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의 어느 가을날에
우리 집 뒷산에서 몇 주 눈팅을 해 오던 가을이 이제 제법 그럴듯한 색들을 입었다. 제 딴에 잘 보이려 애쓰는 서울 한복판의 가을이 애처로워 먼 곳의 가을을 궁금해하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제법 두터운 후드티를 찾아 입고서 길을 서둘렀다. 달리는 차창 위로 궂은비가 쉬엄쉬엄 다가와서는 무심하게 부딪혔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줄기 강물이 하나로 모이는 두물머리에 이르렀다. 곧이어 북한강변 운길산의 가파른 산길을 차를 타고 기어올랐다. 고무 타이어는 험한 길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끔씩 헛바퀴를 돌며 윤적을 뭉개었다. 성근 숲의 터널은 가쁜 숨을 내쉬는 어둠에 한줄기 밝음의 빛이 막 섞여드는 참이라 본연의 색깔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세속에 찌든 몸속으로 뭔가 선한 마음이 스며드는 느낌 같았다. 궂은비가 긋고 나서 차창을 열었다. 폐부 깊숙이 빨아들인 공기는 우리 집 뒷산 것보다 훨씬 서늘하고 짙은 향기가 났다. 높고 낮음의 구분이 어려운 새소리 솔바람소리 칸타타도 서울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雲吉山水鐘寺'(운길산수종사) 현판을 내건 일주문(一柱門)부터는 신발 고무밑창 미끌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여명의 끝자락을 향해 걸었다. 금세 불이문(不二門)이 나타났다. 이 문을 지나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불이(不二)의 깨달음을 절로 얻을까 망상을 해보았다.
앞서 걷는 내 반쪽을 바라보며 '그래, 너와 내가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닌 거야.'라고 생각하였다. 불이문을 수백 번 고쳐 지난대도 그녀가 듣는다면 펄쩍 뛸 일이겠다. '살고 죽는 것도 둘이 아니라는데...' 바로 앞 돌계단이 끝나는 높은 곳의 절을 올려다보며 잠시 깨달음의 망상을 염탐하였다.
핏빛 가을색까진 아직은 멀었구먼 어느 가을의 것인지 모를 진홍의 낙엽들이 축축이 젖은 채 돌 위에 너부러졌다. 해묵은 것이라면, 지난겨울 눈보라나 지난여름 땡볕이나 그것들에겐 다를게 뭐가 있었으랴 싶었다. 그래서, 차마 지르밟지는 못하였다.
돌계단이 끝나자 빼꼼히 열린 해탈문(解脫門)이 섰다. 그 뒤로 가파른 산기슭에 수종사(水鐘寺) 절이 들어앉았다. 물방울 듣는 소리가 청아한 종소리로 울려 퍼진다 하여 그리 불렸다. 이제 날이 제법 밝았건만 경내엔 인적이 없고, 새벽녘 빗물을 머금은 모래마당은 자박자박 소심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 아침 세상의 고요는 온전히 산사(山寺)의 것이었고, 불심이 뵈지 않는 어느 무례한 객들이 몰래 들어 그 고요를 해쳤다.
돌틈을 뚫고 샘물이 흘러나왔다. 손을 씻고 두 손으로 물을 받아 한 모금 들이켰다. 어릴 적 놀던 곳, 가난하게 살던 곳, 외롭게 살던 곳에 훗날 다시 와 보기를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으로 꼽았던 정약용이 먼 전라도 강진 땅 유배를 끝낸 노후에 이곳을 다시 찾아 이 물을 마셨단다. 밋밋한 맛이건만 세파를 따르도록 학습된 내 신세가 조금은 깨끗해지는 환상을 느꼈다. 이 물이 그리 좋아 삼정헌(三鼎軒)에선 불자 아닌 객에게도 차(茶)를 기꺼이 내어준다더만 고요한 아침의 선(禪)의 기운과 맛 좋은 차는 아쉽게도 상충하였다.
극락왕생 같은 후손의 염을 몸속에 품었다는 팔각오층석탑과 우뚝 선 불상을 우러러보며 가장 근본적인 소원이 무얼까 찰나의 고민을 하였다. 바라는 게 참 많구나 싶은 멋쩍음에 얼른 발길을 옮겼다. 검은 기와를 이고 선 낮은 담벼락 너머로 세상을 보았다. 하늘은 비구름에 갇혀 낮았고, 그 아래는 온통 두물머리의 세상이었다. 그 사이에 절이 섰고, 가을은 절을 찾아들었고, 나는 가을을 찾아 절에 섰다. 세상의 이치가 이런 건가 허튼 생각을 하였다.
'가을이 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하니 물이 언덕을 치네 / 흰 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거나 / 누런 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하네' 조선 학자 서거정(1420~1488)의 '수종사' 시구가 수백 년이 지나 내 꼴에 발현한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다시 돌계단을 걸어 나한(羅漢,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 말세의 중생에게 복덕을 성취하게 하고 정법으로 인도하겠다는 원을 세운 성자)들이 모셔진 응진전(應眞殿)에 올랐다. 내려다보는 절간 누각은 낮은 하늘과 나란하였고, 절 아래 두물머리 풍광은 더욱 장관이었다.
금강산과 오대산에 다녀오던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유할 때 잠결에 청아한 종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소리의 근원을 찾다 보니 운길산 높은 곳에 나한들이 모셔진 동굴이 있었고 그 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종소리를 내었다. 동굴 앞은 쇠락하여 폐허가된 절터였다. 왕은 절이 피폐하여 동굴에 드신 나한들을 안타까이 여겨 그곳에 나한기도도량을 중창(重創)하고 수종사라 명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죄업(罪業)이 소멸되는 듯한 청량한 기분이 들어 은행나무를 심었다.
어디선가 커다란 검둥개 한 마리가 나타나자 대웅전에서 불경 외는 소리가 삐져나와 축축하고 서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기 시작하였다. 당최 알아듣질 못해도 리듬 따라 몸이 가벼이 휘둘리더니 지난봄 오대산 적멸보궁에 오르는 돌계단을 끝없이 휘감던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 염의 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하였다. 들을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자의 한가로운 정근(精勤) 같아서 염치없는 잉여짓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끝에 와닿는 쿰쿰한 냄새의 근원을 찾아 절의 가장자리를 향해 걸었다. 위테로운 벼랑 끝에 아름드리 쌍(雙) 은행나무가 섰다. 오백 년 넘게 살아온 늙은 거목이 여태 이토록 당당한 위세일까 싶어 경이로웠다. 왕이 심어서일까 선경(仙境)을 바라보아서일까 아니면 약수를 마시며 살아서일까 대도시의 가로수 은행잎들은 이미 누레졌어도 여기는 아직도 푸릇한 빛이 기가 크게 살았다.
은행나무를 돌아 나와 대웅전을 지나며 그때까지도 그치지 않은 염불소리를 엿들었다. 새벽녘 가을비를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한 절 마당이 내는 자박자박 소리를 들었다. 돌 틈으로 샘물이 흘러나오는 졸졸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물에 젖어 돌계단에 들러붙은 고대 유물 같은 진홍색 낙엽을 조심하며 걷느라 신발 고무밑창이 내는 찍찍거리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한줄기 옅은 바람이 불어오자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속세의 일은 죄다 듣지를 말고 산속에 들어앉은 절이 내는 가을소리나 종일 듣고 앉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한 주쯤 더 지나면 그때는 산사의 가을색도 뚜렷해지겠구나 싶었다. 그때쯤이면 서울 한복판의 가을도 애처롭지만은 않겠구나 싶었다.