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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형학교

11화 - 복도갤러리

학교 전체가 물리적으로도 배움의 장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요즘은 공간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배움의 내용을 지적의지적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온갖 구호나 정보가 담긴 글귀를 학교 공간에 게시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겠지만좀 더 시야를 넓혀 학생의 정서 내지는 감성의 영역까지 확대해 바라본다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학교 건물의 벽면을 어떻게 꾸밀까 하는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이런 고민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작용하더군요개인 특성이기도 하고 이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예술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어느 때부터인가 그림에 대한 관심이 생기더군요쇠라의 그림을 좋아합니다물론 약간의 겉멋도 들어서겠지요암튼전시회도 다니고 시내에 나가면 갤러리도 둘러보다 보니그림을 보면 이런저런 나름의 느낌과 관점을 갖게 되더군요음악에 대하여도 관심을 가져보려 했지만음악에 대하여는 스토리텔링이 어려웠습니다그냥 이 음악 좋다!’ 정도 외에는음악은 천재의 예술이고 미술은 저같이 평범한 사람도 나름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예술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교감이 되어 근무한 학교는 남학교였는데남학생들이 정말로 천방지축이더군요사건사고도 많고요남학생들을 차분하게 하면서도 뭔가 감성을 키워주는 학교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마침 학교를 위해 기부를 하겠다는 고마운 분이 있어 복도에 복제된 명작 그림을 전시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복도갤러리입니다.          


복도갤러리는 학교의 빈 벽면에 복제된 명화를 게시하는 것입니다복제 명화를 판매하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교장이 되어서도 교육청 공모사업을 신청하여 예산을 확보한 후 복도갤러리를 설치했습니다.우수 업체를 수소문하여 몇 가지 요구를 하였습니다미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의 참여와 이들에 대한 교육을 해 줄 것과미술사 시대별로 1층부터 4층까지 작품을 전시할 것그리고 전시된 작품에는 약간의 작품 소개 글을 부착하도록 했습니다.

다행히도 업체에서 성실하게 약속을 지켜주어 제 나름 만족할 만한 설치가 되었습니다오른쪽 사진은 복도갤러리 일부 사진입니다.  


작품을 보고 있는 여학생들을 보면 흐뭇하더군요뭐... 손녀를 보는 할아버지 느낌 같다고 하려나옆을 지나가는 남학생들을 보고 너희는 복도갤러리를 본 감상이 어떠냐?’ 하고 물었더니, ‘어... 언제 저런 게 생겼지?'

하더군요여러 분야에서 느낀 것이지만남학생과 여학생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대부분의 경우에서 남학생들이 걱정스러워요학교장으로서 정말 많은 시설 개선 사업을 했습니다복도갤러리도 그중 하나지요. 개개의 시설 개선에 대하여 학생들이 느끼는 바는 서로 다르겠지만학기마다 변화하는 학교 환경을 보면서 학생 학부모 모두 학교가 발전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술 분야 진로를 생각하는 학생들을 모아 복도갤러리 학생참여단을 조직하여 공사 업체의 큐레이터와 함께 미술에 대한 공부도 하고복도갤러리 설치 관련 학생 의견 수렴 및 제안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교장실에서 모임을 가지면서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감시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학생들이 참여 열의가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아래는 활동에 참가한 학생의 참여 소감문입니다          


다른 이야기인데퇴직 후 교장 평가를 위해 어떤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그 학교 교장님이 미술교사 출신인데 그 학교에도 복도갤러리가 있더군요이 학교의 갤러리는 이런 게 전문가의 안목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련되고 멋졌습니다그 교장님의 직무를 평가하는 자리였는데이런 복도갤러리를 만든 것만으로도 학교장의 역할을 상당히 완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그 교장님이 떠난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복도갤러리는 유지될 터이고그것을 보는 학생들에게 좋은 느낌을 줄 것 같아서요


생각나는 추억이 있습니다복도갤러리를 만든 다음 해에 학생 휴게공간을 만드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휴게공간에 뭔가 인상적인 그림을 걸어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때쯤 춘천에 있는 ○○○미술관을 몇 번 갔는데그 미술관의 노인을 그린 극사실화가 너무 강렬한 인상을 주더군요동해인이라는 시리즈물인데노인의 깊게 파인 주름이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마치 제 부모님을 보는 것 같더군요학교 휴게공간에 동해인을 걸어두면 우리 학생들도 부모님도 생각하고자신의 삶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며들 거라는 기대로갤러리에 편지를 써 기증을 부탁했습니다아래는 제가 보낸 편지입니다.          


기증을 받았냐고요못 받았습니다화가님께서는 작품을 외부로 판매하거나 내보내지 않는다는 답장을 받았습니다아마도 화가님 본인이 제 편지를 보았다면 보내 주었을지도 모르지만이런 편지는 실무자 선에서 처리한 것이겠지요혹시 독자분 중에 기증을 안 한 화가님을 비난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그러면 안 됩니다! 편지를 쓰면서부터이런 부탁은 도둑놈 심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들에게는 기부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테고갖가지 사정과 명분이 있겠지만그것을 어떻게 다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편지를 보내본 것뿐입니다지금도 동해인의 노인분들의 모습이 기억에 선합니다그 뒤에도 그 미술관에 가끔 가 보고숙소에서 묵기도 합니다.  


        

학교에 대한 외부의 도움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저는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이 앞으로도 발전하리라 믿습니다믿음의 근거가 여러 가지 있지만가장 큰 이유는 학교와 교육을 도우려는 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30여 년의 교직 경험에서 특강 등의 외부 도움을 요청한 적이 많이 있는데대부분 기꺼이 요청에 응함은 물론이고 요청드린 내용 이상의 도움을 주고자 하는 분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저는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은 이기심이라고 쿨하게 인정하는 사람인데학교를 도우려는 분들에게 어떤 이기적 요인이 있나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조금 과한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교육의 가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타인의 성장을 돕는 것에 대한 가치 부여가 유전자 속에 이미 새겨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래된 기억 하나를 소개합니다과학고 근무할 때초청 강연을 담당하는 부장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당시 유전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교수가 있어 그분을 강사로 초청하려 했습니다메일도 보내고 전화를 해도 연결하기 어렵더군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신년 초에 고교동창회 신년하례식에 그 교수님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5만 원의 호텔 식사비를 내고 모임에 참석했습니다그곳에서도 환영 열기가 대단했습니다교수님 가방을 들고 있는 비서에게 얘기하여 제가 가방셔틀을 하고 주차장에 내려가 차문을 막아서며 말했습니다. ‘선배님○○회 ○○입니다○○과학고에 근무하는데선배님을 특강에 꼭 한번 모시고 싶습니다’ 오셨냐고요오셨지요특강에서 느꼈던 특이점이 두 가지 있는데하나는 생명공학이 갖는 학문으로서의 매력입니다불구의 슈퍼맨 연기 배우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설명 부분에서 학생들 모두 박수를 치더군요다른 하나는 그해 생명공학 계열 진학자가 예년의 2배 정도 되는 것을 보고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요인이 실리적 측면만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마을과 결합된 학교라는 개념이 교육정책으로 추진되면서학교의 교육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외부 요구도 왕왕 있습니다제 느낌으로는이런 요구에는 공익적 측면도 있지만 경제적 욕구도 있는 것 같더군요특히 초등학교 쪽으로 내려갈수록 이런 요구가 더 많다고 들었습니다일단은 학교가 중심을 잡고 이런 요구를 합리적으로 조율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여 년 전에 교육부의 교육과정심의회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그 당시에도 과학과 심화교육과정에 반영되고자 하는 세부 과학분야 및 공학분야 요구가 상당한 것을 보고교육도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다양한 외부의 요구를 적절하게 수용하려는 의지를 가진 교육계 내의 중심 집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명분의 주장이라 하여 어떤 내용을 학교에 무비판적이고 무제한적으로 수용하는 결정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이는, 영양가 있는 음식이라 하여 이를 제한 없이 섭취한다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는지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학교와 마을이 함께 학생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힘듭니다(혹시, ‘그렇다면 당신은 학교와 마을이 교육적으로 협력하면 안 된다는 얘기냐’라는 식으로 묻는 분은 없겠지요?).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이런 주장은 교육을 위한 전문 집단으로 교사를그리고 사회 제도로 학교를 확립한 오늘날에는 타당한 주장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근대 이전 사회에서 지역사회마다의 독창성이 유지되고 이를 재생산해야 할 정도의 세상에 맞는 주장이 아닐는지요자칫 학교와 교사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을 세상과 나누어 가지려 한다는 비판도 있을 것 같고요다른 이유로는 학교의 교육이 외부의 간여로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오늘날 학교는 점증하는 학부모의 간섭과 압력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 자원의 학교 투입을 제한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학교교육의 본체가 흔들려 흔히 말하는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더 나아가 이런 현상이 보편화되면 그렇지 않아도 무력한 학교와 교사 집단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학교 교육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노파심도 듭니다.

     

어떤 내용을 학교 교육에 투입하고투입된 외부 자원을 전체 학교 교육에 어떻게 자리매김하고학교 내부 자원에 의한 교육과 외부 자원에 의한 교육이 어떻게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학생에게 제공될 것인가는 오로지 학교장과 학교구성원이 중심이 되어 책임져야 할 사항입니다인생이 그런 것처럼학교도 바람 앞에서 바람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권한과 책임이 부과되지 않은 조직은 무책임해지고 부패하기 쉽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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