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고 운명적인 설익은 가을날의 광시곡
제1 악장: 먼 산
일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충북 음성 먼 마을에까지 왔습니다. 다들 그런다는 말에 속아주어, 올해는 추석을 쇠지 않았습니다. 동생네는 얼씨구나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났고, 올해 추석은 참 무료하였습니다. 때늦은 성묘를 하러 먼 산에 다다라 7부 능선에 오릅니다.
하늘이 높고도 푸르네요. 고개를 60도 기울기로 뒤로 젖히고서 위를 올려다봅니다. 손으로 해를 가리지 않고서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오래도록 하지 않고 살았었나 봅니다. 가끔씩은 깜빡여줘야 함을 잊은 눈이 시려 옵니다. 눈두덩이를 문지르는 손끝에 무언가 묻어나네요. 서울에서 한참 멀어서인지 이곳 바람은 유독 선선한데도, 눈에서 땀이 날 만큼 아직은 날이 많이 덥나 봅니다.
스무 살 적엔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며 무척 꼿꼿하던 시인도 육십의 나이가 되어서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그 나이가 미리 왔다 치고, 나도 오늘은 누군가를 마음껏 그리워해 보렵니다.
그럴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 봅니다만, 인적 없는 산마루의 (국군의 날 열병식 못잖게 줄 잘 지어 선) 묘지의 골을 따라 산새 소리만 바람에 올라타 휘리릭 지나갈 뿐입니다. 그리울 법한 사람이 누구일지 귀띔해 주는 이 하나 없으니, 일부러 남긴 술 반잔을 때맞춰 비우고서, 이웃한 비석에 성함을 적어둔 분들에게 말을 건네 봅니다.
"혹시 여기 이분 어디 갔을지 아실까요? 제가 아들인데요... 올 때마다 안 보이는 것 같아서요."
"......"
"네... 그냥 여기서 기다려야 할까 보네요."
막상 그리워하려니 그것조차 기다림이 필요한가 봅니다. 가까이엔 활엽수 한 그루 뵈지 않아도 말라비틀어진 낙엽 몇 장이 바람에 팔랑거리며 눈앞을 지나갑니다.
제2 악장: 삐삐
어깨가 축 처진채 여의도역으로 걸어가는 퇴근길 내 모습은 영락없는 무능한 직장인의 꼬락서니를 하였습니다. 퇴근이 늦었더니,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려는 긴 줄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네요. 히마리 없는 가장이 아닌 척 속여 볼 요량으로 집에 전화를 걸어 봅니다.
"별일 없지?"
"당신만 별일 없으면 없는 거야." 이어폰을 통해 명확하게 전달되는 대답이 어질 합니다.
"뭐 사갈 거 없고?"
"없어. 돈은 있고?"
지폐 쓸 일이 거의 없음을 서로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예전엔 오만 원권 몇 장은 지갑에 넣고 다녔는데, 지금은 정말이지 돈이 없네요.
빈자리가 보이지만 그냥 열차 출입문 옆에 기대어 섰습니다. 무심히 핸드폰을 뒤적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대원들이 차고 다니던 무선호출기가 폭발하여 많이들 다치거나 죽었다는 뉴스를 읽습니다. 몇 년 전 같이 일하던 레바논 직원들은 성정이 다혈질이든 차분하든 기독교인이든 무슬림이든 다들 똑똑하고 선량하였습니다. 전쟁 통에 이제 더는 사무실 문을 열지 않는다 합니다. 삐삐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무사할지, 앞으로 뭐해먹고 살건지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앞으로 서너 역을 더 가야 하는데, 집에 가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닌데, 열차에서 그만 내리고 맙니다. 열차가 떠난 후 철로 건너편 플랫폼에 엄마와 아이가 보입니다. 아이가 뭐라고 조잘대는 듯합니다.
다음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옵니다. 엄마가 가끔 얘기해 주었더랬지요. 십 리 길을 걸어 장에 가서는 이 손 저 손 두 보따리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올라치면, 아이는 심통을 부려 도무지 걸으려고 하지 않더랍니다. 열 걸음 가서 짐을 부려두고 되돌아와서는 꼼짝 않고 기다리는 아이를 업고 열 걸음을 다시 걸어야 했겠지요. 두 손 가득 짐을 쥐고서 열 걸음, 되돌아오며 열 걸음, 아이를 업고 다시 열 걸음을 한없이 반복 하였겠지요.
"우리 상현이 미워 미워." 그 말에 아직 말이 어줍은 아이가 그러더랍니다.
"우럼마 미버 미버."
다음 열차도 또 그다음 열차도 그냥 떠나보냅니다.
삐삐라도 한 번 쳐볼까 싶습니다. '82828282'라고 보내면 혹시라도 전화가 올지 모르잖아요. 여기서 기다려 볼까 싶습니다. 이웃집에 맡겨 둔 갓난 동생이 울어 젖히고 있을 그날의 십 리 길을 어찌 다 걸었는지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행여나 그 길에 공중전화 부스가 없으면 어떡하지요? 아이가 성가시어 동전을 제때 넣지 못한다면 바로 뚜 뚜 뚜 뚜 소리가 들려올 텐데, 그러면 또 어떡하지요?
카톡 소리가 메시지를 들이밉니다. "집에 안 와?"
제3 악장: 그림엽서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나 대출 전단지가 아니면 우편함에 무엇이 들었을 일은 매우 드뭅니다. 주말 아침 뒷산 산책을 나서는 길에 우리 집 우편함에서 그림엽서 한 장을 발견합니다. 큰아들 여자친구가 보낸 거네요. 세상에 요즘도 엽서를 보내는 사람이 있나 싶어서 한 줄 읽어 보려다, 프라이버시는 지켜주어야지 싶어 도로 집어넣고 맙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목의 외딴 단독주택 마당엔 감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대충 보아도 팔 할이 노르스름합니다. 지난주만 해도 산길 가로 황매화가 더러 피어있더니, 때를 망각한 봄꽃도 확연한 가을 앞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나 봅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 그대를 기다리다 / 우연한 생각에 빠져 / 날 저물도록 몰랐네"
윤도현의 노래가 뜬금없이 뇌리를 스칩니다. 지난봄 키 큰 늙은 벚나무가 하염없이 꽃잎을 떨구던 그 자리 나무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갑니다. 저 아래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며 제법 누레진 뾰족한 이파리를 떨어냅니다. 가을 상추객(爽秋客) 마음도 센티멘탈하게 흔들립니다.
스무몇 해만 살았을 적에 해외로 나가 몇 달씩 머물곤 할 때면 엄마한테는 연락 한 번 안 해도 여자친구한텐 낯이 절로 붉어지는 달콤한 문장을 그림엽서에 적어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다, 1과 0의 구분이 너무도 분명하고 즉각적인 카톡이란 게 나타나며 세상이 변하고, 나도 변하고, 기다림이란 설렘도 본질이 변해 버렸습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고 수신 확인 조차 되지 않는 엽서는 그저 불편한 존재입니다. 지난해 여름인가 베트남 호찌민의 중앙우체국에 가 보았습니다. 아직도 그림엽서를 써서 부치는 이들이 더러 보이더군요. 집사람에게 다시 한번 써볼까 말까 하다 어리석게도 그만두었습니다.
저마다의 가을 향기를 잃지 않기 위해 꿋꿋이 버텨선 꽃과 나무들 사이에 서서 이 가을 다 가기 전에 그리운 이에게 그림엽서 한 장 적어 보아야겠노라 생각해 봅니다. 그땐 즉각적인 1과 0을 확인할 필요가 없겠지요. 꾹꾹 눌러진 볼펜 자국 음각에다 천천히 읽어보았으면 하는 수줍은 사랑 고백을 가득 담아보면 좋겠습니다. 혹시 글재주가 부족해도 그림이 도와줄 것이고, 사랑이 부족했다 싶으면 엽서가 너무 작아서 그랬노라 어설픈 핑계를 댈 거고, 그러면 또 기꺼이 속아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