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미련을 버리다
지난여름 도시의 날벌레들은 가로등을 감싼 기망(欺罔)의 달무리 속에서 감각의 혼란을 일으켰다. 그것들은 인공의 빛을 벗어나지 못하고 기이한 패턴으로 날고 또 날았다. 아마도 날이 새도록, 죽도록, 날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긴 시간이 흘렀다. 늦가을 아니면 초겨울. 한기(寒氣)가 매서운 밤. 어스름 가로등 불빛 아래 간간이 취객이 지났다. 보도블록엔 대체로 퍼석퍼석한 상태로 낙엽들이 나뒹굴었고, 지나는 발길이 지르밟기 일쑤였다. 낙하 직전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순간에 이파리들은 지난봄에 태어나 자신의 모습이 여러 번 바뀌어 온 긴 여정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서 죽고 다시 태어남은 알지 못하였다.) 한 남자가 나타나 대빗자루로 낙엽을 쓸어댔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탓에 이산화탄소 가스로 살처분된 닭 떼처럼 폴리프로필렌 포대 자루에 담겨서는 사체가 분쇄되고 퇴비가 될 운명이었다. (숲이었다면 낙엽은 시(詩)가 되었을 것이다.) 비틀거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 침대에 모로 누웠어도 낙엽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였다. 낙엽을 쓸었다. 위병소(衛兵所) 낙엽을 쓸고 또 쓸던 내 청춘의 날들처럼, 강박증상처럼, 쓸어댔다.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많은 사소한 시간이 흘렀을까. 마음대로 되지 못한 퇴근길 술 몇 잔에 감각 혼란이 왔었나 보다. 낙엽들이 보도블록을 떠나지 못해 아예 들러붙었다. 보도블록 위로 흰 눈이 소복이 내려앉도록, 시간이 원점으로 흘러 물오른 나뭇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도록, 새로 난 날벌레가 푸른 이파리 사이를 날도록 밤새 쓸고 또 쓸었다. 다음 가을이 와 낙엽이 다시 설설 기어도 지금 내가 쓸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고 그것들을 지르밟는 나도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 분명하였다.
*회광반조: 촛불이 꺼지기 직전에 밝게 타오르는 현상,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온전한 정신이 돌아온 상태, 또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지혜의 빛으로 자기를 비추어 보라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