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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8. 2024

그녀이야기

이비어천가, 나의 상사이자 벗인 그녀 찬양기

“그녀는 너무 예뻤다. 하늘에서 온 천사였다~.”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이라면 외적으로 아름다운 이에게 눈이 가기 마련! 겉 표지만 보고 책을 사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제품과 책들이 여전히 패키지에 힘을 쓰는 것은 그것이 바로 본능이기 때문이리라.


제주 직장으로 이직하고 나서 회사에서 맺어주는 멘토-멘티로 만난 그녀는 실로 너무 아름다웠다. 심지어 어려보이기까지 해서 ‘아… 나이 어린 사수를 모시게 됐네.’라고 걱정 반, 설렘 반이기도 했다.(아니… 왜 같은 여자를 보고 설레냐고…)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무려 나보다 3살 연상에 (나는 그녀가 나보다 다섯살쯤은 어릴 줄 알았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여인이었다. 세상에!


그녀의 이름은 ‘이정아’. 아 이 좁은 제주 바닥에서 실명을 거론하면 아마 이 책상에 함께 앉아있는 누군가의 친구의 지인이거나 어머니의 친구 딸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한자를 쓰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감히 추측하건데, ‘맑을 정에 예쁠 아를 쓰는 맑고 예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으면 나는 지금 이 글에서 이정아씨가 아닌 티브이 속 여신을 찬양하고 있었으리라. 나의 멘토는 목소리도 예쁘다. 보고서를 발표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눈 밭이 상할까 사뿐사뿐 내딛는 듯 급하지 않고, 푸른 물결색의 비단처럼 우아하다. 그러면서도 머릿 속에서 울리는 듯한 또렷한 발음에 어느새 좌중은 홀린 듯 그녀의 의견에 찬성 표를 던지고 있게 된다. 알고보니 제주 모 방송국 리포터 출신이었다. 이런 사기 캐릭터 같으니라고!


이쯤 되면 달빛처럼 사근사근 빛나고 코스모스처럼 여리여리한 여성을 떠올리고 있을게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매력은 호쾌함에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속상하거나 잘 안된 일이 있어도 부정적인 감정을 오랫도록 끌거나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선배에게, 후배에게 무엇을 바라지도 않으며 누구 탓을 하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정도면 ‘성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그녀는 그 성격이 컴플렉스라고 했다. 그냥 지나치게 합리적일 뿐이라고. 굳이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될 일에 연료를 아끼는 것 뿐이라고. 아마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한 무언가를 보유한 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너무 뜨거워서 걱정인데 그녀는 너무 차가워서 고민이라고 한다.


어느날 술을 마시다 또 찬양의 연가를 바치는 나에게 불쑥 “너의 그 정열이 부러워.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도.” 라고 내뱉은 그녀의 말에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뇨… 정열 아니고 덜컹거리는 거랍니다. 마음 씀씀이는 그냥 오지랖인데요.” 변명아닌 진실을 내뱉는 나에게 뒤이어 그녀가 언급한 나의 첫인상은 과히 충격이었다.

“ 나 사실 있잖아. 너 되게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어.”

“엥 왜요?”

“그때 우리 너 온지 얼마 안되어서 같이 베트남 쌀국수 먹으러 갔을 때 있잖아.”

“네. 아 그때 겨울이라 귤나무가 참 예뻤…”

“그래. 그거 말이야.”

“읭?”

“어떻게 귤나무가 예쁘냐고! 너가 창문내리며 턱괴고 ’와 귤이 열려서 꼭 주황색 오너먼트가 달린 트리 같아요. 제주에서는 귤나무로 트리해도 되겠다. 꺄 너무 예뻐!‘ 했던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왠 또라이가 들어온 줄 알았다. 뭐 이런 감수성에 젖은 척, 예쁜척하는 년이 다있지? 하고.” (아… 문장에서 성격 보이시죠? 막 차를 130km로 운전하는 화끈한 여성입니다.)

“아니! 나의 순수한 마음을! 저는 진짜 예뻐서 그런거라구요! 서운해!”

“그래. 이젠 알지. 근데 그때는 진짜 걱정했어. 얘의 멘토가 되어야 한다니. 하고.”

“그러니까 그게 왜요?”

“야! 누가 귤나무보고 예쁘다고 하냐! 그것도 따야되는 귤이 하영 달린 낭을! 그거 다 일거리여. 나는 한숨만 나오드만. 제주 사람한테 물어봐라. 누가 귤낭보고 예쁘다 하는지!”

헐… 대박. 그 대화의 중간에서 나는 정말이지 얼음 땡 직전의 자세 그대로 얼어버렸다. 이런 상쾌한 충격! 같은 걸 보고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니!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같잖아?


그 이후로 그녀와 제주의 여러 소재를 골라 함께 글을 쓰기로 했다. 예를 들어 ’제주의 색‘에 대해 쓰자고 합의한다. 탕탕탕. 그리고 우리만의 네이버 카페를 열어 지정된 시간까지 그에 관한 글을 올린다.


결과적으로 ’대박‘ 재미있었는데,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나머지 서로의 상황을 너무나 이해하여 속도를 독촉하지 못하고 글은 마치 월간지 마냥 아주 천천히 드러나게 되었다. 어찌저찌 꾸역꾸역 모인 10개의 소재 중 재미있었던 것을 요점만 추려서 공유하고자 한다.


첫번째, 제주의 색.

육지에서 건너온 나는 제주가 총천연색 같은데, 그녀는 틔미하다고 한다. 엥? 하고 놀라워 하자 제주의 가을색은 단풍도 없고 그냥 얼룩덜룩 하다고. 바다에 자주 안나가면 그냥 주변에 보이는 색은 다 얼룩덜룩 틔미하다고 한다.


두번째, 제주에서 이루고 싶은 것.

나는 여기에서 마당이 있는 집을 가꾸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삶을 꾸리는 것이 꿈인데, 제주에서 쭉 나고 자란 그녀는 제발 여기를 한번이라도 탈출해서 길게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그것이 어디이든.


세번째, 제주의 산.

일년에 한번은 한라산을 가고, 300여개가 넘는 오름을 언젠가 정복하리라 다짐하는 육지것과 달리 그녀는 “한라산 대체 왜감?”으로 정리해 버렸다.


이제 그녀는 친동생보다도, 어느덧 20년의 우정을 바라보는 고등학교 동창보다도 뭔가 서로의 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글의 말투, 제주에 대한 생각, 이성적인 사고. ’이'세상에서 '정'말 좋아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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