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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Apr 28. 2024

바르샤바 '칼을 높이 치켜든 인어, 그리고 쇼팽' ③

세계여행 에세이: 폴란드 바르샤바 (최종화)

폴란드 단어 중에 'Zal(잘)'이란 게 있어서, 후회, 슬픔, 아픔, 아니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의 감정을 표현한다고 한다.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 싸우고 또 싸워서 찾은 이나라..." '통일행진곡'이란 이 노래를 "쪽바리 양키놈이 남북을 갈라..." 뭐 이렇게 가사를 좀 바꾼 버전으로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불현듯 난다. 폴란드 근현대 역사가 이 노래 가사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그런 역사의 뒤안길에서 오랜 세월 고통을 인내한 폴란드 사람들의 마음속에 쌓인 울분을 '잘'이라고 했으니, 우리의 '한(恨)'과 '잘'은 서로 닮은 꼴이라 하겠다.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Poland is not yet lost)


폴란드 국가(國歌)의 첫 소절이자 노래 제목처럼 쓰이는 문장이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이다.


군가(軍歌)로서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가 만들어진 것이 쇼팽이 태어나기 얼마 전인 1797년의 일이었고, 그 후로 쇼팽이 활동을 하던 시대는 폴란드의 민족적 감정이 최고조에 있을 때였다고 한다.


'피아노의 왕' 리스트(1811~1886)는 “쇼팽은 일시적으로 기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근저에 있는 어떤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말은 폴란드어 ‘잘’ 외에는 없다. 진정 모든 쇼팽의 음악을 물들인 것은 ‘잘’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뿐이랴,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슈만(1810~1856) 또한 “러시아가 그의 지극히 단순한 마주르카 멜로디에 날카로운 발톱이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 음악을 금지할 것이다. 쇼팽의 작품은 장미 속에 숨겨진 대포이다.”라고 하였다.


쇼팽의 음악은 폴란드 사람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했고, 그들이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일화로, 파리에서 열린 쇼팽 연주회에서 동포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고, 모두 일어나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를 합창했다고 한다. 현대 폴란드인들도 쇼팽을 민족적 영웅으로 받드는 이유이다. (바르샤바 국제공항의 이름도 '바르샤바 쇼팽 공항'이다.)



와지엔키 공원에서 쇼팽을 만나다


요즘은 CD 틀 일이 거의 없게 되었지만, 한때 가장 많이 사 모은 게 쇼팽 앨범 (에튀드, 녹턴, 마주르카, 프렐류드)이었을 만큼 쇼팽의 음악은 어떤 멜로디이든 들을 때마다 내게 위안을 준다. 스페인 마요르카에 갔을 때 우연찮게 쇼팽의 낙화 같은 인생 여정을 쫓은 후에는 더욱더 그렇다.


바르샤바에 오면, 와지엔키 궁전과 박물관 등이 자리한 드넓은 와지엔키 공원(Parc Łazienki)에서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는 게 올드타운 다음으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곳 공원 한쪽에 자리한 쇼팽 기념비(Frederic Chopin Monument)에서 매년 5월에서 9월이면 일요일마다 쇼팽 콘서트가 열린다고 하길래 (2023년에는 5월 14일에서 9월 24일까지)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일요일 늦은 아침 와지엔키 공원으로 향한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산책하다가 벨베데르(Belvedere)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주말의 향기를 폐부 깊이 들이마셔본다. 오전 12시 시간 맞춰 콘서트 장소에 도착했더니 연못가의 소위 명당자리는 이미 빈자리가 없어 보인다.


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 쇼팽 기념비 앞에서 열리는 쇼팽 콘서트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은 무슨무슨 콩쿠르에서 어떠어떠한 수상을 했다고 소개가 이어지던데 아무래도 Rising Star들이 등장하는 것 같다. 비록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았기는 하지만 야외 피아노 연주회의 생경함이나 사람들이 오가는 부산함 보다는 열린 자유로움이 주는 다시 못해 볼 쇼팽 경험이다.



러시아도 독일도 쇼팽이라는 존재의 민족적 의미를 잘 알았다


19세기 후반 쇼팽 기념비 건립 계획이 러시아의 탄압으로 무산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가 국가로서의 자리를 다시 찾았을 때, 독립을 상징하기 위해 쇼팽 기념비를 세웠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의해 바르샤바가 파괴될 당시 쇼팽 기념비도 폭파되었고, 잔해는 모두 수거되어 주조 공장에서 녹여졌다.


바르샤바 올드타운이 기적적으로 재건될 때 쇼팽 기념비도 쇼팽이 어릴 적 뛰어놀던 이곳 와지엔키 공원에 원래의 모습 그대로 다시 세워졌다. 바람에 휘날리는 버드나무 가지 아래에 앉아 음악적 영감에 젖어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고 하는데, 어디 음악적 영감만 표현하였겠는가.


와지엔키 공원 쇼팽 기념비



내게 쇼팽 감성이란


쇼팽 레퍼토리 중 내가 가장 좋아라 하는 곡을 기억해 보자면 아무래도...

녹턴 Nocturne(야상곡) Op. 9, No. 2... 20세 쇼팽의 감성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고,

에튀드 Etude(연습곡) Op. 10, No. 3 Tristesse (이별의 곡)... 이 곡은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에서 조명쇼와 함께 흘러나왔는데, 그렇게 듣고 있자니 더 애잔하면서 황홀하였고 (쇼팽 스스로 "이토록 감미로운 멜로디는 내 생에 처음이다"라고 했다고 함),

프렐류드 Preludes(전주곡) Op. 28, No. 15 Raindrop (빗방울)... 이곡은 마요르카에서의 추억이 묻어있어서 좋다.


내 노스탤지어 감성 스펙트럼이란... 아무래도 폴란드에서 출발하여 우크라이나의 '밤의 달빛'을 지나 러시아로 이어지나 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조성진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그가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Winner가 된 다음인데... 이듬해인 2016년 12월 어느 날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다가 조 피아니스트가 베이루트에서 연주한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었다.


"아니, 그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이 외진 나라 레바논에까지 왔다고?" 매우 놀라웠고, 이미 매진이었다. 그 후로 유튜브에서 그의 베이루트 연주 실황을 찾아보았는데, 베이루트의 고풍스러운 교회에서 아직은 앳된 천재 피아니스트가 마지막 곡 쇼팽의 프렐류드 Op. 28, No. 24를 연주할 때는 (아래 베이루트 St. Joseph 성당 공연 영상의 3:15부터가...) 듣는 이의 감성이 최고조에 올라 시쳇말로 "쩐다, 쩔어" 싶었다. 


5분 러닝타임의 조성진 연주회는 이 글의 부록이다.


https://youtu.be/kDSXOqsjcnM?si=tEcF_ZOUOZtODml3




에필로그: 쇼팽을 떠나보내고 쇼핑을 다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꽤 유명해지고 마니아도 있는 것 같던데 흔히 폴란드 그릇이라고 부르는 도자기 그릇이 유럽에서도 인기가 많다. 특유의 코발트블루 색감과 핸드메이드 감성과 아름다운 패턴을 가진 폴란드 그릇은 손으로 일일이 문양을 스탬핑 하거나 붓으로 페인팅해서 만드는데, 독일 국경에서 가까운 폴란드 서쪽 도시 볼레스와비에츠(Bolesławiec)가 원산지라고 한다.


뉴타운 퀴리부인 박물관 쪽에도 판매점이 여럿 있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 보여서 (이곳에서 구매를 하면 세계 곳곳으로 택배 배송이 다 된다고 하니 놀랍다), 호텔 (쉐라톤 바르샤바) 인근의 도매상에 들러 기념품 삼아 자크와디 (Zaklady Ceramiczne) 브랜드 반찬 그릇 몇 개 계산하고 나왔다.


폴란드에서 기념품 삼아 구입한 반찬그릇

유럽에서 몇 년 살아본다면 폴란드가 딱 좋겠다만... 폴란드와 나의 인연은 쇼팽과 그릇 몇 개가 끝이 아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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