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학교안전
인간의 욕구 중에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이 안전에 대한 욕구라 합니다. 개인적으로 안전에 대하여 체감한 경험이 교육청에서 징계 업무를 담당할 때 있었습니다.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교원에 대한 징계 자체는 징계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저는 그저 행정적 지원을 하는 업무였습니다. 그래도 징계대상자에게는 제 이름으로 공문(소환통지 및 처분통보)이 나가니 제가 뭔가를 결정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도 꽤 있더군요. 저는 그저 징계위원회의 시다바리인데…. 암튼, 징계 결과에 불만인 분들 중에는 저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밤길 조심했습니다! 술도 덜 먹고, 주먹도 꽉 쥐고 눈 크게 뜨고 다녔습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을 넘어서는 안전에 대한 생각은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많이 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처럼, 저도 그 끔찍한 사건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교육계에 있었으니 그런 사고와 고통이 그저 다른 기관의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더군요. 사고가 발생한 원인과 대응에 대하여 나름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내가 수학여행 인솔 책임자라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여객선 운행 책임자라면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생각입니다. 정말이지 학교의 책임자가 되면 안전에 대한 사항을 최우선적인 미션으로 생각할 것을 뼈에 새겼던 것 같습니다. 이제 「학교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세월호 사고 1개월쯤 후에 춘천에 여행을 갔었습니다. 당시 춘천호에서 뗏목배가 운행 중이었는데,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고 운행하더군요. 아직도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고, 언론에서 그렇게 많이 안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전불감지대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더군요. 저는 뗏목배 운영 책임자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개인 모두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만, 기관과 시설의 책임자는 말 그대로 책임자로서 안전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는지요? 그때 다시 한번 학교장이 되면 학교안전에 대하여 철저하고 심도 있게 살펴보고 대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학교장으로 취임한 학교를 안전의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출입문 통제와 축구와 농구 골대의 안전 커버 문제였습니다. 학교 출입문은 주간 중에는 학교지킴이가 지키지만, 하교 이후에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이기 쉽습니다. 자율학습실에서는 23시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혹시 외부인이 건물 안에 들어오더라도 통제할 사람이 없다는 문제가 있지요. 학교장으로 근무한 두 학교 모두에서 건물 주출입문에 자동잠금장치(안에서 밖으로는 자유롭게 나가지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면 비번을 눌러야만 가능한 장치)를 설치‧운영했습니다. 당연히 학생과 교직원은 비번을 공유하지요. 그 비번의 기밀이 유지되기 힘들어 잠금장치의 효과를 평가절하하는 분도 있었지만, 이런 잠금장치는 미치광이로부터 야간에 학교에 있는 학생과 교직원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및 교직원에게 학교 당국이 학교 안전에 대하여 진심이라는 점을 알려, 학교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축구와 농구 골대가 강철로 만들어져, 운동하다 여기에 부딪히는 경우 부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겠더군요. 체육부에 얘기하여 골대에 스티로폼 커버를 씌워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충돌에서 학생들을 보호하도록 했습니다. 안전과는 다른 문제이지만, 축구와 농구 골망이 찢어지면 곧바로 새것으로 교체하도록 했습니다. 학교장이 이런 식이면 체육부장과 행정실장이 피곤한 법인데, 다행히도 제가 만난 분들은 흔쾌하게 제 요구를 실행하여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아마 속으로는 좀 구시렁거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요즘도 학교를 지나다 농구 골망이 찢어져 있는 학교를 보면, 마음으로 그 학교 교장 흉을 보곤 합니다.
근무한 두 학교 모두 자기주도학습도전단이란 이름의 야간자율학습을 실시하여 야간 안전이 늘 신경이 쓰이더군요(이제 퇴직하고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밤에 이런 걱정이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야간 당직을 담당한 외부 용역 직원분들께 정성을 쏟았습니다. 제가 퇴근한 동안에는 그분들이 교장이니까요. 오후 5시가 지나면 주출입구를 제외한 건물 출입문에 잠금고리를 걸어두도록 당부를 하고, 실제 그렇게 되는가를 확인하곤 했습니다. 여기에 생각해 볼 만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첫 학교에서 주출입문을 제외한 출입문이 2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이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내부 쪽 문에서 5미터쯤 바깥쪽에 외부 쪽 문이 있는데, 외부 쪽 문에는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유리창을 깨고 나갈 수 있는 비상망치를 설치했습니다. 당직기사가 잠금고리를 바깥쪽 문에 걸어야 하는데, 여러 번을 얘기해도 내부 쪽 문에 걸더군요. 화제 등 비상시에 유리를 깨고 탈출할 수 있어야 하니 비상고리를 외부쪽 문에 걸도록 당직기사님께 여러 번 얘기했습니다. 5미터 정도의 거리를 더 걸어가서 비상고리를 거는 것이 불편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 이전부터 비상고리를 내부 쪽 문에 거는 것이 익숙해서 그런지 제 요구를 수용하지 않더군요. 제 요구를 관철시키는데 한 달쯤 걸렸습니다. 어쩌면, ‘저 교장은 아무래도 이 건에 대하여는 끝까지 자기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인간이구나.’ 하고 포기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나이 드신 분이라 매번 나름 친절하게 설명하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또 하나 걱정되는 상황은 정신이상 외부인이 야간에 건물 내로 침투하여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태였습니다. 물론 화재사고도 걱정이 되고요. 제 결정으로 매년 야간비상대피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제 결정이란 의미는 국가에서 실시하는 주간의 민방위 대피훈련과는 별도로 본교에서 실시하는 훈련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래는 야간비상대피훈련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하는 자료입니다.
코로나 시기에도 안전과 관련하여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학교는 나름대로 방역 관련 대책을 세워 실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님들의 항의성 문의 전화가 많이 오더군요. 집단적인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학교가 뭔가 방역을 소홀히 한다고 생각하고는 화를 내는 분이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공포에 대하여 매우 취약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을 하다 아래와 같은 파일(파일의 일부임)을 만들어 학교 홈피에 올리고 학부모 전체에게 문자 안내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학교의 방역과 관련한 항의성 전화가 거의 없어지더군요.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지만, 학교의 책무를 다한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학교의 활동을 학부모에게 알리는 활동도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학교 시설물 등에서의 안전사고에 대하여 학교장이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돌아 여러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누구라도 책임을 추가하게 되었다는 말에 기분이 좋을 리 없겠지요. 다만, 실제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뭔가 불편함을 느끼고 교직을 떠났으니까요! 은퇴 후 남는 시간에 관련 자료를 살펴보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2022.1.27. 시행)’에 대한 내용 같습니다.
부연 설명을 드립니다. 제2조 3항은 ‘중대시민재해’의 정의와 중대시민재해 해당 사건을 설명합니다. 제9조는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지느냐에 대한 것으로, 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장’ 즉, ‘교육감’이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학교장이 만세를 부를 일은 아니겠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육감의 지휘‧감독을 받는 학교장은 해당 학교에서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했다면 행정적 책임이나 구상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제10조에서 말하는 징역이나 벌금형 대상은 아니니 다행이긴 하네요(저렇게 무시무시한 책임을 질 수 있는 교육감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현상도 특이하기는 하네요!). 서울 시내 유‧초‧중‧고가 2000 개쯤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곳에서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한 가능성은 상당하고, 이에 대해 교육감의 법적 책임을 곧이곧대로 묻는다면 어느 교육감도 배겨 날 수 없을 듯합니다. 이 법에서 언급하는 중대산업재해가 일어날 수 있는 대규모 사업장도 비슷한 법률적 두려움을 느낄 것 같습니다. 제 짐작이지만, 재판 등을 통해 경영책임자의 사전 예방 노력 등을 고려하여 법을 적용하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그래도 너무 광범위하게 책임을 설정하고 일부 선한 책임자만을 면책하는 것 같아, 마치 ‘모든 인간을 법적 올가미에 얽어매어 놓는 법 체계’라는 인상이 듭니다. 저의 막연한 법 감정이지만 형사상 책임은 그 사람의 행동과 실제로 그 사람이 미치게 되는 직접적 영향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학교 얘기로 돌아가서, 학교장으로서 학교 안전에 관한 관심은 1개월 정도 유지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경우는 1개월 정도 지나면 학교의 시설물이 모두 멀쩡해 보이고 아무 위험이 없는 것으로 느껴지더군요. 이는 근무 기관을 옮겨도 마찬가지고요. 학교 안전에 대한 관심 유지 기간은 사람마다 다를지 모르겠지만, 근무 초기에 좀 더 세밀하고 근본적인 관점에서 학교 시설물과 학교 구성원의 행동 및 근무 양태를 살펴보고 안전에 문제가 되는 점들을 살펴보고 개선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