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열심히 하다보면 다 연결되더라고요."
다음 인터뷰이를 찾던 중 아는 후배의 소개로 희희의 SNS를 발견했다. 그동안의 작업물을 보자마자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독립 출판 자체에도 눈이 갔지만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인상 깊었다.
희희는 부임하자마자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간절히 꿈꿔온 교직에 들어섰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매일 실망했고, 매 순간 전전긍긍했으며, 이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렸다.
문득 그녀는 이러한 고초가 교직이라는 직업적 특수성에서 오는 건지, 사회 초년생이라는 생애주기에서 오는 건지 궁금해졌다. 곧 다양한 직업을 가진 동갑내기 아홉 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고 이는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책에는 엔지니어, 바리스타, 아나운서 등 여러 청춘의 꿈과 애환이 담겨있다. 다채로운 내용 사이 통일감이 느껴진 건 그것들을 하나의 메시지로 엮어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위로’였다. 책에는 희희 만의 따뜻한 시선과 위로가 있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위로가 필요했을 순간, 그녀는 오히려 타인에게 위로를 건넸다.
인터뷰 섭외 과정에서 희희는 아직 뚜렷한 직업이 없어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망설였지만 나에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교직을 내려놨는지, 어디서 온 힘으로 책을 썼는지 듣고 싶었다.
희희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2023년 3월 발령, 1년 후 의원면직
브런치 스토리 『 쉿, 선생님이 사람 되는 중 』 연재
인터뷰집 『 스물넷, 찬란한 처음 』 출간
인터뷰집 『스물넷, 찬란한 처음』 독립출판
좋아서 시작한 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희희(가명)입니다. 서울교대 졸업 후 초등교사로 일하다가 올해 3월 의원면직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해 최근 『스물넷, 찬란한 처음』이라는 인터뷰집을 출간했습니다. 요즘엔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강연도 다니며 바쁘게 살고 있어요.
희희 님 책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셀프 인터뷰'가 인상 깊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쭉 교사를 꿈꿔오셨더라고요.
누굴 가르쳐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공무원, 안정성... 이런 조건을 제외하고도 그냥 가르치는 게 좋아서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저한테 권유를 하신 적도 없었고요.
교대에 입학했을 때 꿈에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었겠네요.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제가 꿈꾸던 학교에 들어온 거기 때문에 재미있게 다녔어요. 강의에서 배우는 게 나중에 선생님이 되는 데 다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했고요. 교생실습 가서도 되게 좋았어요.근데 학교 특성상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 기회가 없다는 건 아쉬웠어요.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밖 외부 활동을 찾아서 많이 참여했어요. 난치병 아이들 소원 들어주는 봉사활동도 하고, 중고등학생들에게 전공 강연해 주는 활동도 했고요.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홍보하는 대회에 나가기도 했어요.
다채로운 대학 생활을 보내셨네요. 임용고시 준비할 때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없었나요?
네. 공부하느라 바쁘고 힘들긴 했지만, 교직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정말 진심이었네요. 그렇게 시작한 일은 어땠나요? 처음 교실에 들어섰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기대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교사라는 직업이 수업 개발 열심히 하고, 학생들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프로젝트 수업을 좋아하니까 학생들하고 그런 걸 하는 게 기대됐죠.
내 탓만 하던 신규 교사
그런데 하필 첫해부터 고생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브런치 글을 읽어봤는데, 당시 글 중에 ‘학교 가는 게 죽기보다 두렵고 잠을 자다가도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매일 매일 사건이 생겼어요. 그것 때문에 야근하고,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학부모와 통화하고 상담하는 나날이 계속 반복됐고요. 나중엔 우울감이 심해지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생각부터 하면서 출근했어요. 쉬는 시간에도 마음 놓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화장실도 못 가고, 점심 식사 후에도 바로 올라와서 계속 학생들을 보고 있어야 했죠.
누구보다 기대가 컸기에 더 힘드셨을 것 같아요.
네. 교사라는 직업이 제가 너무 좋아하고 원했던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더 힘들었어요. 온종일 학생들은 싸우고, 저는 데려와서 혼내고, 혼내면서도 학부모 민원 들어오까 봐 걱정하고… 예상했던 거와 다른 데에서 오는 괴리 때문에 버거웠던 것 같아요. 다 제 탓 같아서 자책도 많이 했어요.
슬프네요. 힘드신 와중에도 브런치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나의 모든 것을 다해보려고 한다.’라고 쓰셨던데요.
어쨌든 첫해이기도 했고, 제가 아이들 관리를 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학급경영이나 학생상담 같은 걸 더 공부하고 나면 다시 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때 연수도 찾아서 듣고 그랬어요.
애쓰셨네요. 그럼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작년에 서이초 사건이 터지고 바로 여름방학이 시작됐잖아요. 사실 초반에는 슬프고 화가 나는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근데 집회를 다니면서 의원면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저는 그동안 제 탓만 했었는데 집회에 가고 나서 처음으로 시스템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공감해요. 저도 제 탓을 많이 했어요. 학생들이 예의 없는 행동을 하면 '내가 못 해서 이러나?' 싶었고요. 지금도 교실에서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다 제 잘못 같아요. 근데 저도 작년에 너무 내 탓만 해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교사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지금 학교 상황에는 시스템 문제도 확실히 있거든요.
네. 물론 이런 와중에도 자기 역량을 발휘해서 아이들을 잘 지도하는 선생님이 많이 계세요. 근데 점점 제 적성에도 교직이 안 맞는 것 같은 거예요. 저는 카리스마 있는 성격이 아니니까 매시간 목이 쉬어라 잔소리만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내 고민했어요.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달라졌죠. 어느 날은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가도 어느 날은 더 이상 못 하겠더라고요.그리고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교사를 하면서도 해외 파견도 가고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고 싶었죠. 근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뭘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지쳐버리니까요.
그러다가 주변 친구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일을 하고 있더라도, 혹은 아직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다들 열심히, 잘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그만둬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는?
저도 교사를 하면서 퇴근하고 뭘 많이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지금도 제가 뭔가를 시도하려 할 때 주변에서 “그건 퇴근하고 취미로 해.”라는 말을 하는데요. 사실 겸직 제한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죠.
네. 이것저것 하고 싶어도 제약이 많아요. 저는 교직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안정적이고, 방학도 있고, 아이들한테서 오는 보람도 있잖아요. 특히 안정성에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죠. 육아나 출산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고요.
근데 저는 그런 게 중요한 사람이 전혀 아니거든요. 제가 좇는 가치가 아니에요. 저는 지금도 가치 검사를 하면 재미 100%를 찍는 사람이거든요. 재미를 위해서 살아온 사람이에요. 단지 가르치는 게 좋아서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가르치는 건 나가서도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2, 3년 후에 이 일에 익숙해지고 결혼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그냥 학교에 계속 다닐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그만둘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지금이 적기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 직업의 장점 중에 안정성이 꽤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희희 님께서 여기에 비중을 두지 않으신다면 동기 부여가 잘 안될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육아와 일의 병행이 가능하다는 것도 교직이 가진 메리트인데요. 이것도 희희 님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거리가 있나요?
저도 학교에서 육아시간, 육아휴직 쓰는 분들 보니까 그게 진짜 큰 장점이더라고요. 제가 그만둔다고 할 때 주변 선생님들께서도 결혼 후에는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뀐다고 말씀하셨고요. 나이가 들면 이 직업이 좋다는 얘기를 하셨고 저도 그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해요.
근데 저희가 그것만 보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만약에 일하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더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물론 그건 업계의 문제고, 고쳐야겠지만,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직 안 겪어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죠. 너무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근데 어쨌든 미래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현재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되잖아요.
그렇죠. 저도 ‘5, 60대 때는 교사만 한 직업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근데 '미래만 보고 살 수는 없다', 맞는 말이네요. 육아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도 아니고요. 그리고 안정성이라는 게요. 작년에 문득 여기 계속 있어도 불안정하고,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익숙함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맞아요. 나가서도 후회할 거고 여기 계속 있어도 후회할 거면 그냥 나가서 경험치라도 쌓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교대 나오면 어쨌든 자격증이 있잖아요. 물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는 건 아니에요.
결국 희희님이 추구하는 가치를 따라 의원면직하신 거군요. 그 가치가 재미 백 퍼센트라니, 희희 님은 뭘 할 때 재미를 느끼시나요?
저는 뭔가를 기획하고 확 몰입해서 해내는 걸 되게 좋아해요. 제가 막 빠져들어서 하는 게 재밌어요. 대학생 때 대외 활동도 다 재밌었고요. 학교에서 담당 업무가 학생 자치였는데 사실 저는 그 일할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애들이랑 뭘 같이 기획하고 만드는 게 재밌더라고요. 근데 담임의 기본적인 업무는 애들을 관리하는 거잖아요. 자치는 학교 일의 일부고요.
그렇죠. 특히 초등교사는 아까 얘기하신 생활 지도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죠. 그만둘 때 부모님 반응은 어떠셨나요?
처음엔 엄청나게 반대하셨어요. 어쨌든 1년밖에 안 됐으니까 좀 더 고민해 보라고, 아니면 휴직하라고 하셨어요. 쉬면서 하고 싶은 거 하라고요. 근데 저는 쉬고 싶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었어요. 교사하면서 힘든 것도 큰 이유였지만 이것저것 다양한 걸 해보고 싶은데 제약이 많으니까 그만두려고 했던 거죠. 그게 1년 쉬고 돌아온다고 달라지진 않잖아요. 그래서 그냥 그만두고 자유롭게 원하는 거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부모님 반대 때문에 스트레스받진 않으셨나요?
저는 고집이 세서요(웃음). 죄송한 마음이 있긴 했는데 어쨌든 제 인생이잖아요. 지금은 그만둔 후에도 제가 뭔가를 계속하니까 괜찮다고 하세요. 오히려 보기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사회초년생을 인터뷰하다 인터뷰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아나운서, 배우, 엔지니어 등 다양한 직종의 친구를 인터뷰한 게 흥미롭더라고요.
당시에 제가 교사라서 힘든 건지, 사회 초년생이라서 힘든 건지 궁금했어요. 다른 직업을 가진 또래 친구들과 깊은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고요. 보통 서로 다른 일 하는 친구끼리 얘기하면 어느 정도 선까지밖에 말을 못 하잖아요. 그래서 인터뷰를 핑계 삼아 깊은 고민을 들어보고 싶었죠. 2학기 때 시작해서 일주일에 한두 명씩 인터뷰했어요. 그게 퇴근 후에 낙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생각할 거리를 주니까.
일과 병행했다고요? 대단한데요.
하면서 오히려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같은 나이여도 각자의 속도가 있고, 저마다 힘든 게 있다는 걸 깨달았죠. 처음엔 취미처럼 브런치에 올리다가 나중에 책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출간하는 과정에서 인디자인도 직접 하고, 인스타그램 릴스로 홍보도 하고, 텀블벅 펀딩도 여러 구성을 만들어 진행하셨더라고요. 이런 건 다 어떻게 배우신 거예요?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고 인터넷 보면서 조금씩 따라 했어요. 다른 독립 출판을 찾아보며 참고하기도 했고요.
어떻게 보면 글쓰기부터 마케팅, 디자인까지 혼자 다 하신 거잖아요. 그럼에도 완성도가 높더라고요. 책을 낸 소감은 어떠세요? 독자 리뷰가 무척 감동적이던데요.
저도 리뷰를 볼 때마다 책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인디펍이라고 독립 서적을 판매하는 플랫폼에서 제 책으로 서포터즈를 운영했는데요. 거기 이용자가 주로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이에요. 그러다 보니 제 책이 우연히 제가 원하는 독자층에게 가게 됐어요. '위로받았다.', '책에 나오는 문장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같은 리뷰를 보면 엄청 보람차요. 한 명에게라도 제대로 가닿았으면 이 책의 목적은 다한 거라고 생각해요. 힘들었지만 만들길 잘했죠.
북토크도 자주 다니시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네. 제가 찾아서 가는 것도 있고 제안이 온 경우도 있어요. 한번은 사회 초년생 북토크를 했는데 어떤 독자분께서 우신 적이 있어요. 저는 북토크 할 때 저 혼자 말하지 않고, 같이 책을 읽고 질문을 뽑아서 각자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데요. 아마 “지금 불안한 게 무엇인가요?” 아니면 “마음에 안 드는 결과를 과정의 일부로 바꾼 적이 있나요?” 이런 질문이었을 거예요. 여기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한 분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때 ‘이런 책을 만들고 나누는 게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되는구나. 진짜 하길 잘했다.’ 싶었어요. 되게 좋은 경험이었죠.
구성을 잘하셨네요. 좋은 콘텐츠가 되려면 독자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놔야 한다는 거죠. 희희 님 께서 그걸 잘하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책을 내실 계획이 있나요?
제 책이 『스물넷, 찬란한 처음』이잖아요. 원래는 시리즈로 내는 걸 의도했었어요. 근데 만들고 보니까 생각보다 품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아직은 새로운 소재를 찾는 중이에요.
만약 다시 책을 낸다면 바꾸고 싶은 점이나, 시도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엄청 많죠(웃음). 제가 뭘 전문적으로 배우고 시작한 게 아니니까 진짜 비효율적으로 작업했어요. 인디자인만 해도 틀 먼저 잡고 글만 딱 넣으면 되는데 한 줄 고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복사・붙여 넣기 하고 막 이런 단순노동을 계속했거든요. 아쉬웠던 부분이 많아요. 만약 다음 책을 만든다면 지금보다 훨씬 잘 만들 자신은 있어요.
출판으로 시작된 기회
의원면직 후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3월엔 출판하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출판이 끝나자마자 호주 여행을 다녀왔어요. 4월부터는 아침 8~9시쯤 일어나 수영하고,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에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콘텐츠 기획 일도 해요. 또 가끔 독립 출판 강연이나 북토크도 나가고요.
지금은 일단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거에 집중하는 중이에요. 쿠팡 아르바이트, 호텔 아르바이트, 행사 스텝도 해봤어요. 여러 분야의 클래스도 참여하고 있고요.
알차게 살고 계시네요. 말씀하신 프로젝트 안에서 재밌는 활동을 많이 하던데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최근에 사단법인 '유쾌한반란'의 ‘챠챠챠’라는 프로그램에 선발됐어요. 청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인데요. 먼저 4월 한 달 동안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탐색했고 5월엔 그걸로 프로젝트 기획을 했어요. 그 프로젝트 발표회에서 선발된 사람들이 다음 과정에 참여하는 거예요. 저는 사회 초년생을 위한 콘텐츠랑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있어요.
그런 단체가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사회 초년생을 위한 콘텐츠라면 어떤 걸까요? 대략적인 계획이 어떻게 돼요?
앞으로 한 3개월 정도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에 10월 말에 발표회를 해요. 일단 지금은 사회 초년생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설문 받고 있고요. 거기서 몇 가지를 뽑아서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만들 것 같아요. 나중엔 오프라인 모임도 계획 중이에요. 재밌네요. 저도 가고 싶어요. 사회 초년생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요(웃음).
챠챠챠 프로젝트에서 한 활동 중에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해 줄 만한 게 있나요?
거기서 전 되게 많이 배웠는데 첫 번째로는 가치 검사가 인상 깊었어요. 사람마다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대요. 물론 상황에 따라 바뀌긴 하지만요. 저는 그동안 제가 성취 지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막상 가치 검사를 하니까 성취 부분이 엄청 낮게 나왔어요. 돌이켜보니까 그동안 외부 활동을 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성과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더라고요. 결과보다는 과정이 재밌어서 했던 거고요. 그런 걸 알아보면서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게 좋았어요. 앞으로 할 일을 정하는데 방향을 잡아주기도 했고요.
두 번째로는 기획하는 걸 다들 한 번쯤 해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는 살면서 기획이란 걸 해볼 일이 없었거든요. 원하는 대로 공부해서 교대에 왔고, 임용고시를 보라 하니까 봤고, 애들을 가르쳐야 하니까 가르쳤고. 제가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고 설계할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프로젝트를 짜보니까 너무 신기해요.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에요.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초등교사라는 직업도 끊임없이 수업과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하긴 하잖아요. 그런 것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는 건 뭔가를 설득하기 위한 기획이에요. 왜냐하면 교사가 활동을 만들어내는 건 주어진 학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잖아요. 근데 이건 아예 내가 처음부터 어떤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타인에게 설득하는 과정이니까 새로웠어요. 그런 의미에서의 기획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요.
'어떻게' 줄지가 아니라 '뭘' 줄지부터 고민하는 거군요.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지금 2명씩 10팀이니까 스무 명 정도인데요. 거기 온 분들은 보통 예술 계열의 일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쪽 분야는 도전하고 시도해 보는 게 자연스러운 집단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다른 일을 할 때 두려워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걸 거기서 느꼈어요. 교사 집단에 있을 때는 안정적인 수입이나 생계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는데 여기 오니까 아르바이트해서 자기 하고 싶은 일 하고, 지원 사업 따서 창업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어느 쪽이든 옳고 그른 건 없지만, 불안정한 게 무서워서 퇴사를 못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희희 님은 이제 불안하지 않으세요?
원래 뭘 시도하는 걸 별로 안 무서워하긴 해요. 근데 그렇다고 불안이 없진 않아요. 사실 계속 불안하죠. 어쨌든 직업이 있다가 없어졌고 주위에 아직 잘 다니고 있는 친구들도 많으니까요. 자려고 누우면 ‘그냥 좀 더 적응을 해봤어도 됐지 않았을까, 친구들과 내가 모으는 돈이 차이가 날 텐데.’ 이런 생각이 당연히 나요. 근데 바쁘게 살고 다른 사람들 만나다 보면 잊혀지는 것 같아요. 교사를 그만둔 건 이제 과거의 일이 됐잖아요?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 삶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그만둔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아직은 마냥 만족하는 상태긴 해요. 근데 만약에 원하는 방향대로 일이 안 되거나 돈이 떨어지거나 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학교에 출근할 때보다 마음이 편안해요. 매시간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돼서 안 힘들어요.
혹시 이때까지는 꼭 취업하고 싶다는 기한 같은 게 있나요?
제가 그만두고 나서 일 관련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러면서 느낀 게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경로만이 돈을 버는 방법은 아니더라고요. 물론 돈은 벌어야 하지만, 꼭 대기업에 가지 않아도 각자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직은 언제 꼭 취직해야겠단 계획이 없어요. 그리고 그냥 뭔가 열심히 하다 보면 그게 계속 이어지는 것 같거든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해서 책을 내고, 책을 내니까 독립 출판 강연이나 북토크를 하게 되고, 또 챠챠챠 프로젝트에서는 영상 콘텐츠나 오프라인 모임을 기획하고, 그러면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걸 도모하게 되고. 그냥 이렇게 살면 되겠다 싶어요. 어차피 미래를 예상할 수는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교사가 안 맞는 교대생이나 현직 교사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안 힘든 일이 없는 것도 맞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와도 괜찮다! 좀 이상하긴 한데요. (웃음) 결국 교사도 수많은 직업 중 한 직업이잖아요. 어떤 일이든 다 힘든 거라면 내 마음이라도 편한 게 최고다, 그때그때 행복하게 재밌게 살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희희는 재미를 따라가는 사람이다. 그에게 재미란 ‘주체적으로 뭔가를 기획해서 그 속에 몰입하는 순간’이다. 교직을 선택한 이유도 가르치는 일이 재밌어서였다. 수업 연구하고, 준비해서 남을 가르치는 일 자체가 너무 좋았다. 그렇게 교사가 되었다.
순수한 동기. 어쩌면 이게 신규 교사로서의 희희를 더 힘들게 한 게 아닐까. 다른 조건엔 관심이 없었기에 수업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계속 버티기가 어려웠다.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재밌는 일을 펼치고 싶었고, 결국 1년 만에 과감하게 학교를 나왔다.
이후 이직이나 취업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그저 본인만의 재미를 찾아, 원하는 걸 열심히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모여 나름대로 훌륭한 커리어가 만들어졌다.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는 ‘connect the dots’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래를 내다보며 점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를 돌아볼 때만 연결할 수 있죠. 지금 내가 찍는 점들이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연설을 볼 때마다 나는 구슬꿰기를 떠올린다. 실을 놓고 거기에 맞는 구슬을 하나씩 꿰는 게 아니라, 구슬부터 모으는 이상한 구슬꿰기. 어디에 쓰일지, 실에 들어갈지, 크기가 맞을지도 모르면서 무작위로 구슬을 모은다. 한참 지나고서야 운 좋게 한 줄로 엮이는 걸 보며 회상에 젖는 게 우리가 사는 인생 아닐까 싶다.
희희가 좇는 ‘재미’는 그녀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간다. 앞으로 어떤 구슬을 모을지, 그것들이 어떻게 엮일지 궁금하다.
-해당 인터뷰 전문은 책 <교대 나와서 교사 안 하면 뭐 먹고살지?>에 있습니다.
책에는 다른 분들의 인터뷰와 저의 에세이도 실려 있습니다.
- 책 소개 링크
https://gamy-philosophy-ccf.notion.site/1bd708c22b8180b2bfa3fbdfec44f5c8?pv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