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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 Jun 10. 2024

뭐먹살 ep3. 교대 졸업 후 개발자가 되다 [전문]

임용고시 시험장 대신 코딩학원으로 간 그의 이야기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주변에 확실히 성공할 것 같은 사람이 있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번에 부진(익명)의 얘기를 해줄 것이다. 임용고시 1차를 붙었지만 2차 시험장에 가지 않은 남다른 결단력을 가진 그는 그 길로 곧장 코딩을 배워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4년 차에 프론트엔드 팀장이 된 부진이 받는 급여는 나의 두 배. 그런데 중요한 건 그녀의 직함이나 월급이 아니다. 그보다 나는 부진의 태도를 믿는다. 

부진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재테크 공부를 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며 회사에 도착해 일한 뒤에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는다. 저녁은 먹지 않는다. 퇴근 후에는 창업 스터디 멤버와 전자책을 쓰거나 퍼스널 브랜딩, 마켓팅을 연구하고 (요즘엔 독서하며 휴식한다고 한다) 9시쯤 일찍 잠든다. 이 정도면 삼성 그룹 이부진의 삶과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갓생’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부진의 삶과 가치관을 자세히 들어보았다.



이부진 (익명)

서울교육대학교 졸

‘팀노바’에서 프로그래밍 2년 정규 과정 수료

웹 / 앱 제작 회사에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한 지 4년 째

현 프론트엔드 팀장

챗 GPT 관련 전자책 출간 등 각종 사이드 프로젝트 진행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교대 졸업 후 프로그래밍을 공부해 관련 회사에 재직 중인 이부진입니다. 고객사들이 요청하는 웹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을 대신 만들어주는 회사에서 프론트엔드 개발 팀장을 맡고 있어요. 


고등학생 때 부진 씨는 어떤 학생이었어요? 교대를 진학하게 된 이유가 뭐였나요?

참교사 지망생이었어요. (웃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장래 희망 란에 초등교사를 적었습니다.

제가 전라남도의 한 소도시에서 학교를 다녔었는데 아무래도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 가기가 어렵다 보니 수시 위주로 준비해야 했어요. 그때 다니던 국어학원 선생님께서 “대학을 잘 가려면 중3 때부터 방향을 정해야 한다.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중3 겨울방학쯤 급하게 진로를 정했어요. 마침 부모님도 되게 좋아하셨고요. 저희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이라 시험 쳐서 고등학교를 갔는데 저는 일부러 내신 잘 나올 학교를 선택했어요. 설립된 지 얼마 안 됐고, 수학여행을 가면 애가 생겨서 온다는 소문이 있는 학교였죠.


저랑 비슷하네요. 저도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지금 진로를 정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아예 의사랑 변호사 둘 중 고르라고 하셨었어요. 일주일 동안 고민해 오라고. (웃음) 그러다 의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대로 고등학교 3년 내내 의대를 준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 같아요. 진로라는 게 그렇게 쉽게 정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초등교사를 선택한 게 나름 제 의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학생들한테 의지라는 단어가 좀 애매한 것 같아요. 많은 경험을 못 해봤잖아요. 주변 어른과 환경으로부터 주어진 작은 세계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고요. 

근데 대학 입시만 놓고 보면 합리적인 전략이었다고 생각해요.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 가는 게 쉽지 않고, 대치동 또래들을 이기려면 3년 간 일관적으로 스펙을 쌓는 게 유리하니까요.

 

학생 때의 진로 선택에 대해 말하며 부진은 이사야벌린-『자유론』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주변의 조언과 충고로 선택권이 사라지는 순간 그 사람은 무력해진다는 말도 더했다.



대학 입시에선 그렇죠. 근데 장기적으로 볼 땐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천천히 진로를 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교대 외에 다른 대학은 고려하지 않은 건가요?

서울대 교육학과를 준비하긴 했었어요. 근데 그때 ‘서울대 가도 취업 못 한다, 문과는 힘들다.’ 이런 말들을 주변에서 많이 했어요. 돌이켜보면 무게감 없는 말들이었죠. 정작 그 사람들 중에 진짜 서울대 나온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앞에서 인터뷰했던 유담 씨도 주변에서 ‘다른 대학 가봤자 취업 안된다’는 말을 질리게 들으셨다고 해요. 당시 있었던 괴담이었나 봐요. (웃음) 물론 일부는 사실이겠지만요. 대학 생활은 좀 어땠나요?

잘 놀았습니다. (웃음) 고등학교 때 수시로 대학을 가려다 보니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았어요. 수행평가, 중간고사, 기말고사 중에서 하나라도 1등급이 나오지 않으면 낙오가 될 거란 생각이 있었죠. 새벽 등교 시간부터 쉬는 시간, 자기 전까지 계속 공부만 했어요. 그런 삶이 너무 지쳐서 교대 들어가고 나면 얼른 미팅하고 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잘 놀러 다녔습니다. 1학년 1학기 때는 우리 과 뒤에서 3등인가 했어요. 사실 이런 걸 생각했을 때 교대 간 거 후회는 안 합니다. 제가 일반 대학을 갔다면 고등학교 때와 비슷하게 살았을 것 같아요. 완벽주의와 경쟁 심리 속에서 힘들었겠죠.


뒤에서 3등이요? 몰랐네요. (웃음) 그럼 본격적으로 진로 고민을 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처음엔 ‘어떤 교사가 될까?’에 대한 고민을 주로 했어요. 교사 중에서도 전문성을 갖고 싶었고 특히 승진에 대한 관심이 있었죠. 과제나 시험공부는 대충 했는데 학교에서 해주는 외부 특강은 다 챙겨 들었어요. 그래서 장학사, 교장·교감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강연들을 주의 깊게 들었는데요. 이걸 되기 위한 노력과 과정에 대해 알면 알수록 효율이 안 맞는 거예요. 인풋 대비 아웃풋을 생각해 봤을 때 ‘이게 맞나?’하고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전문성이 있는 교사, 소프트웨어 쪽으로 특화된 교사가 되려고 했어요. 4차 산업혁명, AI 관련 특강을 찾아 들었고 관련 강사 님들 연락처도 받아 놓으면서 배경지식을 쭉 쌓아 나갔죠.


학점 공부보다 더 의미 있는 공부를 하셨는데요? 전 그런 특강들이 있는 줄도 몰랐네요. 그래도 그때는 고민의 범위가 교사 내에서 한정되었던 것 같은데, 프로그래머까지 선택지를 넓히게 된 건 언제였나요?

3학년 1학기 때였어요. 오래 사귀던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생각이 끝없이 깊어지더라고요. 처음엔 직업보다도 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졸업하고 나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데 의식주 중에 ‘주’에 대한 위기감이 들었달까요? 

제가 실습 가면 만나는 선생님들께 매번 여쭤봤거든요. “월급이 얼마세요?”, “얼마나 일하면 월급이 올라요?”, “문제집 쓰면 돈 얼마나 더 벌 수 있나요?”, “몇 살 때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나요?”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하나씩 알아보는데 아무리 계산을 두드려봐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거예요. 연금 개혁이 됐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요.

 

부진씨 진짜 빨랐네요? 보통 발령 나고 서울에 집 구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인데요. 그러고 보니 부진 씨가 쉬는 시간에 교수님께 “돈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여쭤봤던 것도 생각이 나요.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어요. 그러다 제가 느낀 게 있어요. 초등교사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서울에서 중산층, 즉 아이들 학원 보내고 외식 자주 하고 집 있고 차 있는 정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첫째로 남편을 잘 만나거나 혹은 둘째로 집안이 원래 유복해야 한다는 걸요.


맞는 말이네요? 저는 그걸 이제야 깨달아 버렸어요.

아니면 전문성을 확실히 갖춰서 강의를 다니거나 책을 쓰는 방법도 있기는 해요. 그래서 소프트웨어 전문 교사가 되려고 했던 거고요. 

근데 어쨌든 ‘발을 잘못 들였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교대에서 배운 것들은 다른 곳에 써먹기 어렵다는 무력감에 갇히기 시작했어요. 고3 때 이화여대 초등교육과도 붙었었는데 거길 안 간 게 그렇게 후회되더라고요. 이대 초등교육과는 복수전공도 가능하니까요. 

그렇게 사춘기가 늦은 나이에 찾아왔어요. 저 자신을 부정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3학년 2학기가 팀플이 가장 많은 시기잖아요. 그땐 팀플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 제 상태가 드러날까 두렵고, 뭔가를 얘기하면 그걸로 제가 평가받을 것 같아서요.


슬럼프였군요. 제가 옆에 있으면서도 못 챙겨준 것 같아 미안하네요. 

근데 그 시기를 통해서 엄청난 정신적 성장을 이뤘어요. 그래서 저는 그 이후로 새로운 사람을 알아갈 때마다 인생에서 제일 힘든 순간이 있었는지 물어봐요. 누구나 이런 시기를 겪을 수 있거든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극복하는지가 그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같아요.


그런 큰 고민 이후에도 다시 임용고시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솔직히 그냥 휩쓸려 갔어요. 3학년 2학기 때부터 스터디 그룹을 만드는데, 어디든 속해야 하니까 얼른 정하고 스터디원들이 짜놓은 계획을 따라하는 정도로 공부를 했어요.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알량한 책임감은 있었으니까요. 근데 사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어요. 스터디 외의 남는 시간에는 코딩 쪽 진로를 알아봤습니다. 


코딩 쪽을 알아본 건 앞서 말한 소프트웨어 전문 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건가요?

그렇죠. 그리고 교대에서 하는 기본적인 코딩 수업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관련 유튜브 영상도 꾸준히 찾아보고 있었고요.


교대에서 하는 엔트리, 스크래치 수업이요? 저는 정말 힘들었는데요. (웃음)

그러니까요. 동기들은 싫어하더라고요. 상대적인 건데 저는 재밌고 좋아하니까 오히려 이게 적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용고시 1차를 붙었음에도 2차 시험을 보지 않았어요. 저한테 와서 2차 스터디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간식을 나눠줬던 게 생각납니다. 어떻게 그런 큰 결심을 했나요?

1차 시험 끝나고 일주일 정도 쉬잖아요. 그때 학교 근처 국립중앙도서관에 매일 갔어요. 가서 소프트웨어 관련 책을 읽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하다가 2차 준비를 시작했는데요. 

마음이 없으니까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2차는 면접이라 교육에 대한 열정이나 조직에서의 순응적인 태도가 드러나야 하잖아요. 동기들은 다 준비가 되어있는데 저는 마음부터 없으니까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1차 시험 점수가 1배수에서 1.5배수 사이였는데 이러면 면접을 남들보다 잘해야 붙는 거거든요. 근데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부모님께 코딩 쪽 진로에 대해 말씀드렸을 때 저를 이해해 보려고 하시기보다는 빨리 달래고 교사를 시키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임용고시를 붙으면 그땐 더더욱 다른 진로를 모색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4년간, 혹은 고등학교 때부터 오랫동안 준비했던 직업인데 내려놓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두려움이나 불안은 없었나요? 

두려웠고 불안했지만 교직이 저한테 절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 버려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효율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일에 몰입할 수 있거든요. 공무원 자체가 저랑 안 맞아요. 


진로 고민 시기 부진이 찾아봤던 논문 목록

부모님 반응은 어떠셨나요?

기숙사 짐 빼고 전남 본가로 내려갔을 때 부모님께서는 임용고시 재수하라고 하셨어요. 코딩 학원 지원해 줄 생각도 없고, 독립하라고. 아버지께서 “네가 이때까지 보인 성취가 있긴 하냐, 너의 뭘 믿고 새로운 시도를 지원해 주겠냐.”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상처받으셨겠는데요. 제가 보기에 부진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열심히 사셨는데∙∙∙.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죠. 제가 진짜 코딩을 하고 싶었으면 대학교 때부터 준비를 했거나 알바를 해서 돈을 모으는 방법도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아버지께서는 당신을 설득할 자료를 가져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보고서를 준비해 갔는데 아버지께서 “너는 보고서의 보자도 모른다.”라고 하시면서 빨간 줄 찍찍 그으시고 첨삭을 해주셨어요. (웃음)


진로 바꾸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보고서엔 어떤 내용을 썼어요?

첫 페이지에 1안, 2안, 3안을 표 형식으로 넣었어요. 각각 프로그래머가 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썼고요. 그중 3안은 부모님께 지원 안 받고 제가 기간제 교사로 일해서 모으는 돈으로 학원에 다니는 방법이었어요.

총 16페이지인데 제가 식사를 어떻게 할 건지부터 식비, 교통비, 생활비, 주거비 등을 계산해서 자료로 넣어놓고 프로그래머 혹은 교사가 됐을 때 예상되는 각각의 평균 연봉도 그래프로 첨부했어요. 

근데 아버지께서 계속 수정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10번 넘게 컨펌을 받았어요. 계속하다 보니까 결국엔 답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는 판단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서울 올라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아무리 설득해도 의미 없는 것 아닌가요, 서울 올라가서 제가 돈 벌어서 스스로 할게요.”라고 말씀드린 뒤에 임용고시 때 갖고 있던 프린터, 스캐너, 아이패드 등을 팔아서 350만원을 마련했어요. 그 돈으로 바로 서울 어느 셰어하우스에 들어갔죠.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부진이 썼던 인생 계획서 일부


부진 씨도, 아버님도 대단하시네요. 제가 부진 씨였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저한테 실망했다고 하셨는데 사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를 좀 믿어주고 이해해 주셨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근데 막상 공부 시작한 이후로는 갈등이 별로 없었어요. 처음에 제가 구한 셰어하우스가 치안이 안 좋아서, 부모님께서 올라와 보시더니 방도 바꿔 주시고 다른 지원도 해주셨죠. 나중에 첫 월급 타고 제가 선물도 드렸고요. 


지난한 과정이었네요. 코딩을 배웠던 학원은 어디였나요?

*팀노바라는 업체고요. 1년 반에서 2년 정도 매일 12시간씩 공부해서 비전공자도 개발자가 될 수 있는 학원입니다. 근데 제가 다양한 곳을 알아보고 정한 건 아니고 이곳에서 제작하는 영상들에 설득이 된 거라 다른 학원 다니셔도 돼요.

*team nova (https://teamnova.co.kr/


교육비는 얼마나 들었나요?

2천만원 정도요. 내부 알바를 해서 장학금을 받긴 했는데 일반적으로는 그 정도가 필요해요.

*2024년 5월 기준 팀노바 풀 커리큘럼은 선불제로 결제했을 때 전액 1780만원에서 2020만원이 든다.

*부진은 학원 내 영상 제작 아르바이트를 통해 천만원 정도의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힘들게 시작한 공부인데, 학원에서 보낸 2년은 어땠나요?

당시엔 제 삶에 이거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어요. 저는 내재된 재능도 물론 필요하지만 노력과 마음가짐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을 믿거든요. 힘들긴 했는데 사실 교대생들은 엉덩이 힘이라는 게 있잖아요.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겠지만 언젠간 할 수 있다, 나는 무조건 성공할 거다.’라는 마음으로 버텼어요.


덕분에 지금 잘 나가는 프로그래머가 되셨죠. 비전공자인 부진씨가 필드에 나와서 이렇게 잘 적응하고 성과를 내는 걸 보면 단순한 학원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커리큘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나요?

크게 세 단계로 나뉘어져 있어요. 기초 / 응용1 / 응용2.

기초 단계에서는 자바, 안드로이드, PHP 등을 배우며 웹 개발과 앱 개발의 기초 기능을 실습해요. 프로그래밍은 크게 프론트랑 백으로 나뉘는데요. 간략하게 설명하면 프론트는 화면 및 디자인이고 백은 그 안의 데이터, 서버예요. 기초 과정을 마치면 프론트엔드랑 백엔드를 둘 다 할 수 있어요.

그 다음 응용 1단계에서는 나만의 작품 만들기와 대회 참가하기를 하는데요. 저는 책을 읽고 기록하는 ‘리드윗미’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어요. 인스타그램 독서버전 같은 앱이에요. 그리고 부동산 공매 데이터로 서비스를 만드는 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딥페이크 경진대회도 갔었는데 거기선 순위권 안에 못 들었지만 여러 AI 툴들을 익힐 수 있었고요.

마지막 응용 2단계는 창업과 논문 중에 선택하는 건데 전 창업 과정을 선택했어요. 앞에서 했던 부동산 공매 서비스를 디벨롭해서 출시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거기서 했던 결과물들이 취직으로 이어진 건가요?

네. 덕분에 신입이 아니라 경력자로 취직을 할 수 있었어요. 저기서 했던 걸 포트폴리오로 만들어서 600개 정도의 회사들에 지원했고, 서른 번 이상 면접을 봤어요. 운이 좋게도 열 군데 정도에서 오퍼가 왔습니다. 그중에서 급여를 가장 많이 주는 지금 회사로 선택했고요.


당시 제작했던 어플리케이션 


조심스럽지만 급여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제 월급의 몇 배죠?

두 배 이상입니다. (웃음)


정말 탁월하시군요. (웃음) 급여 외에도 지금 회사의 장점이 있다면 뭘까요?

일단 강남에 있어서 출퇴근이 편하고, 10시 출근 6시 반 퇴근이에요. 처음엔 대표님 포함 네 명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직원 열한 명을 둔 회사로 성장했어요.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원래는 저 한 명이었는데 지금은 네 분 더 들어왔고요. 


작지만 성장세가 빠른 회사군요. 부진 씨는 개발자로서 어떤 부분에 특화되어 있나요? 인정받고 승진하는 비결이 궁금해요.

우선 이전 학원에서 웹 개발, 앱 개발, 창업까지 해봤기 때문에 이것저것 잘했던 것 같아요. 초기에는 회사에 사람이 없어서 대표님께서 그 점을 좋게 봐주셨고요. 

또 제가 개발자 중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꽤 좋은 편이에요. 고객사에 질문하고, 협상하고, 회사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상황을 만들어가는 걸 잘합니다.


괜히 제가 다 자랑스럽네요. 그럼 개발자라는 직업의 좋은 점은 뭔가요?

잘하는 만큼 잘 법니다. 그리고 능력만 되면 어느 정도 선택권을 가질 수 있어요. 갑, 을의 관계가 아니라서 좋아요.


반면에 개발자로서 겪는 어려움이나 애환이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승진할수록 시간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이에요. 그만큼 보수를 주긴 하지만, 팀장이 되면 관리할 게 많아지고 주변의 기대가 높아져요. 

그리고 개발자라기보단 직장인으로서 보편적인 고민을 자주 하는데요. 직장을 다니는 것 자체가 나의 시간을 빼서 고용주에게 바치는 거잖아요. 저는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서, 요즘엔 내가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어요.


부진 씨 하면 자본주의를 빼놓을 수 없죠. 부진 씨가 정의하는 자본주의는 뭔가요?

정의하긴 어렵지만, 떠오르는 대로 말해볼게요. 자본주의에서는 고용자가 고용주에게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고용주가 되면 노동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살 수가 있어요. 그게 흔히 말하는 경제적 자유죠. 저도 그걸 위해서 계속 준비하고 있어요.

경제적 자유는 곧 시간적 자유와 연결된다.  부진은  타라 웨스트 오버-『배움의 발견』을 소개했다.


저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인상 깊게 읽긴 했어요. 부진 씨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대학생 때부터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제가 팀노바 응용 2단계에서 창업을 선택했다고 했잖아요. 그때 팀장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자본주의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는데 그분의 생각이나 태도를 보고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직무 관련해서도 배웠지만 정신적으로도 크게 성장했어요.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했던 시도들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막 회사 다니기 시작했을 때 대학 축제에서 타투 스티커를 판 적이 있어요. 제가 샌님으로 자라서 뭔가 장사를 해본 경험은 없었거든요. 날 좀 내려놓고 아쉬운 소리도 하고, 부딪혀 보고 싶더라고요. 같은 회사 디자이너님을 꼬셔서 다짜고짜 대학 축제에 갔어요. 퇴근하고 지하철역에서 화장 급하게 하고, 간이 책상이랑 물티슈 사서 타투 스티커를 팔았죠. 사실 인건비 생각하면 돈 번 것도 아니지만 재미있었어요.

그 이후엔 저녁마다 창업 스터디를 해서 챗GPT 관련 전자책을 출판하기도 했고요, 마케팅이랑 브랜딩을 공부해서 운동 관련 제품을 팔아보려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어요.


인스타그램 봤어요. 팔로워가 천 명이 넘던데요.

그건 누구나 가능해요. 책에서 나오는 대로 하면 되더라고요. 나중엔 제 제품을 브랜드화해서 팔고 싶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근데 제가 운동 좋아하고 매일 하니까, 운동 관련 제품을 팔면 효율적이잖아요. 일단 주변에 사람부터 모을 생각으로 인스타그램을 키웠었어요.


대단한데요. 시간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단순한 일과인데, 보통 아침 5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요. 아침에 운동하고, 책 읽고, 공부하고 출근합니다. 깨었을 때 또렷한 정신력을 회사에 쓰기가 아깝더라고요. 그리고 퇴근하면 창업 준비하거나 휴식하고 8시~9시쯤 잠들어요.

부진이 사용하는 스케줄러. 시간을 블록 단위로 설정해 계획한다.


전 퇴근하면 지쳐 쓰러지는데, 요즘 유행하는 ‘갓생’을 살고 계시네요.

근데 저도 교사였다면 이렇게 못 했을 거예요. 교사들은 매시간 매분 말하는 직업이고, 연기일지라도 학생들에게 화를 내야 되잖아요. 그게 정말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에요. 저도 교생실습 할 때는 집에 오면 뻗어버렸어요.  

프로그래머는 앉아서 컴퓨터랑 일하면 되거든요. 퇴근하면 바로 오프고요. 물론 지금도 미팅이 많거나 말을 많이 하는 날은 기가 빨리긴 하지만 교사만큼은 아니에요.

교사가 퇴근 시간이 빨라도 수치화되지 않는 정신력, 에너지 소모가 큰일이에요. 일반적인 직업보다 기대치가 높고, 엮여있는 관계들도 있고. 퇴근하고 완전히 딱 끊어내기도 어렵고요. 


새로운 관점이네요. 저는 ‘남들이 다 꿀직업이라고 하는데, 퇴근하고 나면 왜 이렇게 지칠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데 왜 나는 곧장 뻗어버릴까?’ 싶었거든요. 제가 저질 체력이라 그런 거라고 자책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교사라는 직업이 감정적, 체력적 소모가 유난히 큰 걸 수도 있겠네요. 

그럼요. 교생실습 때나 코딩 학원 다닐 때랑 비교하면 지금 회사는 퇴근 후에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남아요. 그래서 이 시간을 활용해 개인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부진 씨만의 힐링 방법은 뭔가요?

무조건 운동이요. 오늘도 수영을 다녀왔답니다. 수영, 헬스, 러닝을 하는데 하고 나면 에너지가 채워져요. 생각도 비워지고요. 아침에 운동하고 나면 그날 하루가 뿌듯해져요. 책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것도 힐링이고요.

그리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해요. 제가 독서 모임에서 만난 언니들이 있는데 그 언니들이랑 얘기 나누는 것 자체만으로 치유가 돼요. 삶의 방향이나 고민하는 지점이 비슷하고, 배울 점도 많아요. 

저는 관계에 대한 욕망도 크거든요. 우정을 중요시하고요. 경제적 자유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주변 사람들이기도 해요. 소중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필요할 때 그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거든요.


주변 사람들을 위해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 맞네요. 연예인 서장훈도 돈 많으니까 좋은 점이 주변에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되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럼 부진 씨의 목표는 경제적 자유인가요?

우선 부동산 취득이 목표였는데, 이번에 미분양 아파트 청약이 되어서 그건 이뤘고요. 급여를 더 주는 회사가 있다면 이직하고 싶기도 해요.

근데 좋은 동반자를 찾는 것도 저의 중요한 목표예요. 동반자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과 관계를 잘 쌓아가고 싶어요. 


결혼 생각이 있나요?

그럼요. 아이도 낳고 싶어요.


개발자를 하면서 임신, 출산,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이 많이 있나요?

잘은 모르는데 제가 아는 분 중에 AI 전문가가 계세요. 스타트업 회사에 그분 이름이 얹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투자 가치가 올라가는 그런 분이세요. 그분은 육아 휴직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더라고요.


대체될 수 없는 인력이 되면 되겠군요. 본인도 그렇게 될 생각이 있나요?

글쎄요. 슈퍼 노동자가 되는 것보단 자본력을 갖추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딘가에 기대기 싫거든요. 회사도 그렇고, 정부 복지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사들 연금 개혁된 것처럼.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능력 있는 개발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시터를 맘껏 쓸 수 있는 자본력을 먼저 갖추고 싶어요. 육아에는 많은 부분이 있지만 그중 단순노동도 있잖아요. 빨래나 설거지 같은 것. 그런 걸 최대한 외부에 맡기고 싶어요. 저는 지금도 ‘런드리고’ 잘 쓰거든요.


초등교사 커뮤니티를 보면 개발자로 이직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이직 선배로서 꿀팁 하나만 알려주실 수 있나요?

우선 개발 공부는 우리가 했던 공부랑 굉장히 달라요. 제가 개발 배우면서 “님이 공부는 잘했을지 몰라도 개발은 달라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요. 문제 해결 방법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공부는 진짜 일부일 뿐이에요. 개발에서는 문제를 풀어야지, 학자처럼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면 안 되거든요. 제가 자주 했던 실수예요. a라는 일을 시키면 a’를 공부하고 있으면서 그걸 자각하지도 못했죠. 사실 a’를 외우고 파헤치는 건 아웃풋도 아니고 성과도 아니거든요. 

그리고 문제 해결보다, 문제 정의가 더 중요해요. 개발할 때 뭔가 잘 안 풀리면 문제를 한 줄로 정의해서 써보세요. 막상 쓰고 나면 큰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문제 해결 프로세스가 잘못됐을 수도 있고요. 

요약하자면 ‘공부보다 문제 정의가 더 중요하다, 효율적인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찾아라, 앉아서 학문하듯이 파고 있지 말고 뭐든 부딪혀보고 실행해 봐라’ 이 정도로 말할게요.


그럼 이제 공통적인 질문을 하면서 마무리할게요. 교대나 교사가 안 맞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떠나라! (웃음)

대학 입시나 임용고시를 견뎠던 사람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어떤 걸 하든지 행복한 순간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결실을 얻기까지 인내심이 필요한데 교대생들은 이미 그걸 갖고 있어요. 근데 너무 참기만 하지 말고, 다양한 생각도 해보고 이것저것 시도하고 중간 방향을 조정해 보세요. 그럼 나중에 나 자신한테 후회할 일 없이 더 나은 내 모습으로 성장할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를 믿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은 넓고 별별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팀노바 들어갔을 때도 거기에 은행원, 직장인 등 다양한 분들이 있었어요. 저는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막내였고요. 지금도 독서 모임이나 부동산 스터디 같은 데를 가면 제가 막내거든요. 교대생들이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그렇지 막상 사회에 나오면 나이가 많은 게 아니에요. 내가 뭘 원하는지를 고민해 보고, ‘이걸 감히 내가?’라는 생각이 아니라 ‘이건 포기 못 하겠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해 보세요.




부진에게는 세 번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다. 대학생 때 부진은 쾌활하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인싸’였다. 노는 것도 좋아했고, 주변 친구들에게 많이 맞춰주는 스타일이었는데 3학년 때 늦깎이 사춘기를 겪으며 내적인 고민과 자아 탐구를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차분해진 부진은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어울리는 걸 선호하고, 인생의 방향을 치열하게 모색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코딩학원에서 들었던 자본주의 강의. 원래도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지만 팀장님의 강의를 들으며 일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게 동력이 되어 취업 후 부진은 대학 축제에서 장사도 해보고, 저녁마다 스타트업 창업을 연구하고, 전자책을 출판하는 등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식과 부동산에도 계속 관심을 둬 얼마 전에는 수도권 작은 아파트도 매입했다. 

세 번째 터닝포인트는 독서 모임에서 만난 언니들이다. 언니들과 대화하고 관계를 쌓아나가며 부진은 본인 안에 있던 관계에 대한 욕망을 자각했다. 마냥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주던 대학생 때와 경제적 자유를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사회초년생 시기에서 나아가 요즘 부진은 목표지향적인 ‘갓생’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현생’ 사이 적절한 중간 지점을 찾는 중이다.


졸업 후 반년에 한 번씩은 부진과 만났다. 볼 때마다 그녀는 훌쩍 성장해 있고 각종 사이드 프로젝트를 게임 퀘스트처럼 깨서 나에게 보여줬다. 굉장한 자극이 됐지만 부진이 사는 삶의 방식을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나와는 다른 사람이야.’ 하고 거리를 두곤 했다. ‘나는 체력이 안 돼, 나는 저만큼 야망이 크지 않아.’라며 나름의 자기합리화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부진이 나와 그렇게 다른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녀는 엄청난 체력을 가졌거나 비범한 사람이 아니라 일관적이고 효율적인 사람이었다. 사실 그도 교생 실습 때는 집에 오면 바로 뻗었고, 말 많이 하면 지쳐서 쉬어야 하고, 스트레스받으면 몸이 아픈 사람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슈퍼맨같이 초인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부진은 자신한테 어떤 루틴과 환경이 최적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최상의 것을 찾아내고 유연하게 또 우직하게 그걸 실천해 왔다. 교사라는 직업이 기가 많이 빨리는 걸 알아채고 프로그래머를 선택하거나, 아침에 정신력이 가장 또렷한 걸 자각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공모주를 공부하는 등 자신한테 맞는 최선의 효율을 찾아서 꾸준히 유지했다.

김진영 다큐 에세이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나는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를 성장하게 돕는 환경은 어디일까? 나를 건강하게 해주는 루틴은 무엇일까? 부진은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이 있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이걸 찾으면 지금보다 쉽게 생산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더 나은 환경과 루틴이 이직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거라면 이 또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부진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내 응원 아니어도 이 친구는 성공하고 잘될 거지만. 그래도 팬처럼 지켜보려고 한다.

언젠가 멋들어진 스타트업 대표되면 나 그 건물 청소부라도 시켜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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