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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 Jun 24. 2024

뭐먹살 ep4. 사회초년생을 인터뷰한 책을 출간하다

"그냥 열심히 하다보면 다 연결되더라고요."

의원면직한 초등교사를 찾던 중 후배의 소개로 희희님을 알게 됐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자마자 '아, 이 사람이다.' 싶었다. 부임하자마자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내던 중 그는 본인이 가진 고민이 직업적 특수성 때문인지 사회초년생이라는 생애 특성 때문인지 궁금해졌고 다양한 일을 하는 동갑내기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출근하면서 짬짬이 시간을 내 독립출판에 대해 공부했고 인디자인부터 인쇄, 텀블벅 펀딩, 인스타그램 홍보까지 직접 해 <스물넷, 찬란한 처음>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에는 엔지니어, 바리스타, 아나운서 등 여러 청춘의 꿈과 애환이 희희님만의 다정한 시선으로 담겨 있었다.


어쩌면 희희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순간 인터뷰라는 도구로 본인이 직면한 고민을 돌파해 보려 한 점이 나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여러 서점에 책을 입고시키고 북토크나 독립출판 강연을 다니는 모습은 현재 내가 꿈꾸는 미래이기도 했다.


인터뷰 섭외를 시도했을 때 희희님은 아직 뚜렷한 직업이 없어 이직에 대해 얘기해줄 게 없는 것 같다며 망설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나에게 중요했던 건 희희님의 직업이라기보다는 그가 하는 활동들이었기 때문이다. 뭐든 용감하게 시도하고 다양하게 경험하는 그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용기이자 레퍼런스가 되기 충분하다.




희희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2023년 3월 발령, 1년 후 의원면직

브런치 스토리 『 쉿, 선생님이 사람 되는 중 』 연재

인터뷰집 『 스물넷, 찬란한 처음 』 출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희희입니다. 서울교대 졸업 후 초등교사로 일하다가 올해 3월 의원면직했어요. 글쓰는 걸 좋아해 최근 『스물넷, 찬란한 처음』이라는 인터뷰 모음집을 출간했습니다. 현재는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강연도 다니며 바쁘게 살고 있어요.


희희님이 쓰신 책 정말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책 마지막에 셀프 인터뷰를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쭉 교사를 꿈꾸셨더라고요. 왜 교사가 되고 싶으셨나요?

누굴 가르쳐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초등교사가 공무원이라든가 안정적이라든가 이런 조건을 제외하고도 그냥 가르치는 게 좋아서 교사가 하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저한테 권유를 하신 적도 없었고요.


교대에 진학해서도 그 마음이 계속 유지됐나요? 대학 생활은 어땠어요?

네. 제가 꿈꿨던 학교에 들어온 거기 때문에 재미있게 다녔어요. 여러 과목을 배우는 게 나중에 선생님이 되는 데 다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했고요. 교생실습도 가서도 되게 좋았어요.

근데 학교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가 없다는 건 아쉬웠어요.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밖 외부 활동을 찾아서 많이 참여했어요. 난치병 아이들 소원 들어주는 봉사활동도 하고, 대학생들이 중고등학생들 대상으로 전공 강연해 주는 활동도 했고요. 한국에 온 유학생들 대상으로 한국 민요나 인문학을 홍보하는 대회에 나가기도 했어요.


이 직업에 대한 확신이 있으셨네요. 그런데 교사가 되자마자 힘든 한 해를 보내신 것 같더라고요. 브런치 글을 읽어봤는데, 당시 글 중에 ‘학교 가는 게 죽기보다 두렵고 잠을 자다가도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많이 힘드셨나요?

네.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매일 매일 일이 생겼었어요. 일이 생겨 야근하고,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학부모와 통화하고 상담하는 나날이 계속 반복되니까 나중엔 우울감이 심해지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생각부터 하면서 출근했어요. 쉬는 시간에도 마음 놓고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요. 화장실도 못 가고, 점심 식사 후에도 바로 올라와서 계속 학생들을 보고 있어야 했어요.

저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수업 개발 열심히 하고, 학생들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 수업을 좋아해서 학생들하고 그런 걸 하길 기대했는데 막상 하는 일은 학생들 싸우면 데려와서 혼내고, 혼내면서도 학부모 민원 들어오지 않을까 고민하고… 그런 괴리 자체가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 교직은 엄청 하고 싶고 너무 좋아했던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더 힘들었어요. 자책도 많이 하고, 회의감도 컸고.


슬프네요. 앞서 했던 인터뷰이 중에 교대를 원치 않았는데 부모님 강요로 가게 돼서 괴로워했던 친구가 있거든요. 반면에 희희님은 정말 원하고 좋아해서 교사가 되신 건데도 자책하고 힘드셨다고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힘드신 와중에도 브런치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나의 모든 것을 다해보려고 한다.’라고 쓰셨던데요.

어쨌든 제가 일이 처음이기도 했고 아이들 관리를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학급경영이나 학생상담 같은 걸 더 공부하고 나면 다시 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연수도 찾아서 듣고 그랬어요.


애를 많이 쓰셨네요. 그럼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서이초 사건이 터지고 바로 여름방학이 시작됐어요. 사실 초반에는 슬프고 화가 나는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근데 집회를 다니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동안 제 탓만 했었는데 집회에 가보니 학교의 시스템 자체가 잘 안 잡혀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처음으로 시스템을 탓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 학교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문제아동이 있으면 오직 교사가 ‘카리스마’ 하나로 눌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저는 그렇게 카리스마 있는 성격이 아니니까, 매 시간마다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르고 미간 찌푸려야 하는 거죠.

그래서 내내 고민했어요.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달라졌죠. 어느 날은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가도 어느 날은 더 이상 못 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교사를 하면서도 해외 파견도 가고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여러 경험을 많이 하면서 살고 싶었죠. 근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뭘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지쳐버리니까요.

그러다가 주변 친구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일을 하고 있더라도, 혹은 아직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다들 열심히, 잘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둬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교대생들이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는 거지 스물다섯이면 사실 일을 안 해도 괜찮은 나이인 것 같기는 해요. 아니, 어떤 나이이든 힘들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거고요. 그리고 교사하면서 다양한 걸 할 줄 알았는데 못 하는 것 너무 공감되네요. 칼퇴근에 저녁이 있는 삶이고 취미도 되게 많을 것 같잖아요. 제가 뭔가를 시도하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그건 퇴근하고 취미로 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사실 담임 일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어렵잖아요. 학교에서 뭔 일이라도 나면 진이 빠지고요.

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데, 교직에 있으면 제약도 많고요. 저는 교직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민원에 대한 위험이나 여러 단점이 있지만 어쨌든 안정적이고, 방학도 있고, 아이들한테서 오는 보람도 있고∙∙∙ 특히 안정성에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죠. 육아나 출산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고요.

근데 저는 그런 게 중요한 사람이 전혀 아니었거든요. 제가 쫓던 가치가 아니었어요. 저는 지금도 가치 검사를 하면 재미 100%를 찍는 사람이거든요. 재미를 위해서 살아온 사람이에요. 단지 가르치는 게 좋아서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가르치는 건 나가서도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2, 3년 후에 이 일에 익숙해지고 결혼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냥 학교에 계속 다닐 것 같았어요. ‘그만둘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지금이 적기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이 직업의 장점 중에 안정성이 꽤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희희님께서 여기에 비중을 두지 않으신다면 계속할 이유가 딱히 없죠. 재미 백 퍼센트라니, 희희님은 뭘 할 때 재미를 느끼시나요?

저는 뭔가를 기획하고 확 몰입해서 해내는 걸 되게 좋아해요. 제가 막 빠져들어서 하는 게 재밌어요. 대학생 때 대외 활동들도 다 재밌었고요. 학교에서 담당 업무가 학생 자치였는데 사실 저는 그 일할 때가 제일 재밌었어요. 애들이랑 뭘 같이 기획하고 만드는 게 재밌더라고요. 근데 담임의 기본적인 업무는 애들을 관리하는 거잖아요. 자치는 학교 일의 일부고요.

 

기획과 몰입으로서의 재미를 찾는 분이시군요. 그래서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하신 건가요? 아나운서, 배우, 엔지니어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친구들을 인터뷰하신 게 흥미롭더라고요.

당시에 제가 교사라서 힘든 건지, 사회초년생이라서 힘든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다른 직업을 가진 또래 친구들과 깊은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보통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끼리 얘기를 하면 어느 정도 선까지 밖에 말을 못 하잖아요. 그래서 인터뷰를 핑계 삼아 깊은 고민을 들어보고 싶었죠. 2학기 때 시작해서 일주일에 한두 명씩 인터뷰했어요. 그게 퇴근 후에 낙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생각할 거리를 주니까.


일과 병행했다고요? 대단한데요.

하면서 오히려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같은 나이여도 각자의 속도가 있고, 저마다 힘든 게 있다는 걸 깨달았죠. 처음엔 취미처럼 브런치에 올리다가 나중에 책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출간하시는 과정에서 인디자인도 직접 하시고, 인스타그램 릴스로 홍보도 하시고, 텀블벅 펀딩도 여러 구성을 만들어 진행하셨더라고요. 이런 건 다 어떻게 배우신 거예요?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고 인터넷 보면서 조금씩 따라 했어요. 독립 출판하는 다른 분들 걸 참고하기도 했고요.


희희님의 인터뷰집. 텀블벅 모금에 성공했으며 현재는 여러 독립 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어떻게 보면 글쓰기부터 마케팅, 디자인까지 혼자 다 하신 거잖아요. 그럼에도 완성도가 높더라고요. 책을 낸 소감은 어떠세요? 독자들이 써준 리뷰가 무척 감동적이던데요.

저도 그런 리뷰를 볼 때마다 책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인디펍이라고 독립서적을 판매하는 플랫폼에서 서포터즈를 운영하는데요. 주로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제 책이 우연히 제가 원하는 독자층 분들께 가게 된 거예요. “위로 받았다.”, “책에 나오는 문장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와 같은 리뷰를 보면 엄청 보람차요. 한 명한테라도 와닿았으면 이 책의 목적을 다한 것 같아요. 진짜 힘들었지만 만들길 잘했죠.

 

북토크도 자주 다니시더라고요.

네. 제가 찾아서 가는 것도 있고 제안이 온 경우도 있어요. 한번은 사회초년생 북토크를 했는데 독자분께서 우신 적이 있어요. 저는 북토크 할 때 저 혼자 말하는 게 아니라 독자 분들과 책을 같이 읽고 질문을 뽑아서 각자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데요. 아마 “지금 불안한 게 무엇인가요?” 아니면 “마음에 안 드는 결과를 과정의 일부로 바꾼 적이 있나요?” 이런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한 분께서 힘든 얘기를 하시면서 우시더라고요. 그때 ‘진짜 이거 하길 잘했구나, 이런 책을 만들고 나누는 게 누군가에게는 가 닿는구나.’ 싶어서 되게 좋았어요.


구성을 잘하셨네요. 좋은 컨텐츠가 되려면 독자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놔야 한다는 거죠. 희희님께선 이미 그걸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책을 내실 계획이 있나요?

제 책이 『스물넷, 찬란한 처음』이잖아요. 원래는 시리즈로 내는 걸 의도했었어요. 근데 만들고 나서 보니까 생각보다 품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아직 새로운 소재를 찾는 중이에요.


만약 다시 책을 낸다면 바꿔보고 싶은 점이나, 시도해 보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엄청 많죠(웃음). 왜냐면 제가 뭘 전문적으로 배우고 시작한 게 아니니까 진짜 비효율적으로 작업했어요. 인디자인 같은 것도 틀 먼저 잡고 글만 딱 넣으면 되는데 한 줄 고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복사 붙여넣기 하고 막 이런 단순노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아쉬웠던 부분이 많아요. 만약 다음 책을 만든다면 지금보다 훨씬 잘 만들 자신은 있어요.


책 출간과 거의 동시에 의원면직하셨는데요. 부모님 반응은 좀 어떠셨나요?

처음엔 엄청나게 반대하셨고요. 어쨌든 1년밖에 안 됐으니까 좀 더 생각을 해보길 원하셨고, 아니면 휴직하라고 하셨어요. 1년 쉬면서 하고 싶은 거 하라고. 근데 저는 쉬고 싶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었어요. 교사하면서 힘든 것도 큰 이유였지만 이것저것 다양한 걸 해보고 싶은데 제약이 많으니까 그만두려고 했던 거였어요. 1년 쉬고 돌아온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냥 그만두고 자유롭게 원하는 거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부모님 반대 때문에 스트레스받진 않으셨나요?

저는 고집이 세서요(웃음). 죄송한 마음이 있긴 했는데 어쨌든 제 인생이니까요. 지금은 그만둔 후에도 제가 뭔가를 계속하니까 괜찮다고 하세요. 너의 그런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의원면직 후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3월엔 출판하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출판이 끝나자마자 호주 여행을 다녀왔어요. 4월부터는 아침 8~9시쯤 일어나 수영하고,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에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유쾌한 반란’이라는 단체에서 하는 프로젝트의 컨텐츠 기획 일도 하고 있어요. 또 가끔 독립출판 강연이나 북토크도 나가고요. 지금은 일단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거에 집중하는 중이에요. 쿠팡이나 호텔 아르바이트랑 행사 스텝도 해봤어요. 이런저런 분야의 클래스도 참여하고 있고요.


유쾌한 반란’은 어떤 곳인가요? 거기서 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유쾌한 반란’은 후원금을 받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고요. 여러 사업을 하는데 저는 그중에서 ‘챠챠챠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에요. 청년들이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사업이에요. 먼저 4월 한 달 동안 각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워크숍을 해줬고 5월엔 그걸로 프로젝트 기획을 했어요. 그 프로젝트 발표회에서 선발된 사람들이 다음 과정에 참여하는 거예요. 저는 사회초년생들을 위한 컨텐츠랑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기획하고 있어요.


19세에서 34세의 청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Part1과 Part2에 둘 다 선발되면 1월부터 11월까지 활동한다. 자세한 사항은 ‘유쾌한 반란’ 홈페이지 참조.


그런 단체가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덕분에 희희님이 출간하신 책이랑 연결되는 후속 작업을 하실 수 있겠어요. 대략적인 기획을 조금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요즘 비슷한 단체가 많더라고요. 경기도 일자리재단에서도 갭이어 프로그램이 운영하고요.

앞으로 한 3개월 정도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에 10월 말에 발표회를 해요. 일단 지금은 사회초년생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설문 받고 있고요. 거기서 몇 가지를 뽑아서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만들 것 같아요. 나중엔 오프라인 모임도 계획 중이에요.

 

재밌네요. 저도 가고 싶어요. 사회초년생이라고 하기엔 벌써 애매해진 것 같지만요. 챠챠챠 프로젝트에서 한 활동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해 줄 만한 게 있나요?

거기서 전 되게 많이 배웠는데 첫 번째로는 가치 검사가 인상 깊었어요. 사람마다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대요. 물론 상황에 따라 바뀌긴 하지만요. 저는 그동안 제가 성취 지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막상 가치 검사를 하니까 성취 부분이 엄청 낮게 나왔어요. 돌이켜보니까 그동안 외부 활동을 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성과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더라고요. 결과보다는 과정이 재밌어서 했던 거고요. 그런 걸 알아보면서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게 좋았어요. 앞으로 할 일을 정하는데 방향성이 되어주기도 했고요.

두 번째로는 기획하는 걸 다들 한 번쯤 해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는 살면서 기획이란 걸 해볼 일이 없었거든요. 원하는 대로 공부해서 교대에 왔고, 임용고시를 보라 하니까 봤고, 애들을 가르쳐야 하니까 가르쳤고. 제가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고 설계할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프로젝트를 짜보니까 너무 신기하고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에요.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초등교사라는 직업도 끊임없이 수업과 컨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하긴 하잖아요. 그런 것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는 건 뭔가를 설득하기 위한 기획이에요. 왜냐하면 교사가 활동을 만들어내는 건 주어진 학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잖아요. 근데 이건 아예 내가 처음부터 어떤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타인에게 설득하는 과정이니까 생소했어요. 그런 의미에서의 기획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요.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새롭네요.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지금 2명 정도씩 10팀이니까 스무 명 정도인데요. 거기 오신 분들은 보통 예술 계열의 일을 하거나 창업을 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쪽 분야는 도전하고 시도해 보는 게 자연스러운 집단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다른 일을 할 때 두려워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걸 거기서 느꼈어요.

교사 집단에 있을 때는 안정적인 수입이나 생계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는데 여기 오니까 아르바이트해서 자기 하고 싶은 일 하고, 지원 사업 따서 창업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는 아니지만 불안정한 게 무서워서 퇴사를 못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태까지 네 명을 인터뷰하고 있는데 다들 같은 말을 하네요. ‘교사 집단에 있을 때는 두렵고 불안했는데 나와보니까 다들 어떻게든 잘 산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랑 있을 때 마음이 더 편하다.’ 이런 얘기들이요. 불안에 대해 더 얘기해 볼까요? 희희님은 그럼 이제 불안하지 않으신가요?

원래 뭘 시도하는 걸 별로 안 무서워하긴 해요. 근데 그렇다고 불안이 없진 않아요. 사실 계속 불안하죠. 어쨌든 직업이 있다가 없어졌고 주위에 아직 잘 다니고 있는 친구들도 많고. 자려고 누우면 ‘그냥 좀 더 적응을 해봤어도 됐지 않았을까, 친구들과 내가 모으는 돈은 차이가 날 텐데.’ 이런 생각이 당연히 나요. 근데 바쁘게 살고 다른 사람들도 만나다 보면 잊혀지는 것 같아요. 교사를 그만둔 건 이제 과거의 일이 됐잖아요?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고 있어요.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는 생각도 하고요.


전 타고나길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 안정적인 선택만 계속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건데, 그만두고 나면 내가 그 뒤에 올 불안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긴 해요. 희희님은 아직 한참 남았긴 했지만 임신∙출산∙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애 키우면서 하기엔 여교사가 최고다’라는 말을 모욕적으로 느끼면서도 또 막상 애를 낳을 생각이라면 좀 더 버텨볼까 싶거든요.

사실 맞는 말이죠. 저도 1년이지만 학교 다니면서 주위에서 육아시간, 육아휴직 쓰시는 분들 보니까 그건 진짜 큰 장점인 것 같더라고요. 제가 그만둔다고 할 때 주변 선생님들께서도 결혼 후에는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뀐다고 말씀하셨고요. 나이가 들면 이 직업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셨고 저도 그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해요.

근데 저희가 그것만 보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만약에 일하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더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물론 그건 업계의 문제고, 고쳐야겠지만,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직 안 겪어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만... 너무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미래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현재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되잖아요.


그러게요.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다들 ‘50대 60대 때는 교사만 한 직업이 없다’는 말을 해요. 근데 우리가 미래만 보고 살 수는 없잖아요. 나의 20대와 30대도 소중한데 노후와 연금만 생각하면서 이걸 버틸 수도 없고, 육아가 중요하긴 하지만 내 인생에 그게 전부도 아니고. 또 나중에 다른 직업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는 말도 하는데 사실 나이 들어서 학부모 민원 받는 것도 힘든 일이잖아요. 제가 봤을 때 이젠 똑같이 괴로운 것 같아요. 여기 계속 있어도 괴롭고, 불안정하고, 위험하고. 작년에 특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익숙함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맞아요. 나가서도 후회할 거고 여기 계속 있어도 후회할 거면 그냥 나가서 경험치라도 쌓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교대 나오면 어쨌든 자격증이 있잖아요. 물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럼 지금 삶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세요?

그만둔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아직은 정말 너무 만족하는 상태긴 해요. 근데 만약에 원하는 방향대로 일이 안 되거나 돈이 떨어지거나 그러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어쨌든 학교에 출근할 때보다 마음이 편안해요. 매시간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돼서 안 힘들어요.


혹시 이때까지는 꼭 취업하고 싶다는 기한 같은 게 있나요?

제가 그만두고 나서 일 관련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러면서 느낀 게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경로만이 돈을 버는 방법은 아니더라고요. 물론 돈은 벌어야 하지만, 꼭 대기업을 가지 않아도 각자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직은 언제 꼭 취직해야겠단 계획이 전혀 없어요.

그리고 그냥 뭔가 열심히 하다 보면 그게 계속 이어지는 것 같거든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해서 책을 내고, 책을 내니까 독립 출판 강연이나 북토크를 하게 되고, 그걸로 챠챠챠 프로젝트에서 영상 컨텐츠나 오프라인 모임을 기획하게 되고, 그러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다른 걸 기획하게 되고. 그냥 이렇게 살면 되겠다 싶어요. 어차피 미래를 예상할 수는 없으니까요.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라는 연설이 떠오르네요. 점을 찍다 보면 나중에 그게 다 연결된다. 희희님은 앞선 경험들로 이거에 대한 확신을 얻으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교사가 안 맞는 교대생이나 현직 교사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안 힘든 일이 없는 것도 맞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와도 괜찮다! 좀 이상하긴 한데요. (웃음) 결국 교사도 수많은 직업 중 한 직업이잖아요. 어떤 일이든 다 힘들다면 내 마음이라도 편한 게 최고다, 그때그때 행복하게 재밌게 살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앞서 인터뷰했던 유담이나 부진과는 다르게 희희는 어른들의 조언과 관계없이 본인 의지 백 퍼센트로 교대를 온 케이스였다. 안정성이나 방학으로 대표되는 교사의 장점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단지 가르치는 일이 좋았고 교직 자체를 사랑해 교사가 되었지만 그만큼 실망이 컸다. 잘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안될 때마다 본인을 탓했고 결국 몸과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기 싫었던 사람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당연히 별로일 수 있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을 사랑하고 간절히 원했던 사람에게조차 실망감을 줬다는 건 씁쓸한 일이다. 희희님이 내내 '내 탓'만 하다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사실은 '시스템 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게 무척 공감됐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던 그가 한 말이기에 더 와닿았다. 지금의 시스템 안에서 교직에 만족한다는 건 누구에게든 어려운 일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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