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5. 달려가다오, 사랑이여 멈추지 말고

- 서경온, 《별빛등불하나》

by 김정수

P45. 달려가다오, 사랑이여 멈추지 말고 – 서경온 시집, 《별빛등불하나》(나남)

시인의 절규가

가열합니다.

달려가다오, 사랑이여’라는 절규가요.

대개는

달려와다오, 사랑이여,

하지 않을까요.

예,

누구나 사랑을

갈구하니까요.

하지만 시인은

사랑더러

달려가다오’라고 부탁합니다.

게다가

멈추지 말고’라니요?

이어지는 말은 더욱

절절합니다.

끝없이 잇닿은 만남으로 쓰러지게 하여다오’라고 하니까요.

쓰러져도 좋으니,

아니,

쓰러지게 할 만큼

사랑더러

달려가라고 하는 시인의

마음이

제 가슴을 저밉니다.

예,

모름지기

이 정도는 사랑해야,

그리고

이 정도의 사랑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인의 고백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그대의 섬에 닿아서 단 한 채의 집으로 남고 싶었습니다.

이제 알겠네요.

시인은,

시인의 사랑은

한달음에 달려가

그대의 섬’에 닿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가 편안히 머물 수 있는

단 한 채의 집’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순정한 사랑 고백,

얼마 만에 들어보는지

모르겠네요.

예,

그만큼 시인은

사랑을 주고 싶은 갈망으로

스스로를 무던히도

괴롭힌 모양입니다.

그 갈망을 시인이

이렇게 표현하는 걸

보면요.

아픔에 썰어지는 時間의 조각들’이라고요.

썰어지는’이라는 시어의 즉물성이

구체적인 통증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썰어지는’ 그 끔찍한 느낌의

음향이

귀에 들리는 듯해서

더욱 아픕니다.

그래서인가요.

시인은

한마디 더 합니다.

소리칠 수조차 없이 뜨거운 아픔’이라고요.

아,

얼마나 아프면

소리조차 칠 수

없을까요.

그렇듯 사랑으로

아픈 시인이기에

다치지 않는 꿈이란 없는 것일까’ 하고

스스로 물으며

피 흘리지 않는 생각이란 없다’라고

스스로 답하는 것

아닐까요.

예,

꿈은 다치게 마련이며,

생각이란

피 흘리게 마련이라는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시인은

알아요.

사랑이란

사라져 감으로써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사람은

사랑 앞에서

머물 수 없는데 떠날 곳도 없는’ 신세일 수밖에

없는 걸까요.

아니면

사랑 자체가

그런 것일까요.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하강하는 꿈의 밧줄을 놓칠 줄 모르는 마지막 사랑’에 대한

갈망을

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마침내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고야 맙니다.

그대는 나의 슬픈 窓이다 만나면 壁이 되고 돌아서면 門이 되는 風景 속의 섧은 길이다.’라고요.

예,

사랑이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우리에게

그대는 창이고,

벽이고,

문일 겁니다.

아니,

그 모든 ‘섧은 길’일

겁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서러워지는 것일까요.

미상불,

사랑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갑이 아니라,

을이거든요.

얼마나 서러우면

이제 당신 앞에 꽃잎지듯이 쓰러질 수 있다면’이라는,

거의

자학에 가까운 탄식이

절로

흘러나오겠습니까.

그래서 본심은

기다림을 남김없이 버리고 싶었다’라는 고백에

들어 있지 않을까요.

예,

더는

기다리고 싶지 않은 겁니다.

누군들

기다리고 싶겠습니까.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시인에게

이제 남는 건

그리움이겠지요.

아무렴요.

그래서

이 그리움의 딱정이 다 떨어진 뒤 살 패이는 미움’까지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내 아픈, 그리움의 덫’을

훌훌

벗어던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마침내

털어놓는

시인의

마지막 고백이

절절합니다.

아득한 곳에 가서 부서지고 싶어라’라는 고백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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