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보통의 이야기 하나
어데 갈 약속이라곤 없는 휴일의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아침이 되어, 뒷산 자락길을 설렁설렁 걷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9시 조금 못 미친 찰나의 시간을 알아차렸다. 아주 젊어서는 큰아이 등에 업고 작은아이 유모차에 태우고서 (훗날, 같은 아파트 여러 젊은 아빠들이 '누구 집 아빠 한 번 봐봐라' 이런 나무람을 듣곤 했음을 알게 되었다.) 빼곡하게 늘어선 아파트의 동과 동 사잇길을 어슬렁거리며 아침밥이 차려질 시간이라도 벌어 주려 하였다. 그러다 보면 휴일이라도 늦잠 따윈 꿈도 꾸지 못할 터였다. 어중간하게 젊어서는 타고난 아침잠을 이기지 못하고(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이란 책을 무척 싫어하였다.) 모든 걸 내팽개치고는 짜증스럽게 이불과 씨름하며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시간적 젊음과 심리적 나이 듦 사이의 위험천만한 DMZ(비무장지대)에 자리 잡고 사는 요즘 같은 날에는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을 추켜올려가면서라도 아침 산책에 나서는 날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커피머신에 다가서서 익숙한 솜씨로 물을 갈아 채우고 캡슐을 끼워 넣고 조작부 버튼을 눌렀다. 그 행동에 앞서 '생기 있게 밝아지는 정원'이란 황홀한 이름을 가진 가벼운 산미의 캡슐 하나와 '부드럽고 잔잔한 하늘'이라 별명지은 풀 바디 향과 맛의 캡슐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둘 사이에서 짧지 않은 고민을 하였다.
잘 구워진 마들렌, 아니면 조금 설 구워진 브라우니 그 사이의 오묘한 색깔을 입은 채 커피머신의 검정색 디스펜서와 우윳빛 머그잔 사이를 매끄럽게 떨어져 내리는 커피액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디스펜서와 머그잔 사이에서 우웅거리는 커피머신 모터 소리가 눈치 없이 상념에 끼어들었다. 무척 거슬렸다. 언젠가 이런 소음을 덮어줄 신박한 음악이(예를 들자면, 위풍당당 행진곡이나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 같은 것 말이다.) 흘러나오는 업그레이드된 머신이 나오지 않을까 커피가 차오르는 그 짧은 사이에 꿈을 꿔보았다.
습관이랄 것까진 없지만 루틴이 변화해 온 세월 그 사이에 더러 낀 '거시기'들이 오늘따라 참 무심하기만 하였다. 이러다가는, 어딘가 처박혀 있을 사이쇼 히로시의 책을 찾아 꺼내서는 공감하는 패라그라프 하나를 가져다 페이지 특정하여 브런치스토리에 올려보는 어색한 행동을 할 날이 머잖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식탁 사이에 잔을 내려놓았다.
엊저녁엔 참 별것 아닌 일로 부부간(間)에 다툼을 하였다. 지인들 점심 모임에 다녀온 집사람이 행여나 피곤할까 봐 된장찌개를 끓여보겠노라 나섰더니(부엌에서 종종 칼은 잡지만, 당초의 선(善)한 뜻은 오간데 없어지고 음식 본연의 맛과 '이번에는 좀 나을까'하는 식구들의 기대 사이에서 흠씬 두들겨 맞는 일이 보통이었다.) 굳이 백종원 레시피를 따라 하라고 잔소리하길래, 같은 음식이라도 그때그때 이런 맛 저런 맛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저항하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다 보면 지나온 세월 사이사이에 지방 덩어리처럼 낀 실망했던 일, 서운했던 일, 서러웠던 일들이 하나 둘 삐져나오고, "백종원 그 양반 참 이젠 우리 사이에도 끼어드냐"며 엄한 쪽을 향해 볼멘소리를 해대었다. 소란이 차츰 수그러드는 사이에 모임 이야기를 물어보지만 알아서 뭐 하냐는 충고가 되돌아왔다.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님을 모를 턱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어제 참 무심했음을 알아차렸다. 상수역 가는 버스 두 번 갈아타는 루트를 대충 일러주고 나서, 난 과자봉지 옆에 끼고 소파에 드러누워 박노해 시인의 '눈물꽃 소년 - 내 어린 날의 이야기' 책장을 뒤적였고 따분해지면 "왜 맘 약해졌는지는 몰라요 / 생각보다 난 괜찮은 남자에요 / 엄마 잘 키웠어요" 검정치마가 부르는 세상 힙한 '상수역' 노래나 듣고 있었다.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홍대 가까운 커피숍 안에서는, 오늘을 사는 따끈따끈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각자 추억의 책장 사이에 끼워 둔 화석처럼 굳은 옛날 얘기도 흘러나왔을 게다. 한창 젊은 거리를 오가는 이들이 창밖으로 바라보일 때면, 아주 젊었던 시절의 짱짱했던 얼굴과 탄탄했던 몸매와 단정했던 옷매무새를 기억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의 사이에서, 난 박노해 시인의 남달랐던 (또는 별 다를 것 없는) 어린 시절 이야기 사이사이에 끼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추억과 현실 사이의 메우지 못할 간격을 떠올려 보는 것은 된장찌개가 불러온 부부 사이의 소란이 암묵적으로 종료된 다음의 일이었다.
오늘 아침 자락길을 걸을 때 우리 뒤를 가까운 간격을 두고 쫓아오던 낯선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한 남자는 무척 높은 톤으로 쉴 새 없이 말을 하였고, 다른 남자는 아주 저음으로 말을 받았다. 둘 사이에서 일반적 톤으로 대화를 이어주는 이가 없으니 참 조화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우리 사이의 간격을 벌려가며 걷는 중이었다. 마주 오던 남녀 중 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이제 내 얘기를 한 번 들어봐요."라고 말하는 광경이 또렷하게 보였다.
"저 사람들 봐봐. 마누라 얘기 다 듣고 난 후에 자기 얘기를 차분히 하려잖아."
새삼스러울 게 없는 상황이지만, 우리 둘 사이에서 내 부족하고 열등한 공간을 대체 뭘로 채워넣어 컴프로마이즈(compromise)할까 즉각적인 대답 대신 고심을 하였다. '어제 상수역에 차를 태워 데려다 줬어야 했나?'라는 후회가 그 고심의 시간 사이에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도 참 무심하게 사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