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존재 할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 (30번째 삼일)
미처 가을을 보낼 준비를 하지도 못한 것 같은데
서둘러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느낌이 들어 조급해졌다.
한 계절을 보낼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러나 계절은 점점 더 준비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리 조급한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내일 다시 올 것처럼 아무 내색 없이 돌아갔는데
다음날이 되어보니 그 다음의 계절이 눈 앞에 와 있다.
살다 보면
나 혼자 애쓰고 있다는 생각에
아니면 내가 좀 더 희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도 아니면
그런 나의 애씀과 희생을 잊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서운하고
미워지다가
슬퍼진다.
나의 노력을 알아달라고 호소해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스스로도 할 만큼 하고 있다는 한숨뿐이다.
나의 호소가 벽을 타고 되돌아옴을 느꼈을 때는
더 이상은 매달리지 말아야지.
이런 관계쯤이야 끊어내고 살면 그만이지.
굳게 다짐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 말들을 내뱉은 후에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이후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모질게 돌아서지만
잠시뿐이다.
어떤 말이 나와의 마지막 말이었는지
어떤 미소가 내게 준 마지막 미소였는지
어떤 인사가 나를 향한 마지막 인사였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언제나 준비할 시간이 허락되어 있으리라 방심하면 안 된다.
저녁 무렵 다시 돌아올 것처럼 인사하고 나갔는데
당연하리라 생각했던 그 저녁은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보낼 준비 없이 사라져 버린 그 계절처럼
늘 내게 안녕의 시간이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은
그저 나의 오만한 착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