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엄마가 되면: 기대와 걱정
하얀(하): 다들 본인 아이가 너무 예쁘다고 하잖아요. 전 살면서 그렇게까지 예쁜 존재를 본 적이 없거든요? 과연 제 아이는 어떨지 궁금하고 기다려져요.
민지(민): 저도 그런 외형에 관한 기대가 있어요. 아기들 특유의 뽀얀 피부, 토실한 팔다리… 남의 아기도 예쁜데 내 아기는 얼마나 더 예쁠까요?
육아를 통한 정신적인 성장도 기대돼요. 임신 초기 심란했을 때 '장애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의 대화'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영상 속 한 분이 선천적으로 기형인 아이를 낳아 키우는데, 덕분에 용감하고 도전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하시는 거예요. 씩씩하고 긍정적인 그분 모습에 울컥하면서도 그때 처음으로 육아를 보는 관점이 바뀌었어요. 그동안은 내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이를 통해서 내가 자랄 수도 있겠더라고요.
하: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거죠. 한편으로 저는 그렇게까지 어른이 되고 싶지 않기도 해요. 굳이 알고 싶지 않달까, 민지 님은 이런 생각 안 하셨어요?
민: 인간에게는 수직적인 성장과 수평적인 성장이 있다고 보는데요. 수평적인 성장에 대한 욕심은 원래도 항상 있었어요.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지금보다 품이 더 넓어져서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면 좋겠어요.
하: 그럴 수 있겠네요. 저는 어떤 아기가 처음으로 짜파게티 먹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맛있어서 깜짝 놀라는 거예요. 우리는 익숙하지만 아이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음식이잖아요.
그걸 보니까 육아를 하면 인생을 다시 살아볼 수 있겠더라고요. 저는 제 주변에 있는 웬만한 건 이미 다 경험해 봐서 더 이상 세상이 신선하지 않은데 아이와 함께라면 사소한 것도 새롭게 보일 테니까요. 아이라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기존의 세계가 깨지고 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미래가 기대돼요.
민: 부모가 되면 유년기를 다시 보낸다고 하잖아요. 저도 학교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순간 중 하나가 아이들을 통해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거였어요. 한 번은 제가 자주 가던 산에 저희 반 학생들을 데리고 간 적이 있는데 이 친구들이 정말 참신한 방식으로, 되게 즐겁게 노는 거예요. 도토리로 무선 이어폰을 만들고, 나뭇가지로 해리포터 빗자루 놀이를 하면서요. 덕분에 저까지 모든 게 새로워 보이더라고요. 그 산에 열 번도 넘게 갔지만 그날이 가장 재밌었어요.
아이가 존재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기쁨이 될 테니까 그것도 기대돼요. 고맙기도 하고요. 저희 부모님께서 요즘 손주 볼 생각에 무척 행복하시거든요.
하: 강아지 키워보셨나요? 강아지 키우면 이 친구가 저를 좋아하는 게 느껴져요. 언제 어디든 꼭 옆에 와서 애교 부리고, 배도 발라당 까다가, 편하게 잠들어요. 말은 못 해도 우리를 믿고 좋아하는 게 분명히 보이니까 그것만으로 가족들에게 큰 기쁨이 되더라고요. 아이도 그렇겠죠. 나를 사랑해 주는 아주 귀여운 가족이 또 생기는 거죠.
민: 저는 사랑을 잘 몰랐거든요? 연애를 거의 안 해서 그런가, 물론 친구들과 연애하듯 잘 지내긴 했지만 진한 사랑은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사랑에 관해 심도 있게 고민해 본 적도 없고.
그런데 요즘은 ‘아 결국 사랑이구나’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임신하고 가족들이 챙겨주니까 제가 진짜 사랑받고 있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남편과 주고받는 사랑도 더 깊어졌고요. 사랑으로 둘러싸인 채 살면 별 거 안 해도 삶의 많은 부분이 충족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랑, 사랑하는지 이해되는 거예요. 이찬혁이 자꾸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도 알겠고(웃음).
아이를 낳으면 그건 말 그대로 한없는 사랑이잖아요. 궁금해요. 내가 타인을 얼마큼 사랑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서 얼마큼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 사랑이 지나쳐서 징그러워질까 봐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행복할 것 같아요.
하: 진짜 공감돼요. 저도 사랑이 뭔지도 잘 몰랐고 믿지도 않았어요. 부모 자식 간이나 남녀 간의 사랑도 와닿지가 않았어요. 때로는 사랑이 폭력이 되기도 하잖아요. 불평등한 관계에서는 특히요. 그래서 ‘진짜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이 정말 좋은 걸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인지 남편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서툴렀어요. 이 사람을 진심으로 보듬어주고 배려해 주는 데에 익숙지 않았죠. 남편이 저에게 해주는 걸 보고 알았어요. 사랑이란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필요하고, 어디가 아픈지를 잘 들여다보고 거기에 맞춰주는 거구나. 이게 삶에서 너무나 중요하고 이것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구나. 만약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아직도 몰랐을 것 같아요.
민: 그러네요. 저도 남편을 보고 많이 배워서 이제는 똑같이 해주거든요. 예를 들어 연애할 때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가면 저는 정신없이 먹기 바쁜데 남편은 한참 동안 조개껍데기를 까다가 제가 먹던 거랑 바꿔주는 거예요. 처음엔 이렇게도 남을 챙겨줄 수 있나 싶어 놀랐어요. 요즘엔 저도 같이 까죠.
그런데 아이에게 이렇게 해주면 받는 것에만 익숙해질까 봐 걱정돼요. 조개는 당연히 엄마 아빠가 까주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웃음). 간식이나 선물을 주면 고마워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다른 걸로 바꿔달라고 투정부터 하는 아이도 있거든요. 부모가 주는 무한한 사랑을 당연시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돌려주는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받은 만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는데.
하: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러고 보니 저희 엄마도 남편보다 더 헌신적으로 저한테 잘해주셨는데 저는 몰랐잖아요.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성인이 돼서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해봐야 아나?
민: 그렇다고 "엄마 아빠가 이렇게 해주니까 너도 똑같이 해."라고 말하고 싶진 않거든요.
하: 우리가 신에게 갖는 본질적인 의문이 뭔지 아세요? '인간을 사랑한다면서 왜 고통을 주지?' 예요. 그에 대한 답은 잘해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거든요. 인간이 단단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고난과 시련도 필요하니까요. 사랑이라는 게 일방적으로 다 해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제 남편도 저에게 그러진 않거든요. 민지 님 남편도 아닐 땐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않나요?
민: 그러네요. 제 남편도 다 해주진 않아요. 조개만 까주지(웃음). 적당한 선의 훈육이 수반되어야만 사랑이 제 역할을 하겠군요.
민: 자연스럽게 걱정으로 넘어갔네요. 하얀 님은 어떤 게 좀 걱정되시나요?
하: 제가 미숙하고 부족해서 아이에게 실수할까 봐 두려워요. 강아지한테 그랬거든요. 초반에 요령도 없고 마음이 조급해서 강아지를 강제로 붙잡고 씻겼어요. 얘가 물을 싫어해서 난리 치는데도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거예요. 지금은 천천히 살살 씻기면서 중간에 기다려주기도 하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미안해요. 말도 못 하는 애가 눈코입에 물 들어가고 얼마나 따가웠을까. 아기는 강아지보다 손이 더 많이 가잖아요. 육아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제가 혹여나 아기를 거칠게 대할까 걱정돼요.
민: 아기를 위한 걱정이네요. 참된 엄마다. (웃음)
하: (웃음) 내가 후회할까 봐요. 강아지한테 못해준 후회가 두고두고 저를 힘들게 했어요.
민: 하지만 아이들을 지켜보면 의외로 결핍이나 고생, 거절당한 경험 같은 것들이 성장에 꼭 필요하더라고요. 어른이 되어서 세상에 나가면 어차피 상처받잖아요. 가정에서도 그럴 수 있어요. 부모로서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다만 이걸 견디고 회복하는 법을 알려주는 게 중요한 거죠.
하: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도 된다?
민: 완전. 완벽한 게 오히려 독이다. 물론 막 비수를 꽂아선 안 되겠지만 부모가 열심히 하려다가 부족해서 실수하는 건 괜찮죠. 강아지도 아기도 하얀 님의 미숙함 때문에 조금 힘들 수는 있지만 그러면서 성장하지 않겠어요?
민: 저는 제 아이가 남에게 피해 줄까 봐. 그게 제일 걱정돼요.
하: 그래요? 한 번도 안 해본 생각이네요. 문제 행동을 할까 봐요?
민: 네. 교사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터에서의 경험을 육아에 지나치게 투영하고 있다는 거예요. 물론 훌륭한 학생과 학부모가 훨씬 많았죠. 그러나 어려운 아이 한두 명이 인상에 강하게 남잖아요. 아이의 문제를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부모가 헌신적으로 노력해도 자녀가 따라주지 않는 경우를 몇 번 목격하다 보니 누굴 낳아서 키울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하: 어떤 부분이 특히 우려되나요?
민: 자기중심적이고, 누가 말할 때 끼어들고, 밥 먹을 때 예의 없을까 봐…
하: 아이들은 다 그렇지 않아요?
민: 맞아요. 하지만 이런 성향이 두드러지는 아이는 결국 모두를 힘들게 하더라고요. 어딜 가나 내가 관심받아야 하고, 말하고 싶으면 해야 하고, 먹고 싶으면 먹어야 하니까요. 말하다 보니 제가 지나치긴 하네요. 하얀 님 말씀대로 어린아이의 자연스러운 특성인데 왜 자꾸 극단적인 상상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하: 반대로 저는 제 아이가 피해 입는 상상을 하거든요. 딸이다 보니 위험한 상황이나 범죄에 노출될까 봐 걱정이에요.
민: 그렇겠네요. 저는 아들이라 그런지, 우리 사회에서 남자아이들은 원치 않아도 유해한 행동에 노출되기 쉽잖아요. 친구들이랑 놀다가 분위기에 휩쓸려서 본 영상이 불법 촬영물일 수도 있고 남들 따라 뱉은 말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발언일 수 있단 말이에요. 집단 문화가 그러면 혼자 거스르기가 어려우니까 무심코 타인에게 상처를 줄까 봐 신경 쓰여요.
하: 충분히 이해 돼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할 줄도 알고 자기만의 도덕적 기준도 단단해지지 않을까요?
민: 관계망을 여기저기 뻗게끔 도와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믿어주고 기다려줘야겠죠? 특정 집단에만 매몰되지 않게요. 제가 이런 부분에 하도 민감하니까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기도 해요. 잔소리가 많아지면 아이도 지겹잖아요. 훈육도 참 어려운 문제예요.
하: 저는 제 일상부터 주변 사람까지 통제하려는 성향이 있어요.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돼요. 계획이 어긋나면 스트레스받고요. 그러나 아이에게 과도하게 통제를 하면…
민: 삐뚤어지죠.
하: 서로 스트레스만 받을 거 아니에요.
민: 혹은 통제에 지나치게 따르다가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생길 수도. 제가 그랬거든요.
하: 그렇다고 훈육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지 그 선을 모르겠어요.
민: 어쩔 땐 단호하고 어쩔 땐 너그러워야겠죠? 임신 기간 동안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하나도 못 했네요. 이제라도 오은영, 조선미 교수님 책 좀 읽을까 봐요. 벼락치기로.
하: (웃음) 같이 해요. 하지만 그런 이론을 배운다고 내 그릇도 넓어질까요? 나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잖아요.
민: 감정의 문제긴 하죠. 아이가 내 뜻대로 안 될 때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데 전 미쳐버릴 것 같아요. 마음 수련을 해야 하나…
하: 며칠 전 밥 먹다가 펑펑 운 적이 있어요. 갑자기 내가 별거 아닌 사람 같아서.
민: 지금요?
하: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는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민: 이백퍼센트 공감되네요.
하: 저도 모르게 상상 속의 비교 대상을 설정해 놓고 그들과 저 자신을 끊임없이 견주어 봐요. 예를 들어 서울에서 결혼 안 하고 승승장구하는 커리어우먼을 떠올리면 저는 그저 애 키우는 엄마로 보여요. 아이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 알아요. 임신이 축복인 것도, 육아가 대단한 것도 알겠어요. 애 낳는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왜 자꾸 자괴감이 들까요? 지독한 굴레에 빠져버렸어요.
민: 저도 똑같았어요. 임신하고 집에만 누워있으니까 스스로가 굉장히 비생산적이라 느껴지더라고요. 말 그대로 별거 아닌 사람 같고. 어쨌든 커리어는 잠시 중단되는 게 사실이니까요.
저는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큰 사람이거든요. 졸업하자마자 직장 생활을 계속하면서 그 안에서 자아를 죽여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유독 괴로웠어요. 그러다 작년쯤 삶의 방향을 크게 틀고 앞으로는 돈 좀 못 모아도 창작하며 살자고 다짐했죠. 그리고 이것저것 시도한 지 1년도 안 돼서 아이가 생긴 거예요. 이제 막 나를 들여다보고 내 목소리를 발산하기 시작한 시점에요. 겨우 나를 찾았는데 금방 또 놓칠 것 같아서 절망스러웠어요.
다행히 지금은 임신을 주제로 글을 쓰고 하얀 님과 대담도 하는 이 모든 게 자아실현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태어나면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하: 제약이 많아지잖아요.
민: 품이 넓어지고 세계를 바라보는 눈도 확장될 것 같은데 한편으론 되게 수축되겠죠. 물리적인 생활 반경이나 만나는 사람들은 한정되잖아요. 그런 면에선 쪼그라드는 거죠.
하: 발이 묶이는 느낌. 아이를 낳으면 내 삶에 간섭하는 사람도 늘어나잖아요. 초보 엄마한테 잔소리할 게 얼마나 많겠어요. 가깝게는 부모님부터 다른 사람들까지 말을 얹을 텐데 그게 아기에 관한 조언이긴 하지만 결국은 나의 삶에 관여하는 거잖아요. 답답하겠죠.
민: 갑자기 사공이 붙는구나. 내가 원하는 만큼 성장하고 성취하는 게 전보단 확실히 어려워지겠네요. 우리 어떡하죠?
(정적)
하얀: (웃음) 걱정이 끊이질 않네요.
민지: 잘해봐야죠. 같이 힘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