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특성상, 취업 전 면접을 본 뒤 국가고시를 치르고 합격하게 되면 국가 면허증을 얻게 되어 그제야 취업이 가능한 조건을 갖출 수 있었다. 국가고시보다 면접을 보고 취업을 하는 것이 나한테 더 큰 문제였다. 대외활동도, 학점도 내세울만한 것은 없었고 무엇보다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였다.
어찌어찌 의료계열에 뛰어들어 취업은 했다는 상황이 뿌듯했지만 곧 비교의 그림자는 매일밤 나를 집어삼켰다. 입사일은 미정이었으나 지인이 누가 봐도 큰 규모의 병원에 입사를 했다는 소식이 내 귀에 들어오면서 눈치를 보게 됐다.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가족은 나를 한심하다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숨죽여 울었다. 부모님은 일찍 취업했다는 사실만으로 날 자랑스러워했지만 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렇게 자존감이 한껏 낮아진 상태로 입사를 했고, 그 입사는 내가 한 선택 중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이 되었다. 입사를 한 후 며칠간은 정말 좋았다. ‘내가 드디어 직접 돈을 벌 수 있어! 꼭 오래 일해서 가족들에게 보답을 할 거야’라는 마음가짐으로 입사했기에 행복했다. 나도 드디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발을 들이게 된 사실이 한없이 기뻤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직업이라는 사실이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같이 일하기 위해 만났던 선임들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일하면서 혼나는 것, 더군다나 생명에 제일 가까운 직업이었기에 일하면서 예민해지는 것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예민함을 직장동료, 후배들에게 티 내는 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을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났다.
출근하면 일하고 있는 선임들의 자리를 일일이 돌며 인사해야 했지만, 그 인사는 어느 순간 당연하게 무시당하는 것이 되었다. 불쾌해도 늘 인사는 해야만 했다. 코앞에서 인사해도 쳐다보지 않는 선임들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난 꿋꿋해야 했다.
일 처리 방법이 익숙하지 않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의 한숨, 그를 보고 그의 동기가 다가와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속닥거리던 그들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인계할 때 선임이 짓던 표정, ‘듣기 싫다’며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던 그들의 말투. 그 모든 것들은 날 바닥으로 내던졌다.
상경해서 좋았다는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출근이 싫어 하루에도 몇 번을 울며 지냈다. 출근 전, 퇴근직후, 늦은 밥을 먹을 때, 잠들기 전. 하루의 모든 순간이 싫고 지겨워 매일을 울었다. 우는 게 지겨워죽겠는데도 눈물은 멋대로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을 울며 지내다 보니, 또 그 생활에 익숙해졌다. 퇴근하고 우는 건 당연했고, 출근할 때 쌩쌩 달리던 차를 보면서 그 차들 속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 되어서야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금방 그만둘 수 없었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겨우 한 달 되었을 때의 상황이었기에 ‘내가 나약한 건 아닐까? 다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출근한다고 하던데, 이게 어쩌면 당연한 거고 내가 잘못된 건 아닌가?’라는 생각에 쉽게 놓지 못했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 선임의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세차게 뛰면서 숨이 턱 막히는 느낌과 동시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 상태를 눈치챈 선임이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30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겪은 이후, 조금만이라도 주변에 소음이 나기 시작하면 예민해져 버려 귀를 막아버렸다. 듣기도 싫었고 들으면 숨이 막혔기에.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다 도망치듯이 몰래 이직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지금 선임들도 착한 편이야. 그냥 좀 버텨봐.’라고 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도망은 필요했지만 낙원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관리자가 그런 나에게 책임감도 없고 그런 직원 필요 없으니 인사도 하지 말고 그냥 나가라고 했을 때, 못된 말들을 다 들어도 낙원이건 책임감이건 그딴 거 다 필요 없다며 모든 걸 내팽개쳤다. 그래야 제대로 숨 쉬고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직한 지금, 여전히, 아마도 평생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힘들어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 거짓말인 것 같다. 낙원은 없어도, 숨 쉴 곳은 있다. 눈에 띄게 행복해지지는 않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그것 만으로도, 새로운 길을 찾은 것만으로도 낙원에 조금은 가까워진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