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의 한탄강 물 윗길
가을빛깔 짙은 날 떠나는 여행은 늘 즉흥적이었다. 단풍도 꽤나 깊어졌다 싶으니 말로는 못 갈 데도 없었다. 멀리 두타산으로 떠날까 아니면 가까운 소요산에나 가볼까.
토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새벽녘 강원도 철원 한탄강으로 냅다 튀었다. 어젯밤 잠들기 직전만 해도 주상절리 길인지 물 윗길인지 어디로 갈 건지도 모른 채였다. 멀다 하기에 뭐 하고 가깝다 하기에도 뭐 하다 싶은 푸석푸석 늙어가는 가을 햇살을 닮은 어중간하게 영리한 선택이었다.
내부순환로, 세종포천고속도로, 다시 국도를 지나오니 두 시간 남짓. 가끔 그랬듯이, 그 옛날 이곳으로는 어떤 이가 유배를 왔을까 궁금해하였다. 그러다, 뜬금없이, 중종반정의 그날과 강화도 유배길의 연산군을 떠올렸다. 시절이 하 수상(殊常)한 탓이려니 여겼다.
"폐주(廢主)는 갓을 쓰고 분홍 옷에 띠를 띠지 않고 나와서, 땅에 엎드려 가마에 타며 말하기를, ‘내가 큰 죄가 있는데, 특별히 상(上)의 덕을 입어 무사하게 간다.’ 했으며, 폐비 신 씨(愼氏) 또한 정청궁(貞淸宮)을 나왔습니다."
이립(而立)의 나이에 곧 죽고 말 유배길에 오르던 연산군의 홍의(紅衣)를 닮은 듯 붉은색 페인트를 짙게 칠한 아치 다리 태봉대교에 다다랐다. 한탄강에 걸쳐진 다리 아래로 강물은 멀리 이어졌다.
텅 빈 공공주차장 한쪽의 입장권 매표소는 9시나 되어야 문을 연다 하였다. 하릴없이 가까이 있을 직탕(直湯)폭포를 찾아 강 상류 어드메쯤 갓길을 걸었다. 지난 긴 밤에 호젓이 강 주위에 머물렀을 물안개가 옅어져 가는 마을 길엔 아침의 빛이 꿈같이 의연하였다.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별명이 아니꼬왔더니, 3미터 높이의 물줄기 커튼을 둘러친 직탕폭포는 지레짐작으로 깔 볼 일만은 아니었다.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라도 하러 왔더라면 물소리에 새삼 놀라 물도 못 먹을 정경(情景)이었다.
상사교 돌다리에 올라섰더니 상류로는 가을이 완연하고, 몸을 비틀어 바라본 하류엔 그제야 아침이 완전하게 깨치었다.
"물 윗길을 어쩌다 만들게 되었나요?"
"한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 위로 썰매를 달리던 아련한 추억에 물 위를 걸어보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다지 뭐예요."
매표소 안내원의 대답은 강이 얼어붙고 그 위로 눈이 쌓이는 겨울이 되어야 물 윗길은 더 멋질 것이다는 말로 들렸다. 아직 계절이 일러 짧은 구간만 다닐 수 있어 요금은 2천 원만 받는다고 하였다. 가을과 겨울의 낭만 차이가 딱 3천 원이라는 제법 복잡한 속셈에 (정상요금을 따지자면, 1만 원 내면 철원사랑(5천 원) 상품권을 받는다.) 조금은 심드렁하게 강으로 내려섰다.
강물 위를 걸었다. 비록 플라스틱 길일 뿐이지만 윤슬을 밟으며 걸었다.
기발한 발상 위를 걸으며, 스페인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 1875~1939)의 시 하나쯤 떠올리는 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의무였다.
"그때그때 한 걸음씩 가라.
여행자여, 길은 없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결코 다시 밟지 않을
오솔길이 보인다.
여행자여, 그것은 길이 아니다."
(Proverbs and Songs #29, Campos de Castilla)
강가 풀숲 또한 만추라 아니할 수 없어, 인기척 아랑곳 않는 잠자리들의 군무를, 길 만들기를 소홀히 한채, 한참을 지켜보았다. 그간 내 행실이 어떠했어도 상관없다는 듯 강물은 그새도 내 곁에서 흐르고 또 흘렀다.
일본인들이 조니워커 위스키를 광고하며, 마차도의 위대한 시구 다음에 "迷ったら,ときめく方へ."를 숨이 턱 막히게 이어 붙였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망설이고 있다면, 가슴이 뛰는 쪽으로."
내 가슴이 뛰는 쪽은 어딜까 두리번거려 보았다. 봄의 시작을 기뻐하며 색색의 가루를 마구 뿌려대는 힌두교 홀리(Holi) 축제를 풍문으로 들었는지 벼랑에 선 나무들은 떠나가는 가을을 배웅하느라 서글피 떨구어 대는 서로의 잎사귀에다 빨간색 노란색 가루를 수줍게 뿌려놓았다. 그 아래 강물은 지척까지 다가온 겨울에 대비하며 지나온 격동의 계절 동안 쌓이고 쌓인 묵은 감정을 씻어내는 제(祭)를 지내었다.
흐르는 강물 위로 제자리에 멈춰 떨고 있는 벼랑과 나무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유유히 떠내려가는 작은 나뭇잎 하나를 바라보았다. 떠올린다고 쉽게 떠오를 영감은 아니겠지만, 세상의 흐름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지금 그림자로 멈춰 섰을까, 나뭇잎과 함께 흐르고 있을까.
그 대목에서 김기림 시인의 '길'을 떠올리는 이유를 알 듯 모를 듯하였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주상절리의 협곡과 벼룻길 사이로 강은 끈질기게, 말없이, 완만하게 흘렀다. 강과 벼랑길에 걸친 가을이 푸석푸석한 냄새를 풍기며 곱게도 늙어갔다. 수직적벽(垂直赤壁) 송대소(松臺沼) 절경에 더는 나의 길을 쉬이 만들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2천 원어치의 플라스틱 물 윗길 걷기는 송대소와 은하수 다리에 이르러 끝이 났다. 겨울이 되면 고석정을 지나고 한참 먼 하류의 순담계속까지 이어질 터였다. 물 윗길의 끝자락에 서 있자니, 모든 게... 그냥, 흘렀다.
시간이 흘렀다. 늦춰지는 법도 없고 절대 끊어질 일도 없음을 알았다. 흐르는 시간을 시(時), 분(分), 초(秒)로 잘게 쪼개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잘 알았다. 강물이 흘렀다. 높은 산이 닳고 낮은 바다가 마르지 않는 한 그냥 흐를 터였고, 댐을 세워 막는다 해도 흐를 강물은 그냥 흐를 것임을 알았다. 모든 흐르는 것에는 시간과 공간이 얼기설기 얽혀있음을 잘 알았다.
완만한 벼랑을 기어올라 푸른 하늘에 걸쳐진 은하수 다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유리바닥 아래로 아득한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얕은 겁이 차올라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지 못하였다.
나이아가라 폭포 옆 스카이론(Skylon) 전망대를 추억하게 하는 은하수 카페 2층 테라스에 앉았다. 깊게 파인 채 우물쭈물 돌고 돌아 이제 막 하류로 흐르려 하는 한탄강 굽어진 길목을 내려다보았다.
따뜻한 고구마 라떼 한 잔에 가을 햇살 한 조각을 띄워 마셔보았다. 삶의 편린(片鱗)마다 넓고 깊은 하류로 흐르기를 주저하며 상류를 그리워하는 꼰대 같은 강물은 아닌지 나를 한 번 돌아보았다.
'나는 여기서 대체 무얼 하고 있나?'
지도도 없고 오라고 청하는 곳도 없으니, 무작정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뜻하지 않은 길에서 내가 지나온 물 윗길을 조망하였다. 바라보이는 강, 길, 나무와 그 모든 것들을 감싸 안은 가을 빛깔 사이를 영화 속 엑스트라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을이 곧 사라진 후에는 5천 원짜리 겨울 물 윗길이 바통 터치하여 나타날 것이고, 어쩌면 스쳐 사라진 가을을 잊고 내가 다시 이곳에 서서 눈 내린 물 윗길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계절의 간격은 그렇게 한 뼘 길이만큼 가까운 것인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붉은 아치 다리로 돌아가는 벼랑 윗길을 걸으며 올 가을 가장 새빨간 단풍나무를 보았다. 돌덩이만 남은 고대 유적지 같던 내 가슴이 금세 새빨갛게 염색되었다.
어떤 고대 유대인 사상가가 천국에는 인생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계절의 진행도, 계절의 변화를 일으키는 해도,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달도 없을 것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였다. 천국을 포기할지언정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고 싶었다. 겨르로운 가을은 한탄강 하류로 흘러가고, 반짝이는 윤슬은 조만간 너덜너덜 해 져서는 느릿하게 얼음장으로 바뀌어 가겠다.
에고(Ego)의 길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겠다. 길이 없을 때 내 가슴은 어느 쪽으로 뛸까.
마차도의 "여행자여, 그것은 길이 아니다." 그다음에 "sino estelas en la mar." 시구 하나가 은둔하고 있음을 알아야 했다. '바다에는 (배가 지나간) 물거품의 길만 있을 뿐'이라고 덧대어 읽어야 했다.
길은 결국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는 것이겠다. 어디에서 걸어왔는지 되돌아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겠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물거품과 같은 것이라면 지금 바로 이 순간에 후회를 남기지 말라는 말이겠다.
가수 후안 마누엘 세라는, 그래서, '황금방울새가 울지 못할 때', '시인이 순례자가 될 때', '기도가 아무 소용없을 때', 길은 없으니 걸으면서 만들어야 한다는 노래를 불렀다.
"그냥, 살아요."
언젠가 내 입으로 한 말인데도 진정 내 말이었나 싶어 되뇌어 보았다. 성대가 울리지 않음에도 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아 참 무기력하게 살았음을 보게 되는 것이 새삼 무서워졌다.
올 겨울 제 값을 다 치르고 다시 한번 한탄강 물 윗길을 걸어보리라 마음먹었다.
집으로 돌아가며 마차도의 다음 말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오늘은 언제나 고요하고, 모든 삶은 지금이다. 그래 지금,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약속한 것들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순간이다. 왜냐하면 어제는 하지 못했고, 왜냐하면 내일은 너무 늦으니까. 그러니까,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