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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니 Apr 04. 2024

수험생 사회-공부 시작

실패로 끝난 나의 피트 수험생 에피소드 일기

“따르르르”

여느 때처럼 일곱시 기상알람이 울리며 지리한 하루가 시작됐음을 알린다.

부스스한 눈이 겨우 떠진다. 비좁은 고시원 방구석엔 먹다남은 과자부스러기가 까끌까끌 느껴진다.

언제고 제대로 방 한번 청소해야지 싶은데 24시간중 이 방에 있는 시간은 고작 수면 6시간 뿐이다. 

수험생활 3년째, 카페인 중독이 되어버린 나는 그 6시간도 깊게 자지 못한다.

학원마치고 녹음기로 강의 한번 더 듣고 정리하고 문제풀고, 늘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가 끝나면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들어와 자기 바쁘다.

그래도 이번 주말은 제때 일어나 청소해야지. 바닥이 까끌까끌해서 잠을 못자겠다. 

1

3년 전, 파릇파릇한 20대 초반의 이수현이란 이름을 가진 나는 완벽한 인생은 아니지만 나름 남들보다 우월한 20년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능 끝나고 대학교 들어오고 나니, 10대에 비해 제법 초연해졌다고 믿었던 정신이 열등감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우리 대학교도 들어왔는데 미팅이나 할까? 혹시 서연고 중에 아는 오빠 없어?”

“서연고 좋다. 우리 부모님도 나 서연고 아니면 미팅도 소개팅도 하지 말라는데.”

“야, 서연고가 뭐 미쳤다고 우리랑 미팅하냐, 걘 걔네 학교 얘들끼리 사귀겠지.”

“미팅한다고 사귀냐. 미팅은 그냥 한번 하루 같이 노는거지.”

“그치, 그렇게 생각해야 맞는거지. 근데 걔네는 그렇게 생각안한다고. 하루 놀아도 사귈 가능성 있는 얘들과 하루 놀겠지. 안그러냐?”

“아니 우리가 그래도 인서울인데,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 있어?”

“말 그대로 하루 같이 노는건데 굳이 서연고 아니어도 되지 않어?”

“그건 싫어.”


흔히 여자 셋이 모이면 파트는 정해져있다. 희망과 긍정의 아이콘 A, 냉정하고 비관적이다 못해 치솟는 시크함으로 인해 자존감이 땅굴로 들어가는 B, 이 A와 B의 사이에서 나름의 중재를 해가면서 본인의 자아를 드러내는 C.

여자 셋의 대화에서 가장 손해안보고 이미지관리가 잘 되는 C. 나는 주로 그 역할이었기에 내 인간관계는 딱히 손해볼 것도 없었지만 완전한 내 편도 없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인서울이었지만 명문대라고 할 순 없었다. 그게 크게 중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만연해 있다는 학벌주의는 동문들끼리, 지인들끼리, 가족들끼리의 대화속에서 은은히 퍼져있었다.


가족과의 대화에선,


“엄만 내가 어느 대학교 남학생과 사귀면 좋겠어?”

“높을수록 좋지. 스카이면 말할 것도 없고.”

“그럼 스카이 외의 다른 학교는?”

“일단 엄마한테 보여봐. 서성한 중에서도 전공이 좋으면 일단 엄마가 보고 좀 판단하게.”

“......”


친척과의 대화에선


“삼촌, 냉정히 조언좀 부탁해요.”

“응, 그래 뭔데?”

“솔직히 저희 학교.. 스카이 남학생과 사귈수 있을 정도의 레벨인가요?”

“그건 사람마다 다를거같은데? 같은 스카이라도 학벌을 중요하게 보면 안사귈테고, 그런걸 중요하게 생각안하면 사귀고.”

“그럼,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저희 학교는 열외인가요?”

“솔직히 그렇지. 그리고 요샌 남자여자 다 어릴때부터 계산하고 만나서... 끼리끼리 만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토익 스터디 모임에선


“와 학교 되게 좋으시네.. A학교 다니신다면서요?”

“뭐, 외국에서 좀 살다와서 영어등급이 잘 나와서요.”

“기회되시면 저희 학교랑 미팅한번 하시는건 어떠세요?”

“아.. 죄송하지만 저희학교는 그쪽 학교 별로 안좋아해서;;; 게다가 저희 문과는 포스가 좀 있는 편이라”


어찌보면 남자의 언행이 건방지고 기가 찬다. 하지만 이제 남자, 여자 모두 자기보다 위를 바라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고서는 서로 상대하기 시간 아까운 것이다. 


“하... 편입공부라도 해야 하나.. 나도 서울대생 만나고싶어. 근데 서울대생은 이화여대 이상 여자는 되야 만날거 같아.”

“사바사라니까. 우리도 만날 수 있어. 유미언니도 최근에 서울대생과 소개팅해서 애프터 받았다는데?”

“유미언닌 우리 학부 퀸카잖아. 학벌을 커버할 외모면 몰라. 나는 외모도 평범하구. 그리고 서울대생이 우리랑 연애만 하지. 결혼까지 가겠어?”

“아니야. 우리 아빠 친구 딸은 지방대 나왔는데 서울대생이랑 결혼했어. 아기 생겨서 결혼하는 거라는데, 남자 쪽 부모님이 엄청 좋아했대.”

“얘를 혼수로 딸려 와야 우린 서울대랑 결혼하는 거니. 휴.. 명문대생이랑 연애는 하고싶은데 편입공부는 하기 싫고.. ”

“어차피 취업 때문에라도 공부는 해야하니까. 미리 편입공부 해보는것도 괜찮을거 같은데?”

“편입공부 한다고 바로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니고, 들어가서 또 박터지게 경쟁해야 하잖어. 그냥 한번에 취업이랑 인생렙업 다 올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그럼 전문직 시험밖엔 없겠네. 취업도 되고, 인생렙업도 되고.”

“전문직....?”


전문직. 흔히 말하는 사짜 직업

이 땅덩어리 좁은 대한민국에서도 여러 가치관들의 호불호가 다양하게 갈리는데, 이 용어만큼 모든 20대 청년들이 선망하는 건 또 없을 듯 하다.

흔히 공부 좀 한다는 대학생들의 루트는 세가지 경로가 있다.

첫 번째로, 공무원 시험. 그 중 과거 장원 급제라고 불리는 행정고시. 아무나 붙을 수 없는 범접불가의 난이도 시험이다. 이 시험만 붙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죽을 때까지 명예로움이 함께할 것이다. 

그러나, 자리잡아 받은 첫 월급은 250만원. 진입장벽에 비해 지나치게 박봉이다. 

두 번째로,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가고싶어하는 대기업. 삼성 현대, 이들의 첫 월급은 400만원. 

흔히들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하면 인생 끝났다 싶을 정도로 성공한 인생이다. 다른 직장인에 비해 연봉도 높고, 사내 복지도 좋아 질 높은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사기업 평균 퇴직은 50세. 100세를 바라보는 인생 중 이른 퇴직은 남은 인생을 설계하기 답답한 면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행정고시 붙은 공무원보다 더 오래 일할 수 있고, 대기업의 2~3배는 월소득으로 벌어들이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평을 들을 수 있는 직업.

바로 전문직이다.

의사,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흔히 말하는 이 사짜 직업군에 속하게 되면, 부와 명예는 기본, 어디를 가나 꿀리지 않는, 사회적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들었어? 이번에 약대 전문대학원 식으로 바뀐 다는데. 선수과목(일반생물학, 일반화학)만 듣고 나면 대학교 전공은 따로 상관없다던데?”

“여자 직업으로 약사 최고지. 사회생활 스트레스도 없고, 자기 능력껏 벌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자격증이 있으니 원할 때 재취업도 가능하고.”

“근데 얼마나 경쟁 치열하겠냐. 우리 같은 머리론 죽을만큼 하지 않는 이상 힘들걸?”


또 B의 현타 대화법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우리가 망상에 빠질 때 자기객관화를 시켜주는 고마운 친구지만, 두려움이 많으면 시작도 못하는 법. 한창 꿈 많고 피 끓는 20대 청춘의 욕망을 막진 못했다. 

 그래, 준비해보자. 약사가 돼서 돈도 많이 벌고, 멋진 명문대 남자도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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