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생각해 보는 특별함의 단상
11월이 되자 명동의 어느 백화점은 창의적이고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영상을 미디어 파사드에 야심 차게 띄워 올렸다. 미세한 전구빛들이 떼 지어 움직이며 거대하고 현란한 디지털 불놀이를 해대었다. 너무 이르다 싶은 연말 분위기 탓일까, 구경꾼 속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귓전에는 캐럴이 울려 퍼지는가 싶었고, 양손엔 묵직한 선물 쇼핑백을 여럿 나눠 든 것만 같았다. 헤어나기 싫은 특별한 착각에 취해서 한참을 해롱거렸다.
회사의 연말도 언제부턴가 한 달쯤 앞당겨졌다. 인사발령의 시즌이 되다 보니, 딱히 승진할 것 같지도 않으면서 괜스레 마음이 뒤숭숭하였다. 밤이 깊도록, 여러 날 동안, 유튜브 타로 채널들을 기웃거렸다. '11월 내가 듣게 될 특별한 메시지' 이런 유혹적인 제목들을 쫒다 보니 좋은 점괘의 패턴을 금세 익혔다.
"여러분의 현재 상황을 볼 때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구나 싶어요."
"11월에는 합격, 취업, 이직, 사업운에서 긍정적 변화들이 찾아온다고 카드들이 말해주고 있어요."
듣기 좋은 점사는 귀에 착 감기고, 특별한 행운이 있으리란 희망고문에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수년 째 이맘때가 되면 '썩은 동아줄을 잡았구나' 속고 또 속는 똑같은 시추에이션의 반복이었다.
"특별하다고 한 너는 사실 똑같더라고"
허회경이 노래하는 '김철수 씨 이야기'가 포터블스피커에서 흘러나와 타로 점사가 끊어진 공허한 공간을 메웠다.
남다른 줄 알았던 너라서 속 터놓고 지내왔더니, 넌 내 기쁨에 겉으론 웃고 속으론 고깝게 여기는 그런 사람이었단다. 내 슬픔에 억지 공감을 하고서 뒤로는 약점 삼아 깔보는 사람이었단다. 그런 뼈아픈 깨침의 서사(敍事)가 차분하게 흘렀다. 김철수 씨 이야기가 어째 나이를 먹어가도 늘 사람에 치고마는 내 얘기만 같아서 귀 기울여 들었다.
"특별함이 하나 둘 모이면 평범함이 되고" 이것 역시 김철수 씨 이야기였다.
어느 구석이 특별한지 몰라도 특별하단 사람들이 모이고 보면 다들 그저 평범할 뿐이더라는 얘기였다. 스무몇 해만 살아본 가수에게도 너만은 특별하리란 바람은 '앞으로 걸어가도 뒤로 넘어지는 것만 같은' 서글픈 배신의 사연이었다.
처음엔 특별하다 싶다가도, 입이 가벼워서, 저 밖에 몰라서, 말을 함부로 해서, 저 필요 없으면 연락을 씹어서 결국 척지고 말던 내 얘기이기도 하였다.
김철수 씨 이야기는 드디어 끝이 나고, 오랜만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나는 평범해도 내 글만은 특별할 줄 알았다. 불과 예닐곱 달 전만 해도 그랬다. 인터넷에 올리기만 하면 꽤나 반향을 일으킬 거라 기대하며 '별것 없다'는 너스레까지 떨었다. 그냥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읽었다면 아주 특별했을 이야기가 저마다 특별함이 흘러넘치는 글들이 모인 곳에서는 별것 아니었다.
인생이란 게 대체로 그렇듯이 글 쓰는 취미조차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요새는 그 세계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신세를 면할 정도의 고만고만한 글을 가끔씩 쓸 뿐이었다.
며칠 전에는 모 대학 피아노과 졸업 연주회에 다녀왔다.
소수의 특별함과 다수의 평범함으로 나뉘어 누구는 40분을 누구는 20분을 연주하였다. '평범' 클래스의 학생들이 머잖은 졸업 후에도 전공자의 특별함을 지켜갈 수 있을지 연주 내내 걱정하였다. 콘서트홀 로비에 선 등신대를 기념 삼아 멋진 연주 드레스를 뽐내며 사진 촬영을 하는 졸업 예정자들 사이로 "Y대 피아노과 나와서 국비로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도 특별할 게 없더라."는 쑥덕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새 짙은 어둠이 내린 가을색 깊이 벤 캠퍼스를 돌아 나오며 "시작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지속은 특별함이다."라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떠올렸다.
이튿날 휴일 아침 무심코 내다보는 거실 창밖으로 단풍잎들이 발그레 빛을 내었다.
작은아이가 아스널 경기 직관의 흥분 탓에 런던에서 사들고 온 포트넘 앤 메이슨 홍차 한 잔에 카트라이트 앤 버틀러 비스킷을 곁들여 먹었다. 초코 청크 조각들이 입 속에서 따뜻한 차를 만나 살살 녹아들었다. 이런 거라도 아니면 집안에 틀어박힌 주말에 특별하다 할 만한 게 너무 없지 않나 싶었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별 뜻 없이 펼쳐 읽었다.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을앓이를 하는 것이었다. 새치를 찾아 염색약을 도포하던 솜씨로 어릴 적 기억을 더듬었다.
하늘은 눈 부시게 푸르고,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강가엔 내가 서서 돌을 던졌다. 바닷가 모래밭을 마주 달린 기요시와 쿄코가 서로를 부둥켜안는 성인 글을 썼고, 환쟁이 아들이라는 칭찬인지 욕인지를 들어가며 그림을 그렸고, 뽕필 가득 노래도 잘 불렀다. 산에는 꽃이 피고, 들엔 바람이 불고, 풀밭엔 내가 누워 풀피리를 불었다. 특별함을 동경하던 그 길 끝에는 외로움이 서성이고 있었다.
'나도 좀 특별하구나.' 스스로 이 생각을 거둬들인 게 언제인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낯선 곳에서 깨던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이건 지금의 내 이야기다. 특별함의 암묵적 순위가 매겨진 회사 다니는 이야기, 그저 운이 좋았음에도 다 자기가 잘나서 잘 풀린 거라는 친구들 잘 사는 이야기, 한강 따라 늘어선 아파트의 수많은 불빛,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끊임없이 지나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 이 모든 것 속에서 뭔가 특별함에 대한 기다림은 아직도 내겐 벗어던지지 못하는 굴레와 같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흐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특별함을 업그레이드하기란 참 쉽지 않기에 내게 어느 순간 특별함은 언제까지나 특별하지는 못하다. 특별함은 머잖아 평범함이 되고, 평범함을 지켜내기도 쉽지만은 않다. 그런 양면성도 평범할 따름이다.
우리가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시간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 집 거실 창밖 헐벗던 나무가 푸릇해진 게 엊그제인데, 어느새 단풍이 들었고, 이제는 세지 않은 바람에도 이파리가 떨어진다. 사랑을 하고, 상처를 받고, 죽을 것처럼 아팠던 특별한 사건들이 쌓여온 시간의 궤적을 돌아보면, 가여워라, 지금은 결코 특별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게 사람 사는 서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