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임산부를 화나게 하는 것
하얀(이하 하): 첫 대담에서 얘기했다시피 아이를 품고 키우는 과정에서 여성을 화나게, 힘들게 하는 게 많은데요. 사회 전반적으로 그것들을 터놓기 어려운 분위기다 보니 다들 익명의 힘에 기대어 온라인 공간에만 푸는 것 같아요.
민지(이하 민): 건강하게 표현하면 좋을 텐데요. 할 얘기는 진짜 많은데. 저도 이런 대화가 자칫하면 단순 한풀이로 보일까 봐 걱정되긴 해요. 최대한 공감대를 쌓을 수 있는 주제 중심으로 얘기해 볼까요?
하: 좋아요. 민지 님 지하철 자주 타세요?
민: 저는 임신 기간 동안 대중교통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가 지난번 친구랑 지하철을 탔는데요. 임산부 좌석에 못 앉았어요. 중년 여성분들이 진짜 안 비켜주시더라고요(웃음). 친구가 계속 저를 앉히려는데 한 분 나가면 다른 분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앉을 수가 없었어요.
하: 저도 지하철 탈 때마다 임산부 좌석에 항상 누군가 앉아있어요. 그렇지만 비켜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주변 사람도 많고 다들 듣고 보는 상황에서, 나만 서서 가면 될걸 굳이 이 사람 민망하게 하면서까지 말할 일인가 싶거든요. 왠지 유세 부리는 것 같고, 소란 만들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참게 돼요.
민: 저도요. 그때 같이 있던 친구는 엄청 화냈거든요. 저도 친구 입장이었으면 울분이 터졌을 것 같은데 당사자가 되니까 오히려 조심스러웠어요.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 자리라도 앉는 거잖아요. 이해는 돼요. 저도 서울에서 버스 타고 다닐 때 핑크색 자리에 앉은 적 있어요. 너무 지치니까 잠깐 앉았다가 임산부가 보이면 비켜주려 했죠. 근데 한 번은 내릴 때까지 휴대폰 하느라 앞에 계시던 임산부를 못 본 거예요. 너무 죄송했어요. 그러니까 나도 누구한테 뭐라고 하기가 참..
하: 맨날 서 있던 사람도 어떤 날엔 너무 힘들 수 있잖아요. 하루 종일 일하고 출퇴근 시간도 길면 '나도 피곤해 죽겠는데 임산부라고 왜 비켜줘야 해?'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거기에 대고 왜 양보해주지 않느냐고 질책하는 게 맞나 싶어요.
단순히 자리의 문제는 아닌 것 같거든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여요. 사실 임산부석에 누가 앉아있으면 다른 사람이 비켜주면 되잖아요. 서로 마음을 내주기보다는 규칙과 의무에 따라 흘러가는 게 안타까워요.
민: 우리 사회가 아직 약자를 배려해 줄 여유가 없나 봐요. 하긴 그때 임산부 좌석에 중년 여성 분이 비집고 앉을 때도 다들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거든요? 제 배지도 보고. 근데 뭔가 그분한테만 비난이 돌아가는 분위기였어요. 누구든 비켜주면 됐을 텐데.
하: 자리에만 집중하면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노약자석을 영어로 하면 'priority seat'이잖아요. 노+약자석이지만 현재는 노인석 느낌이에요. 임산부나 어린아이도 거기 앉을 수 있는데 뭔가 젊은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분위기랄까. 임산부석에 노인이 앉으면 또 비난의 대상이 되고요.
민: '임산부', '노인', '장애인' 이런 명칭을 떠나서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양보해 주는 게 이상적이죠. 그 대상이 무거운 짐을 든 청년일 수도, 어린아이와 동행한 부모일 수도 있고요.
그래도 때론 명확한 규칙이 필요해요. 저는 임신 초기가 훨씬 더 힘들었거든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배가 안 나온 임산부를 왜 배려해야 하는지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분홍색 배지가 필요한 거죠. '분홍색 배지를 찬 사람은 분홍색 자리에 앉는다'는 규칙은 꼭 자리 잡혔으면 좋겠어요.
하: 배려받아야 하는 당사자가 되면 배려해 달라고 얘기하기가 무척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임신하고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민: 저도요. 저는 발 다쳐서 깁스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은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는 걸 새삼 체감했어요. 공공장소여도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고, 대중교통 타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임신하고 만삭으로 접어들면서는 횡단보도 신호가 너무 금방 끝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뒤뚱뒤뚱 서둘러야 겨우 건널 수 있죠.
접근을 제한하는 건 명백한 차별인데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를 못 해요. '안 가면 되잖아?'라고 생각하죠. 올여름 어떤 수영장에서 임산부 출입을 금지시켜서 임신 전부터 오랫동안 그 수영장에 다녔던 임산부가 인권보호위원회에 신고를 했어요. 저는 당연한 처사라고 보는데 여론이 상당히 부정적이라 놀랐어요. 수백 개의 댓글이 '대체 왜 신고하냐', '저 사람 애 낳으면 무조건 진상 엄마 된다', '수영장이 임산부한테 얼마나 안 좋은 줄 아냐' 같은 내용이었어요.
하: 그깟 수영 좀 안 하면 덧나냐는 거죠.
민: 네. 따뜻한 댓글이 하나는 있겠지 하고 스크롤을 내리는데 전부 임산부를 비난하는 말 뿐인 거예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남편한테 물어봤어요. "지금 세상이 나한테 몰래카메라 하는 거야? 내가 임산부라서 이러나? 객관적으로 봐도 아닌 것 같은데." 남편은 사람들이 임산부를 걱정하는 마음에 하는 말일 거래요.
하지만 임산부에게 가장 좋은 운동이 수영이거든요. 환도 통증이 극심했던 저한테 병원에서 유일하게 권한 운동도 물속 걷기였어요. 관절에 부담이 안 가니까. 친한 언니도 막달까지 수영하다가 순산했고요. 사람마다 경우가 다양한데 감염, 낙상을 이유로 출입 자체를 금지시키는 게 맞나요?
하: 최근 SNS에서 어린아이 데리고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잖아요. 같은 맥락이네요. 아이가 어릴 때 굳이 왜 여행을 가냐, 비행기 타지 말라는 의견이 다수였죠. 물론 어린아이 때문에 시끄럽고 불편할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비행기 타고 여행 가고 싶은 부모의 욕망을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지 않나요?
그저 임산부나 어린아이가 뭐라고 하기 쉬운 존재여서 그러는 게 아닐까요? 같은 논리라면 수영장에 가면 안 되는 사람 많잖아요. 청결하지 않다든지, 매너가 없다든지.. 그중 약자만 특정해서 제한하는 거죠.
민: 그게 혐오예요. 게다가 진상 학부모와 수영을 하고 싶은 임산부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데, 이 사람이 잠재적인 엄마라는 이유로 '네가 이러는 걸 보면 나중에 분명 진상이 될 거야'라고 하잖아요. 그런 시선 때문에 임산부가 더 위축되는 것 같아요.
민: 보건소에서 하는 출산준비교실에 갔었어요. 강사님이 모유가 분유보다 좋다는 걸 굉장히 강조하셨는데 거기까진 괜찮았거든요? 맞는 말이니까. 그런데 아기가 모유를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엄마가 태교를 안 해서라고 하시는 거예요.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자신을 거부했던 걸 다 기억한대요. 이어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실에 분리되면 불안함을 느낀다, 내내 엄마랑 있다가 갑자기 혼자 있으려니 얼마나 무섭겠냐, 분리수면도 시키지 마라, 이런 문화가 나중에 정서적 문제를 일으킨다 등의 내용으로 강의를 진행하셨어요.
만약 그게 사실이면 저는 다 받아들이고 열심히 따를 의지가 있어요. 문제는 이러한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하다는 거예요. 같은 주제에 관해서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잖아요. 심리상담사, 소아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가 하는 말이 다 달라요. 그러니까 한쪽만 100% 옳다고 할 수 없는데 너무나 확실하게 '잘못됐다', '하지 마라'라고 가르치니까 불편했어요.
하: 선택을 할 수 있게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해 주는 건 좋은데, 이렇게 하면 나쁘니까 절대 안 된다는 식으로 죄책감을 심어주는 게 문제예요. 집집마다 상황이 달라서 어쩔 수 없이 분유를 주거나 분리수면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잖아요. 반드시 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부모로서 죄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죠.
그렇게 따지면 끝이 없어요. 아이가 클 때까지 이십여 년 간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좋다는 모든 걸 해줘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애초에 완벽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결핍되고 어떤 부분은 과잉될 수밖에 없는데요. 부모라면 다 내 아이 건강하게 잘 키우고 싶으니까 '이렇게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라는 메시지를 듣는 순간 불필요한 죄책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민: 저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단 생각도 없거든요? 100점으로 키우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몇 년 뒤에 부모가 힘들어질 것입니다'라고 하니까 그것만은 피하고 싶은 거예요. 무분별한 메시지와 마케팅이 욕심이 없는 사람한테까지도 불안과 걱정을 조성하죠. 그러면서 요즘 엄마들이 극성이래요. 자 이제 누가 극성이지? (웃음)
(하얀과 민지는 백일해 예방 접종을 위해 어느 병원에 갔다. 각각 다른 날 갔는데도 진료실에서 같은 내용의 설교를 들었다. 원장은 긴 시간 동안 모유 수유와 다자녀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설명했다.)
하: 우리가 갔던 병원 원장님도 계속 '무조건 모유, 아이는 셋'을 강조하셨잖아요. 나는 백일해 주사를 맞으러 갔을 뿐인데 갑자기 "아이는 셋 낳을 거죠?"부터 시작해 ‘유학 보내주는 것보다 형제자매 만들어 주는 게 최고다, 한 명만 낳으면 아이가 외롭고 이기적이 되며, 가정에서 배울 게 없다’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민: 느닷없이 혼났죠. 심지어 모유라는 말도 안 하셨어요. '젖'이라고 했지.
하: 이래서 부모가 되면 자기 자신이 지워진다고 하는구나 싶었어요. 다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에 관해서만 얘기하지 엄마 인생의 방향이나 계획은 묻지 않아요. 저도 30년밖에 안 살았잖아요. 100세 시대에 이제 막 3분의 1 살고 3분의 2가 남았단 말이죠. 그런데 사회는 내 몸과 커리어, 가치관은 배제한 채 '아이를 위해선 여러 명을 낳아야 해, 집에서 누군가 아이를 봐줘야 해.' 등의 말을 쉽게 꺼내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저도 어렸을 때 엄마가 항상 곁에 있고 가족들이 복작복작 함께 하길 바랐으니까요. 그래서 못 들은 체할 수도 없어요.
전 임신 기간이 입덧이나 소양증 같은 명확한 증상 때문에 힘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내 몸과 일상이 변화하는 가운데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되게 어렵더라고요. 혼자 이겨내기도 힘들고요.
민: 아이 셋과 모유 수유가 '정답'이라고 칩시다. 그럼 결론이 어떻게 될까요? 아예 안 낳죠. 엄두가 나겠어요? 지금 우리 사회가 원하는 건 한 명이라도 낳는 거잖아요. 이렇게 키워도, 저렇게 키워도 괜찮다고 해야 한 명을 낳을까 말까인데 요구하는 게 많으면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낳아서 완벽하게 키우거나, 안 낳거나.
하얀 님 말씀대로 어떻게 키워야 한다는 담론이 지나치게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엄마가 되는 순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죠. 아이를 너무 받아주기만 하면 '맘충'이고, 아이를 너무 혼내면 '아동 학대'가 돼요. '극성 엄마'와 '방임'을 나누는 선도 아주 희미해서 조금만 방심하는 순간 줄에서 떨어져 버려요. 그러면서 임신했을 때 수영장은 가면 안 되고, 아이 어릴 때 해외여행도 자제해야 하네요.
하: 왜 이럴까요? 다들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민: 교육과 육아에 바라는 기대가 큰 사회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장점이죠. 인재가 중요한 나라라서 그런가? 근데 우리도 인재잖아(웃음). 하얀 님 말처럼 이제 막 30년 산 인재인데.
반면 임신 출산 과정에서 여성이 겪는 정신적, 신체적 어려움에 관한 담론은 현저하게 적어요. 엄마의 의무와 역할에 관한 담론이 100이라면 엄마 본인의 변화와 고통에 관한 담론은 1이에요. 예를 들어 저는 임신 기간 동안 입덧 외에도 여러 가지 신박한 고통을 겪었지만 원인이나 치료법을 찾기 어려웠어요. 병원에선 아기만 괜찮으면 견디라는 식이고, 인터넷에도 정보가 부족하더라고요. 기댈 곳이라곤 맘카페의 경험담이나 임산부가 직접 쓴 과학책뿐이었죠.
하: 그 의무와 역할이란 결국 자기희생이잖아요.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꺼이 자기희생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요. 여태까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돈 안 되는 일 하지 말라고만 했잖아요. 잘 사는 게 먼저라고 했잖아요. 내가 더 잘 살기 위한 계획에 양육을 포함시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를 낳기 어려운 거죠.
민: 맞아요. 20대까지 계속 학력, 경력, 돈이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30대 되니까 갑자기 아이를 낳아야 하는.
하: 이 와중에 낳는 사람한테는 여러 가지 잣대를 들이대요. 정보도, 조언도 많고 불안과 죄책감을 자극하는 광고도 넘쳐요.
민: 중심을 잘 잡아야겠어요. 아이를 낳는 순간 숙제가 늘어나잖아요. 물론 책임은 당연히 져야 하는데 뭐랄까 불필요한 숙제까지 얹어져요. 학군지에 살아야 하고, 학원비도 벌어야 하고. 이게 옳은지도 모르겠고 이 안에서 우리 가족이 행복할지도 의문인데 숙제를 하긴 해야 돼요. 남들이 하니까.
하: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요? 다음 시간엔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얘기해 볼까요?
민: 우리가 하고 싶은 육아, 우리한테 잘 맞는 육아에 관해 생각해 봐요.
다음 대담은 2주 후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안 올라오면 제가 애 낳으러 간 걸로 아셔요.. 무섭다 ㄷㄷ..)
*임산부 수영장 뉴스는
https://youtube.com/shorts/3OMh4ETPN2o?si=7t9EsiHIsWGozA2_
이 영상입니다
믿을 수 없게도 800여개의 댓글이 다 이렇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