씩 도둑질하듯 눈치를 보며 혼자 먹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눈꽃빙수니, 망고빙수니 빙수도 다양해 지고 고급화되었지만 내가 눈치 보며 먹던 팥빙수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롯데삼* 팥빙수, 빙그* 팥빙수였다.
6월 초 아직 여름이 본격적으로 오지 않은 시기에 난 첫 아이를 낳았다. 출산 이후 몸에 열이 많아진 건지 동네구멍가게에서 파는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된 얼음 팥빙수가 그렇게 땡겼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혼자 가게에 가서 팥빙수랑 우유를 몇 개씩 사놓고 차례차례 우유를 부어 아그작 아그작 얼음을 씹어 먹었다. 가끔씩 씹히는 떡조각도 그렇게 달콤하고 맛있더라.... 며칠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팥빙수를 사다 나르니 가게 아줌마가 참고 참았다는 듯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한 마디 하셨다. 그때 우린 상가 2층집에 살았는데 1층엔 세탁소가 있고 바로 맞은편이 동네 구멍가게라 아줌마가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나의 사정을 빤히 알고 계셨다.
"몸조리해야지 그렇게 자꾸 차가운 거 먹으면 안 돼. 아직 어려서 모르지? 나중에 후회한다. 따뜻한 거 찾아서 먹어. 양말도 신고 다녀야지 그렇게 발목 내놓고 무릎 내놓고 다니면 안 돼."
아줌마의 걱정스런 충고를 듣고 나니 다음날부터 마음 편하게 팥빙수를 사러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팥빙수가 참을 수가 없는 거다. 애 낳기 전이면 애가 먹고 싶어 한다고 핑계라도 대겠지만 아기는 이제 나랑 한 몸이 아니라 아기 핑계도 될 수 없고...
시원하고 달콤한 얼음 알갱이는 와작와작 씹고 싶고.... 결국 집 앞 가게 아줌마의 눈을 피해 다른 가게로 팥빙수를 사러 다녔다. 애 낳은 지 한 달도 안 된 그 시기에 딱 그 거칠고 굵은 얼음의 투박한 팥빙수가 땡겼다. 두 브랜드 중 특히나 내가 더 좋아하던 브랜드가 있었는데 20년쯤 지나니 그게 뭐였더라 가물가물해져 버렸다.
난 왜 한 여름 새벽에 아기가 먹고 싶다고 남편에게 딸기심부름을 시키는 평생에 누리기 힘든 호사는 누리지 않고, 애 다 낳고 뒤늦게 혼자 몰래 팥빙수를 찾아다니는 궁상을 떨었나??
그때의 그 팥빙수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십만 원짜리 호텔빙수라도 그 맛을 따라 올 수가 없다. 요즘은 아이들이 가끔 사 오는 그 팥빙수 눈길도 주지 않지만 옆 테이블 새하얗고 소복하게 쌓여 있는 고소한 팥빙수를 보니 그때의 팥빙수가 생각난다. 가게 아줌마의 우려와 상관없이 다행히 아직은 별 탈이 없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