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밍드림 Nov 23. 2024

낙엽 쓰는 남자 - 늦가을 아니면 초겨울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미련을 버리다


지난여름 도시의 날벌레들은 가로등을 감싼 기망(欺罔)의 달무리 속에서 감각의 혼란을 일으켰다. 그것들은 인공의 빛을 벗어나지 못하고 기이한 패턴으로 날고 또 날았다. 아마도 날이 새도록, 죽도록, 날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긴 시간이 흘렀다. 늦가을 아니면 초겨울. 한기(寒氣)가 매서운 밤. 어스름 가로등 불빛 아래 간간이 취객이 지났다. 보도블록엔 대체로 퍼석퍼석한 상태로 낙엽들이 나뒹굴었고, 지나는 발길이 지르밟기 일쑤였다. 낙하 전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순간에 이파리들은 지난봄에 태어나 자신의 모습이 여러 번 바뀌어 온 긴 여정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서 죽고 다시 태어남은 알지 못하였다.) 한 남자가 나타나 대빗자루로 낙엽을 쓸어댔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탓에 이산화탄소 가스로 살처분된 닭 떼처럼 폴리프로필렌 포대 자루에 담겨서는 사체가 분쇄되고 퇴비가 될 운명이었다. (숲이었다면 낙엽은 시(詩)가 되었을 것이다.) 비틀거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 침대에 모로 누웠어도 낙엽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였다. 낙엽을 쓸었다. 위병소(衛兵所) 낙엽을 쓸고 또 쓸던 내 청춘의 날들처럼, 강박증상처럼, 쓸어댔다.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많은 사소한 시간이 흘렀을까. 마음대로 되지 못한 퇴근길 술 몇 잔에 감각 혼란이 왔었나 보다. 엽들이 보도블록을 떠나지 못해 아예 들러붙었다. 보도블록 위로 흰 눈이 소복이 내려앉도록, 시간이 원점으로 흘러 물오른 나뭇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도록, 새로 난 날벌레가 푸른 이파리 사이를 날도록 밤새 쓸고 또 쓸었다. 다음 가을이 와 낙엽이 다시 설설 기어도 지금 내가 쓸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고 그것들을 지르밟는 나도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 분명하였다. 


*회광반조: 촛불이 꺼지기 직전에 밝게 타오르는 현상,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온전한 정신이 돌아온 상태, 또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지혜의 빛으로 자기를 비추어 보라는 의미.

작가의 이전글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가슴이 뛰는 쪽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