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초등교사, 크라우드펀딩 크리에이터가 되다
초등 교사를 안 하기로 선택한, 혹은 하다가 그만 둔 지인들은 거의 인터뷰했다. 같은 과 선배, 후배, 동기, 기숙사 룸메이트까지. 이제부턴 새로운 인터뷰이를 찾아야 했다. 용기 내서 몇몇 분들께 섭외 제안을 드렸지만 답은 거절. 완곡한 거절, 단호한 거절, 답이 없는 거절. 인터뷰이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앞길이 막막했다.
유튜브에 ‘초등교사 의원면직’을 검색해봤다. 조회수 18만회의 영상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4년차 초등교사 사직서 쓰러 간 날’. 영상 속 인물은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는 솔직한 심정을 고백한다. 아버지의 강요로 교대에 갔지만 그 또한 자신의 선택과 책임이며, 의원면직의 계기가 되었던 학생에겐 오히려 고맙다는 얘기. 덤덤해 보였지만 영상을 찍기까지 겪었을 온갖 풍파가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졌다. 특히 “시련은 오히려 사람을 나아가게 하죠. 반면 안정은 사람을 그 자리에 머무르게 만듭니다.’라는 말이 유난히 와닿았다.
그런데 채널명이 ‘워터스클럽’, 1년전 팔로우했던 인스타그램 계정과 똑같은 이름이었다. 귀여운 물방울 캐릭터가 진로 고민이나 관련 정보를 소개하는 인스타툰이었다. ‘우리는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됩니다’라는 멋진 카피가 인상 깊었다. 최근엔 업로드가 뜸해 중단한 줄 알았는데 유튜브를 하고 계셨고, 심지어 의원면직한 초등교사셨다니. 이외에 블로그, 텀블벅도 다양하게 운영하는 중이셨다. 특히 텀블벅에선 다섯번의 프로젝트를 기획해 누적 금액 4,000만원 이상을 달성한 어엿한 창작자였다.
교대에 입학하게 된 스토리부터 교사 생활은 어땠는지, 의원면직은 어떤 계기로 결정했으며 이후 텀블벅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한 비결까지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카피라이팅과 로고디자인까지 혼자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만큼의 완성도를 만들어내는지, 인상적인 문장은 어디서 가져오는지도 궁금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연락을 드렸고 2주 만에 답이 왔다! 연이 없는 사람을 섭외한 건 처음이었다.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현지님을 만났다.
현지
부산교육대학교 졸
2019년 3월 발령, 2023년 3월 의원면직
‘워터스클럽’ 이름으로 유튜브, 블로그 등 각종 SNS 컨텐츠 제작
텀블벅 프로젝트 누적 매출 5,000만원 이상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류현지입니다. 초등교사로 4년 일하다가 작년 3월에 의원면직하고 지금은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텀블벅이라는 플랫폼에서 크라우드펀딩으로 다양한 제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어요.
[교사가 된 계기]
유튜브를 통해 현지 님께서 아버지의 강요로 교대에 가신 걸 알게 됐어요. 원래 고등학생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교대에 진학하게 된 얘기를 자세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저희 집안이 가난한 편이에요. 아버지가 교회 목사님이신데 직업 특성상 돈을 쫓는 일은 아니다 보니 중학교 때까지 엄마, 저, 남동생이 한방에서 지냈었어요. 제 방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가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지역 특목고에 입학했어요. 근데 가보니까 잘 사는 친구들이 되게 많은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어느 날 동아리에서 부자인 분을 인터뷰했는데 그분이 월급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이 완전히 깨져서 고등학교 중퇴하고 바로 사업을 하려고 했어요. 근데 부모님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셨죠. 노동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는 분들이셔서. ‘그럼 적어도 서울로 대학을 가서 넓은 세상을 봐야겠다.’ 싶었는데 아버지께서 “부산교대 외의 다른 대학을 갈 거면 집에서 지원을 아예 안 해줄 거다.”라고 강하게 밀어붙이셨어요. 여자 직업으로 교사가 좋다는 게 이유였죠.
서울교대도 안 됐던 건가요? 꼭 고향에 있는 대학에 다니길 원하셨던 이유는 뭘까요?
제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어요. 열 살 때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십오 년 동안요. 아버지 교회가 되게 작아요. 열 명이 안 돼서 저 하나 없으면 공백이 크긴 해요. 당시에 부모님이랑 자주 싸우긴 했는데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서울 가서 집을 구하는 것도 모르겠고, 도움받을 사람도 없다 보니 아버지 뜻에 따라 부산 교대를 가게 됐죠.
원래 희망하셨던 전공은 뭐였나요?
제가 뭘 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반대하셔서… 예를 들어 검사를 하고 싶다 그러면 “범죄자 만나는 일이 뭐가 좋냐” 그러시고, 의사는 “아픈 사람 만나는 일이라 별로다” 하셨어요. 그러니까 다른 진로에 대한 싹이 틀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왜 그렇게 교대에 꽂히셨던 걸까요?
아빠의 삶에서 봤을 땐 교사가 제일 좋은 직업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목사가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다 보니.
남동생에게도 그러셨나요?
아니요. 동생한텐 의대 가라고 하셨어요. 저한텐 동생 의대 가면 학비 대라고 하시고.
K-장녀의 표본과도 같은 삶을 사셨네요. 진짜 힘드셨겠어요. 대학 입학 후엔 어떻게 지내셨나요?
한동안은 되게 무기력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전공 공부를 많이 했죠. 4년 내내 장학금 받고, 전국 교대생 수업 대회에 나가서 장관상도 받았어요. 중간에 휴학도 했었는데 그때도 교육 관련해서 계속 공부했고요. 교육 협동조합 같은데 들어가서 대안교육 교사로도 일했어요
근데 동기들 사이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른 친구들은 교대에 온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좋아하는데 전 아니었으니까요. 돈이 없는 것도 이유였고요. 동기들이랑 친해지려면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셔야 하는데, 당시 같이 놀 돈이 없었어요. 밥도 싼 토스트나 주먹밥 사서 대충 때우고 그랬죠.
그럼 진로에 대한 고민이 계속 이어지는 상태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신 건가요?
네. 계속 고민했었어요.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해야 원하는 진로로 갈 수 있었는데 그때는 제가 힘이 없었거든요. 부모님께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계속 있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설득해야 했고 제 맘대로 결정하거나 통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가끔 독립을 하고 싶다는 운은 띄워봤죠. 그랬더니 “그러면 결혼해라” 이런 답변이 나와버리니까 이건 결국 집을 나와야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임용고시 지역을 부산으로 친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몰래 경기도를 품고 있었죠.
[결국 번아웃이 오다]
경기 지역으로 합격했을 때 부모님께서 깜짝 놀라셨겠네요. 교사로 일하는 동안은 어떠셨나요? 왠지 엄청 성실하셨을 것 같아요. 유튜브를 보니까 스톱모션을 활용해 학생들과 애니메이션을 만드셨더라고요.
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 했어요. 영재 강사도 하고, 방과후에 여학생들 대상으로 넷볼 스포츠클럽 운영도 하고요. 돈을 벌고 싶으니까, 학교에서 돈 준다는 건 거의 다 했어요.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니까 뿌듯하긴 했는데 마음 한편에는 죄책감도 있었어요. 제가 학교를 순수하게 좋아하지 않고,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품고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의 사랑을 받아도 제가 좀 밀어냈던 것 같아요.
열심히는 하셨지만 속으론 계속 방황하셨군요.
네. 제가 처음에 부산에서 기간제 교사로 6개월 일하는 동안 천만원을 모았거든요. 진짜 안 먹고, 맨날 걸어 다니고, 학교에서 뭐 있으면 자원해서 하고 이런 식으로 짠테크를 했었는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부동산 경매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임장도 보러 다녔지만∙∙∙. 그냥 몸값을 올리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인 것 같았어요.
제 성향도 교사랑 잘 안 맞았어요. 교사는 상대를 키우는 일이잖아요. 저는 저를 키우는 게 제일 즐거운 사람이거든요. 저 자신을 알아보기 위해서 강점 검사를 했는데요. 여러 강점 중에 ‘개발’이랑 ‘최상화’라는 게 있어요. 둘 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데 방향이 좀 달라요. 개발은 0점을 80점으로 만드는 거고 최상화는 80점을 100점으로 만드는 거예요. 저는 개발은 낮고 최상화가 높은 사람이에요. 잘하는 애를 더 잘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러다 보니 교실에서 뒤처지는 아이들 동기부여 하는 게 사실 좀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우쭈쭈를 못 받고 자라서 그런지, 남을 우쭈쭈해주는 걸 잘 못하더라고요. 자꾸 애들한테 ‘좀 알아서 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웃음). 그러다 보니 내가 교사로서 잘하고 있나에 대한 의문이 자주 들었어요.
[부모님 몰래 한 의원면직]
의원면직을 본격적으로 결심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처음 발령 났을 땐 하루하루 수업 준비하고 애들 보는 게 힘들어서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을 안 했어요. 우울감이 있어도 참고 누르고 있었는데, 3년 차쯤 되면 일할 때 여유가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그전에 오래 쌓인 게 그때 터지더라고요.
특히 당시에 저희 반에 힘든 학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트리거가 된 것 같아요. 그 학생의 감정을 받아주는 게 되게 지치더라고요. 한 번만 받아주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니까. 그걸 해결하려고 학생을 상담하면서 감정을 따라가 보면 결국 가정이 원인이에요. 근데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해 줄 수가 없잖아요. 부모님과 독서 모임을 진행할 수도 없고, 부모 교육을 할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한계가 너무 명확하더라고요.
이게 어려운 학생이 있으면 학교에서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가정과 사회가 연계돼서 그 아이를 같이 봐야 해요. 그게 안 되면 저 혼자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해결이 안 되는 거죠. 저만 계속 소진되고요. 그래서 그때 아주 우울했어요. 병휴직을 하다가 바로 의원면직했죠.*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다. 현지님이 느낀 무력감은 나와 주변 선생님이 종종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요즘엔 학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방과후에 학생을 만나거나 수업 중 상담을 하는 것도 어렵다. 교사가 그 학생만을 위해 특별활동과 수업을 기획하고, 방과후 개인 상담을 해주고, 학교 상담실이나 구청 서비스에 연결해줘도 가정의 협조가 없으면 아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구조 안에서 학생 문제 행동의 책임은 온전히 담임 교사가 진다는 게 얼마나 모순적인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원해서 교사를 한 사람도 힘이 드는데, 현지 님은 자의로 교대를 진학하신 게 아니다 보니 더 절망스러우셨겠어요. 아버지가 원망스럽진 않으셨나요?
제가 놀랐던 게 심리 상담을 받는데 학교 힘든 얘기보다도 부모님 얘기를 더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학교가 힘든 것도 아빠에 대한 원망에서 비롯된 게 너무 많은 거예요. ‘내가 교대 안 간다고 했는데 왜 나를 보냈나’ 이런 것부터 월급 적은 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부모님 이슈랑 엮이고 그랬어요. 근데 이젠 어쨌든 모든 책임이 제게 있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제 인생을 휘두르게 내버려둔 것도 저의 책임이죠.
우울할 때 가족의 지지를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씁쓸하네요. 의원면직을 결정하는 게 불안하거나 두렵진 않으셨나요?
불안했어요. 나중에 ‘괜히 그만뒀나?’하고 후회할까 봐요.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됐고, 엄마아빠한테 말씀을 안 드렸는데 들키면 어떻게 하나 두렵기도 했고요(웃음).
그럴 때 불안하거나 두려운 이유를 글로 쓰는 게 도움이 됐어요.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를 글로 써보면 막상 그렇게까지 최악이 아니더라고요. 까놓고 보면 크게 별게 없고요.
지금 컨텐츠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계시는데, 의원면직할 당시 이 분야에 대한 확신이 있으셨나요?
확신이 없었어요. 교사는 특히 이직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른 직업은 저녁에 부업으로 스마트 스토어라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볼륨이 커지면 갈아타면 되고요. 근데 교사는 겸직이 안 돼서 확신을 가질 수가 없는 구조 안에 있죠.
사직원을 제출할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불안하긴 했지만 후련함도 되게 컸어요. ‘이제 겸직 제한 신경 안 쓰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학교에서도 선배 선생님들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나가는 게 낫다”면서 응원 많이 해주셨어요.
사직원을 제출할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불안하긴 했지만 후련함도 되게 컸어요. ‘이제 겸직 제한 신경 안 쓰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학교에서도 선배 선생님들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나가는 게 낫다”면서 응원 많이 해주셨어요.
부모님께는 혹시 비밀로 하신 건가요?
네. 근데 나중에 들켰어요(웃음). 제가 해외여행 가서 통화가 안 되니까 학교로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발칵 뒤집어지셨죠.
[텀블벅 매출 5,000만원을 달성하기까지]
유튜브 <퇴직 예정 초등 교사의 진로 계획>에 5단계 계획을 야무지게 설명해 두셨던데요. 1단계, 모임을 열어서 사람들의 수요를 파악한다. 2단계, 블로그로 호흡이 긴 글을 쓴 다음 재가공해서 다른 SNS에 게시한다. 3단계, 크라우드 펀딩으로 컨텐츠를 수익화한다. 4단계,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한다. 5단계, 각종 강의를 만든다. 전 이 계획이 굉장히 논리적이고 치밀해서 신기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반 이상을 실현하셨고요. 이런 계획은 어떻게 세우신 건가요?
일단 다른 회사에 취업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았고요, 전문직 시험이나 대학원 입학은 오래 걸릴뿐더러 당장 돈이 되지 않아서요. 저는 바로 돈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교사하면서 다양한 플랫폼에서 하는 강연이나 모임에 자주 참여를 했는데 그런 데서 이것저것 주워들은 걸 정리해서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봤죠.
첫 번째 계획이었던 모임 운영부터 얘기해 볼게요. 의원면직을 희망하는 교사 워크숍, 여성 사업가 북토크, 두려움에 대한 글쓰기 모임 등을 주최하셨더라고요. 요즘 커뮤니티 사업이 붐이기도 한데요, 모임 주최는 어떻게 하셨나요?
평소에 모임을 가더라도 거기서 주는 컨텐츠 뿐만 아니라 모임 자체를 메타적으로 보려고 했어요. 홈페이지는 어떤지, 수업 구성은 어떤지, 어떤 식으로 모임을 운영하는지 같은 것들요. 사람들의 수요를 알아보려고 시작한 건데, 확실히 데이터는 확보한 것 같아요. 이직, 퇴사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고 학교 그만두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도 많더라고요. 근데 해보니까 제가 모임이랑 맞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생각보다 에너지가 너무 들더라고요. 그리고 오신 분들께서 비용보다 훨씬 많은 가치를 가져가셨으면 좋겠다 보니 제 안에 부담감이 계속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몇 번 진행하고 중단했어요.
저도 독서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쉽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사람 대하는 일이고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내야 하다 보니. 다음 계획이 블로그에 컨텐츠를 올리는 거였는데, 정말 다양한 글을 쓰셨죠. 그중에서 [인사이트] 카테고리에는 공간, 사업, 재테크 등과 관련된 인사이트가 소개되어 있는데, 게시 날짜를 보니 교사하실 때부터 꾸준히 작성하셨더라고요.
처음엔 취미처럼 순수하게 했어요. 제가 분석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어딜 가면 비판적으로 보고,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게 습관이에요. 그리고 이런 시각을 쌓다 보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발리 워케이션 여행기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재테크 글 올리실 때는 냉철하시고, 여행 글에서는 감성적이시더라고요.
맞아요. 그런 감성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근데 발리 갔을 때 사실 돈이 진짜 없는 상태였어요. 생활비를 계속 쓰기만 하다 보니까. 그때 당시 텀블벅도 했었는데 두번 정도 실패하고, 제 돈 넣어서 어찌저찌 통과한 프로젝트도 있고. 그래서 발리에서 돈 아낀다고 힘들었어요(웃음). 다시 가고 싶어요.
남모를 고생을 하셨군요. 블로그를 보면서 전반적인 로고 디자인이랑 카피에 되게 감탄했어요. 이런 건 강의로 배우신 건가요?
로고는 미리캔버스로 만들었어요. 카피라이팅은 책 읽고 배웠어요. 전 제가 감각 없다고 생각했는데요(웃음).
그럴리가요. 세번째 계획이었던 텀블벅 펀딩이 다 잘 됐잖아요. 2000% 넘게 펀딩에 성공한 것도 있고요.
제가 텀블벅 아이디가 여러 개예요.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엔 애인이랑 같이 책을 만들어서 작게 시작했는데 시간도 1년이 넘게 걸렸고요. 그 아이디로 한두 번 더 하다가 다른 아이디로 했는데 잘 안됐고, 발리 다녀오고 나서 워터스클럽 아이디로 진행했던 MBTI 캐릭터 사전이 터졌죠. 그때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해야 되는구나’ 깨달았어요.
잘되는 펀딩의 특징이 있나요? 현지 님이 파악하신 텀블벅 성공 비결은 뭘까요?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해야 해요. 텀블벅은 아무래도 20대에서 30대 여성들이 주 고객이고, 창작자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웹툰, 웹소설 작가를 타겟으로 하는 것들이 대부분 잘 돼요.
그래서 웹소설 창작자를 위한 영감 카드를 만드셨군요. 최근에 하셨던 『조선의 법의학』 책이랑 『성경 상징 사전』도 흥미로웠어요.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 같은데, 이쪽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셨나요?
성경은 앞서 말했다시피 아버지께서 목사님이시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자주 봐왔고요. 법의학은 평소에 항상 컨텐츠에 대한 레이더를 세우고 있었더니 걸려든 케이스예요. 텀블벅에서 예전에 법의학 관련된 프로젝트가 잘 된 적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법의학을 좋아하는구나!’ 기억해 놓았죠. 그러다 어느 날 역사책을 읽는데 조선시대에도 법의학이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컨텐츠로 만들었어요.
저도 프로젝트를 오픈할 때 ‘내가 이 분야에 관해 쓸 자격이 있나?’와 같은 부담감이 있기는 해요. 근데 역사 쪽을 재미있어하고, 다양한 컨텐츠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 같아요.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것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컨텐츠를 만드는 게 좋을까요? 원래는 저도 관심사가 넓고 얕은 편인데, 뭐든 전문성을 갖추려면 이제 슬슬 나만의 뾰족한 것을 찾아야 하나 싶거든요.
글쎄요. 초등 교사가 되게 다양한 걸 하잖아요. 그걸 살려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곳에 그물을 던지고, 하나 걸리면 그쪽으로 계속 가는 거죠.
‘그물을 던진다.’ 좋은 표현이네요. 워터스클럽 아이디로는 다섯 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는데, 다른 아이디로도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계신 줄은 몰랐어요. 업데이트 주기가 보통 어느 정도일까요?
처음엔 1년 걸렸다고 했잖아요. 근데 다음부터는 속도가 빨라지더라고요. 지금은 한 달 주기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올려요. 상세 페이지 후딱 쓰고, 심사 올려놓고, 다시 상세 페이지 열심히 고치고. 그래서 이제 며칠 안 걸려요.
지금은 텀블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장기적으로는 어떠세요? 계속 텀블벅을 주 수입원으로 두실 계획인가요?
장기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요. 결국엔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사실 워터스클럽 계정은 좀 중구난방이고, 제가 운영 중인 다른 계정은 일관된 하나의 주제가 있어요. 큰 주제 안에서 변주하면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는 중이라 앞으로는 그걸 브랜드화할 것 같아요.
[기획자의 태도]
퇴사 이유를 설명한 유튜브 영상에서 ‘소비만 계속했더니 스트레스가 쌓였다. 나는 소비자가 아닌 창작자로 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부분이 와닿더라고요. 제가 지금 왜 삶에 불만을 느끼는지 명쾌하게 설명되는 느낌이랄까요? 현지 님께서 창작자로 살고 싶으신 이유는 뭔가요?
그러게요. 타고나길 기획자의 자세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발리 여행을 가서도 저는 ‘이걸로 어떤 컨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생각을 끊임없이 해요. 핫플레이스에 가도 ‘사람들이 왜 여길 좋아할까?’, ‘여긴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런 게 궁금하고요. 소비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거기서 받은 영감을 다른 곳에 연결 짓고 적용해 보는 게 재밌어요. 자본주의에서는 이런 실험과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실험과 시도 중요하죠. 저도 뭔가를 시도해서 처음 사람들 앞에 내놓을 때 너무 재밌어요. 그런 마음으로 팟캐스트, 인스타툰, 블로그 등을 해봤죠. 근데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몇 번 하다가 말게 되더라고요. 특히 꽤나 노력을 들였는데 기대만큼 결과가 없으면 괜히 상처를 받는달까요(웃음)? 처음엔 분명 ‘재미있는 실험’ 정도로 생각했는데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고요. 현지 님은 어떠세요?
맞아요. 저도 뭔가 하다가 그만둔 거 진짜 많아요.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워터스클럽 계정도 지금 손 놓고 있고, 블로그나 유튜브도 안 하고 있잖아요. 모임도 몇 번 열었다가 과연 내가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고 있는 게 맞나 싶어서 그만뒀고요. 사실 텀블벅도 다른 계정으로 시도한 것 중에는 실패한 프로젝트가 많아요. 그런 게 저한테 상처로 쌓이기도 하죠.
그럴 때 자기한테 맞는 형태의 아웃풋을 찾으면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이 돼요. 여러 시도 중에 전 크라우드펀딩이 가장 잘 맞았어요. 한두달 정도의 긴 사이클로 텀을 돌릴 수 있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처럼 너무 자주 올리지 않아도 되고, 끝나면 결과가 숫자로 정확히 나오니까요. 나랑 맞는 플랫폼을 찾으니까 계속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힘을 줄 때와 안 줄 때를 구분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하는 게 중요해요. 힘을 빼고 ‘잽잽’을 날리다가 될 만한 거에 강펀치를 날려야 하는데, 모든 것에 강펀치를 날리려다 보면 지쳐 나가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계속 힘 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야 길게 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 실험과 시도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길을 찾으셨군요. 다른 SNS엔 힘을 덜 쏟고 텀블벅에 집중하시는 이유가 있었네요.
네. 처음엔 저도 이것저것 하는데 뚜렷한 성과는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어요. 제가 블로그를 1년 넘게 했는데 계속 헤맸어요. 텀블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도 의문이었고요. 근데 텀블벅 여러 계정 중 하나가 브랜드화까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서 그때부터 확신이 들게 된 거예요.
예전에는 일을 진짜 많이 벌렸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실험과 시도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돈이 안 되는데도 뭔가를 억지로 하고 싶지 않은 거죠. 제 에너지는 한정돼 있으니까요.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교사였을 때와 비교하면]
요즘엔 어떻게 지내시나요?
텀블벅 마감일을 설정해 두고요. 거기에 맞춰서 일의 강도를 조절해요. 최근에 마감 2개를 끝내서 지금은 약간 늘어지는 시기예요. 아침에 눈 떠서 고양이들이랑 놀다가 카페 가서 일하고, 저녁 먹고 자고. 단순해요(웃음).
전 현지 님의 하루 일과를 특히 알고 싶었어요. 그동안 해오신 작업물의 양을 보면 남들이 몇 년 동안 할 일을 압축해서 해내시는 것 같아서요. 이 사람의 체력과 에너지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 굉장히 궁금했어요.
제가 뭘 그렇게 많이 했나요? 저 진짜 게으르게 사는데 어떡하죠? 어쩔 땐 게임에만 빠져 살기도 하고, 웹툰 웹소설만 읽을 때도 있고, 가끔 여행도 훌쩍 다녀와요. 저는 제가 남들보다 체력이 좋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안 좋은 편이죠.
사실 교사할 에너지로 다른 일 하면 뭐든 잘할 수 있어요. 저는 지금보다 교사할 때 에너지가 훨씬 많이 들었어요. 아이들이랑 학부모 공감해 주고, 상담해 주는 일이 엄청난 정신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잖아요.
그렇긴 하죠. 저도 지금 학교에 쏟아내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써보고 싶긴 해요.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계시는데, 소속된 직장이 없는 건 어떠세요? 성향과 잘 맞으세요?
저는 잘 맞아요. 그리고 최근에 사업자등록을 했거든요. 이젠 제 사업을 본격적으로 브랜드화하고 싶어요. 언젠가 제가 배우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직장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취업할 생각이 없어요.
지치거나 힘든 건 없나요?
마감이 몰려 있을 때 지치긴 하죠. 근데 교사였을 때보단 많은 게 괜찮아졌어요. 개인적으로 저를 제일 괴롭게 한 건 가족 이슈였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 극복했고요.
저는 만약 사업으로 뛰어든다면 약간 불안할 것 같거든요. 제가 불안 이슈가 있는 사람이라(웃음). 보통 사업은 ‘모 아니면 도’라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수입 파이프라인을 다양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열심히 돈 모아서 재테크도 하고 있고요. 예를 들어 크라우드 펀딩도 텀블벅뿐만 아니라 와디즈에서도 조금씩 하고 있거든요. 계속 플랫폼 하나에만 의지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용인에 있는 빌라를 매수해서 ‘삼삼엠투’라는 플랫폼으로 공간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 것도 재미있더라고요. 그게 잘 되면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갈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담는 전략이군요. 그것도 아주 실하고 단단한 계란으로요(웃음). 현지 님께서 퇴직 전에 세우신 계획 5단계 중 3단계까지 다 실현됐네요. 다음 계획은 브랜드 만들기와 강연하기였는데, 이것도 준비 중이신가요?
개인 홈페이지는 계속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미루고 있다가 이제 조금씩 하는 중이에요. 강연은 텀블벅 같은 수익화를 다른 분들께 가르쳐드리는 내용으로 하고 싶어요. 주변을 둘러보면 자기만의 컨텐츠가 있는데도 이걸 세상에 어떻게 풀어낼지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시도하는 걸 어려워하시기도 하고, 돈이 안 되는 일들을 너무 많이 하시고.
돈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건 뭘까요?
예를 들어 뭔가를 실제로 하지 않으면서 강의 찾아 듣는 것만으로 내가 뭔가 해낸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그랬었는데, 어떤 강의를 듣고 나면 그걸로 끝내고 ‘그래도 난 열심히 했다.’ 이렇게 자기 위로를 하는 거예요. 사실 하나를 배우면 적어도 열개의 행동을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그걸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냥 일단 하는 게 더 중요해요. 배우고 공부하는 건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 돌아가는 거예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도 수익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직접적인 행동을 해야 하거든요. 근데 그건 안 하고 에둘러 가면 결과가 안 나와요. 강연한다면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서 직접적으로 빨리 돈을 만들어보는 연습을 같이 해보고 싶어요.
강의 중독자로서 찔리네요(웃음). 왜 학창 시절에도 인터넷 강의 들으면 괜히 그날 할 일 다 한 것 같고 그렇잖아요. 저도 요즘 들어 재테크든 이직이든 준비가 좀 덜 됐어도 용기 내서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앞서 인터뷰한 부진님도 ‘공부가 문제 해결의 전부가 아니다. 공부해서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얘기랑도 일맥상통하네요.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에요. 교대가 안 맞는 교대생이나 교직을 나오고 싶은 선생님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나와야 보인다! 왜냐하면 안에 있을 때 안 보이는 게 너무 많거든요. 보여도 교사는 겸직 불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너무 손발이 묶여있어요. 그래서 일단 나와야 보이는 게 생깁니다. 사실 저는 지금 삶에 만족하거든요. 프리랜서의 삶이 잘 맞는 편이라, 먹고 싶은 거 먹고 원할 때 여행 가는 게 좋아요. 그렇지만 특히 잘 관뒀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월급이에요. 교사는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계가 정해져 있잖아요. 사업은 위로 무한하게 뚫려 있거든요. 그게 매력적이에요. 물론 바닥도 뚫려 있긴 하죠(웃음).
나오는 게 쉽지 않은 거 저도 진짜 잘 알고 있어요. 근데 교사 집단 자체가 대체로 다들 성실해서 나와서 뭘 해도 잘할 수 있어요. 원한다면 어딜 가서 사회생활을 해도 다들 잘 해낼 거라 생각합니다.
유튜브 영상에서 “삽질을 해도 근육이 생긴다.”라고 말씀하셨던 거 기억하시나요? 오늘 현지 님께 용기를 받아 저도 앞으로 열심히 ‘삽질’해보려 합니다.
제가 그런 말을 했나요? 멋있는 말이군요.
네. 카피라이팅에 재능 있으시다니까요?
감사합니다(웃음).
아버지께서 단호하게 부산교대만 바라셨다는 게 안타까웠다. 우리 세대가 고등학생일 때 유행했던 조언이자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선 만연할 ‘여자 직업으로는 교사가 최고’라는 말이 오히려 10대 소녀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시키는 게 아닐까? 앞서 인터뷰했던 유담도 20대 여성의 취업에 관한 어머니의 막연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대학 입시에서 교대 외에 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유담과 현지님의 공통점이 있다면 본인이 원치 않는 진로를 선택해 한동안 몹시 괴로웠으며, 어느 순간 부모님과 자신을 분리해 기존 직업을 끊어내고 새로운 길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나 외롭고 고단했으니 ‘여자 직업으로는 교사가 최고’라는 말이 적어도 이들에겐 독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담이 그러하듯이 현지님도 시련을 동력삼아 성장했다. 결핍이 계기가 되어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고, 계획하고, 사업하고, 집 사고, 돈을 벌었다. 특히 퇴직 후 5단계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게 신기했다. 조금 돌아간 셈이지만 고등학생 때 꿈이었던 여성 사업가의 길로 잘 나아가고 있었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어떤 경험이든 좋은 의미로 남은 게 아닐까. 양귀자-『모순』 속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건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르는 인터뷰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도, 아버지와의 갈등도, 고생스러운 교사 생활도 결국엔 현지님 삶의 깊이가 되어 그를 착실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해당 인터뷰 전문은 책 <교대 나와서 교사 안 하면 뭐 먹고살지?>에 있습니다.
책에는 다른 분들의 인터뷰와 저의 에세이도 실려 있습니다.
- 책 소개 링크
https://gamy-philosophy-ccf.notion.site/1bd708c22b8180b2bfa3fbdfec44f5c8?pv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