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종종 대화 주제가 출산 괴담으로 빠지곤 했다. 얼마나 아플까, 생리통과 비교가 안 된다는데, 우리 엄마는 나를 20시간 만에 낳았대, 누구는 애 낳을 때 잇몸이 다 망가졌다더라, 요실금도 생긴다잖아, 정말 끔찍하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말풍선을 보며 몸서리치다가도 출산이 내 일이라 받아들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이 없이 살거나 낳더라도 한참 뒤일 거라 믿었고 적어도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할 때쯤이면 나 같은 쫄보도 부쩍 어른이 되어 두둑한 담력을 갖추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은 역시 예측 불허. 해리포터를 보다가 머리 세 개 달린 개가 무섭다고 영화관을 탈출한 어린애는 그대로 몸만 자라 담력도 배포도 없는 임산부가 되었다. 출산만 생각하면 벌써부터 손바닥에 땀이 맺힌다. 정형외과에서 발톱 뽑을 때도 난리를 피웠던 내가 과연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못 하겠다고 울면서 도망치면 어떡하지? 환자복을 입고 병원 복도를 뛰어다니면? 아마 남편이 잡으러 올 거야. 의료진은 혀를 끌끌 차겠지. 병원 역사상 전례 없는 진상 산모로 남을 것만 같다.
오죽 겁에 질렸으면 요즘 내 책상에는 반야심경과 성경이 각종 철학서와 함께 늘어놓여 있다. 얼마 전엔 교회에 다니는 지인 부부의 식사 자리에 어쩌다 합류하게 되어 목사님 앞에서 뜬금없이 두려움을 고백하기도 했다. 친절한 목사님께서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라는 성경 구절과 관련 교리를 아주 진지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어떤 의미인지 이해도 되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싶었으나 내 안에 박혀있는 무신론은 어찌나 뿌리 깊은지. 신이 함께 한다는 말씀이 도통 와닿지 않았다. 하기야 신앙이라는 게 쉽게 생길 리 있나. 목사님께 정말 감사했지만, 안타깝게도 두려움은 조금도 가시질 않았다.
오히려 그 구절은 나로 하여금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게 만들었다. 물론 누구든 곁을 지켜준다면, 비록 초월적인 존재가 아닐지언정 훨씬 위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출산이란 솔직히 혼자 하는 일 아닌가.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의료진과 남편이 옆에서 도와주더라도 순간의 진통을 감내하는 건 결국 산모 본인이다. 산고의 부담은 그 누구와도 나눠질 수 없다. 위험을 감수하고 분만에 뛰어들어 지난한 고통을 견디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 모두 고스란히 내 몫이다. 목사님 말씀과 반대로 두려움 앞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될 것이다. 문득 몇 년 전이 떠올랐다.
임용고사 2차 시험 때였다. 저녁에 먹은 빵이 문제였는지 극도의 긴장감 때문인지 밤새 토하느라 한숨도 못 잔 채 아침을 맞이했다. 필기시험으로 구성된 1차 시험과 달리 2차는 면접과 수업 실연 위주라 한 사람씩 시험장에 들어가는데 내 순서는 맨 뒤 쪽이라 대기실에서 한나절은 기다려야 했다. 텅 빈 책상에서 자다가 깼다가, 멍 때리기를 한참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은 서른 명에서 두 명으로 줄었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옆에 있는 준비실로 들어갔다. 5분 간 답변을 구상하고 복도로 나와 면접관 세 명이 앉아있는 교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주위가 하얗게 지워지면서 찬 바람이 스타킹을 휘감았다. 서늘한 고요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노크를 두 번 하고 문을 여는 순간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오롯이 내 선택과 능력에 달려 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다리가 벌벌 떨리지만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참여자도 목격자도 나 자신뿐인, 잘 되면 내 덕 못 되면 내 탓인 이 시험에서 나는 반드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어떻게든 혼자 이겨내야 한다.
그건 마치 피하고 싶었던 가장 어색한 상대와 엘리베이터에 둘이 남은 기분이었다. 분명 여러 명이 타고 있었는데 어느새 둘만 남겨진. 적막한 공기에 숨소리까지 신경 쓰이는, 괜히 헛기침을 내뱉고 천장을 올려다보지만 도착하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민망한 상황. 나에게 나 자신이란 별로 친하지도 그렇다고 믿음직스럽지도 않은 낯선 존재인데 돌연 그와 정면으로 마주하려니 멋쩍고 당황스러웠다. 이제 와 다른 사람을 찾는들 별 도리가 있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둘이서 손 붙잡고 잘해보는 수밖에. 떨떠름한 감정이 사흘에 걸친 시험 내내 이어졌지만 드르륵 문이 열리고 면접관 앞에 서면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그간 준비했던 걸 차분히 보여줬다.
그때 깨달았다. 두려움을 통과할 땐 누구나 긴밀해진다는 것을. 인간은 공포 앞에서 끈끈해지는 성질이 있다. 아무리 건조한 사람도 두려움에 잠식되는 순간 가족에게, 동료에게, 혹은 신에게 찰싹 들러붙는다. 당시 나는 나를 비집고 새어 나오는 끈끈이를 던질 대상이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덕분에 오랫동안 외면하고 때로는 무시했던 나와 독대했고 우리는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출산 당일 주변은 굉장히 소란스럽고 바쁠 것이다. 남편이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의료진은 수시로 들어오며, 가족들은 내 소식을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그렇지만 끝내 나는 혼자 남아서 삶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를 해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합심할 상대는 나 자신뿐이다. 임용고사 이후로 마주친 적도 없는 나. 쫄보 겁쟁이인 데다 할 줄 아는 건 호들갑밖에 없는 나.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너 내가 시원찮지? 그래도 어쩌냐, 나밖에 없는데. 라며 말을 건네는 나. 우리는 또다시 손을 잡는다. 어마무시한 사건을 겪으며 이번엔 얼마나 긴밀해질까.
어쩌면 출산이란 아기와 동시에 나를 낳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고통이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나를 만나면 바람을 뚫고 뚜벅뚜벅 걸어가 안아줄 것이다. 머리카락이 휘날려도 꾹 버티면서. 집이 부숴지고 차가 날아갈 때까지 한참 동안을. 그렇다면 살면서 한 번은 해볼 만한 일 아닌가. 내멋대로 성경 구절을 다시 써본다. ‘두려워 말라 내가 나와 함께 함이니라.’ 여전히 두려움은 가시질 않지만, 알 수 없는 객기가 찔끔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